눈을 뜨면 반짝임이 보였다. 책상에 머리를 대고 엎드린 채로 한쪽 눈만 가늘게 떠도 아릿함이 느껴지는 반짝임이었다. 고개를 다시 팔 사이에 파묻고서 눈을 다시 뜰까 고민하고 있자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쿠소카와 왜 그러고 있어? 배탈이라도 났냐?”

목소리에 담긴 내용과 관계없이 그 소리에도 반짝이는 가루들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말에도 웃음이 났다.

“이와쨩은 오늘도 이와쨩이네!”

이게 바로 첫사랑이라고, 오늘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첫사랑 피터팬



고백을 한건 3학년 1학기가 시작되기 두 달 전이었다. 그날도 언제나와 같이 집 앞에서 만나서 같이 부활동을 시작하고, 똑같은 땀을 흘리며 다시 같이 집으로 가던 그 날이었다. 평소처럼 이와쨩과 집에 돌아가던 길, 쌀쌀한 1월의 날씨는 잠시만 수다를 떤다고 입을 열어도 하얀 입김을 뭉게뭉게 내보냈다. 학교의 정문을 나와 편의점 앞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 집으로 돌아가던 익숙한 곳에서 왜일까 갑자기 그 말이 입에서 나왔다.

“이와쨩 나 좋아해?”

“뭐?”

“이와쨩을 볼 때마다 반짝이가 떨어지는 것 같아. 어릴 때 같이 봤던 피터팬처럼 말이야.”

“반짝이는 건 피터팬이 아니라 팅커벨이지 않았나?”

“어쨌든! 중요한건 그게 아니잖아. 이와쨩은 나를 좋아해?”

“상한 우유빵이라도 먹었냐?”

“아니!”

“그럼 오늘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머리를 박았다던가.”

“그것도 아냐!”

“그럼 고백?”

“청춘이잖아. 고백도 못해? 정말이지, 부끄럽게 계속 물어보지 마.”

“그럼 좋아한다고 해야지 좋아하느냐고 묻는 게 뭐냐, 쿠소야. 그리고 네 입으로 청춘이라고 말한대서 이미 끝난 거 아냐?”

“좋아해! 엄청 좋아하고 있으니까 나랑 사귀자고 이와쨩! 그리고 우리는 아직 청춘이야! 19살이잖아!”

평소처럼 놀리는 목소리에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 건 분명 고백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청춘이라면 누구나 고백한번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었고 내 경우엔 그게 초등학교부터 함께였던 이와쨩이여서 더 떨렸던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날도 추위가 엄청났고 입을 열면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입김이 나오는 날이었다. 이와쨩은, 그래. 분명 웃고 있었던 것 같았다. 조바심을 내며 대답을 재촉하는 나에게 대답해준 것은 분명한 승낙이었다. 문제는 그 뒤에 따라온 말이었다.

“너는 내가 빛난다고 했지. 그런데 그게 얼마나 갈까.”

그 말에 걸음을 멈추자 뒤를 돌아보지 앉은 채 걸어가던 이와쨩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환상 같은 거야. 어른이 되면 서로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때가 되면 반짝임도 두근거림도, 모두 사라질 테니까.”

고백에 대한 대답치고는 이상한 말이었다. 고개를 갸웃이며 무슨 소리냐고 묻는 나에게 이와쨩은 그저 계속 추우니 빨리 집에 가자며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여하튼 그때의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이와쨩이 내 고백을 받아주었다는 것이었고, 내 첫사랑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아무렴 나머지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일단 달리고 보는 10대 청소년이니까. 피터팬이었는지 팅커벨이었는지 지금도 헷갈리는 노릇이지만 떨어지는 반짝임은 웬디가 보았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 중요한 것은 반짝임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와쨩의 말은 그때면 으레 그렇듯 평소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감성적이었던 것이라 생각했다.

“그럴 리 없어. 내가 얼마나 이와쨩을 좋아하는데.”

“의외로 사람은 쉽게 변한다고? 지금이야 너나 나나 똑같은 환경에서 계속 같이 살았으니까 그런 거지.”

그 대화가 이어진 것은 한창 여름방학중인 학교에서였다. 매미 소리가 아직도 시끄럽게 들릴 것 같은 7월 말, 우리는 여름의 인턴하이 때문에 수업에 빠진 분만큼의 보고서를 작성해야했다.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교실에서 의자를 돌려 앉아 같은 책상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시간은 지금도 다른 사람들은 영원히 모를 데이트였다.

“애늙은이도 아니고 왜 아직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걱정하는 거야?”

19살 고등학생이면 고등학생답게 방학 때 놀러갈 곳이라던가, 같이 데이트를 갈 즐거운 일들만 고민해도 시간이 부족할 텐데 이와쨩은 가끔씩 어딘가 뭔 곳을 보는 얼굴을 했다. 이해할 수 없어 정말. 나만 즐거운 거야? 투정을 부려도 그는 그저 삐죽 나온 내 입을 잡고 못생겼다며 놀릴 뿐이었다.

“오늘은 언제 돌아갈까?”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 다 하면.”

“엑 이거 오늘 전부 하게? 그럼 나 혼자 가버릴 거야.”

쌓여있는 프린트의 양에 질색을 하며 자리를 밀고 일어났다. 여름방학인데. 데이트가 좀 더 하고 싶고 손을 더 오래 잡고 있고 싶었다. 커튼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눈부신 햇살에 눈을 내려도 이와쨩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에는 공부같은거 이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잖아. 툴툴 거리면서도 제풀에 지쳐 털썩 소리와 함께 의자에 앉았을 때 한 이와쨩의 말만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지 않더라도 이제 같이 갈 날이 많지 않잖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그제야 이와쨩은 고개를 들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었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이와쨩은 왜 나를 믿지 못하는 거야? 나는 이와쨩이 설사 도쿄타워 앞에 5000명이 모여 있는 곳에 서있더라도 누구보다 빨리 알아볼 거라고!”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내가 다시 생각해봐도 허무맹랑한 말이었는데 이와쨩이 듣기에는 오죽했을까. 그 뒤가 어쨌더라. 아마 다시 뭐라고 말하는 이와쨩이 얄미워서 그대로 입술을 들이댔던 것 같았다. 그래. 아마도 그게 이마를 정통으로 박아버린 첫 키스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의 결과물이 오늘이었다. 손안에서 화면이 밝게 빛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오늘도 처음 고백한 그날과 같이 새하얀 입김이 담배연기보다 뿌연 날이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장장 12년을 없으면 죽겠다는 듯이 붙어있었던 우리는 꽤나 싱겁게 떨어지게 되었다. 참 웃기지. 그렇게 호언장담을 했는데 기껏해야 갈려버린 진로 때문에 납득해버리고 이렇게 되었다는 게.

다시 핸드폰을 들어 마지막 문자를 확인했다.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14분전 도착한 메시지였다.


‘나 거의 다 도착했어. 너는 어디야?’ - 9時14分


그 다음 내가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여기 도쿄타워 뒤에 있는 동상 앞이야. 천천히 와.’ - 9時18分


이와쨩이라는 말을 붙일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거기서 전송 버튼을 눌렀다. 바스러지는 입김처럼 관계란 정말 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때 이와쨩의 말이 옳았느냐면 동의하지는 않았다.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게 비행기를 타기 몇 년 전이었지만 아직 그때의 얼굴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그때의 반짝임은 무엇보다도 선명해져갔다. 가만히 누워 그때를 생각하면 생생히 떨어지는 빛은 여전했다. 것 봐 이와쨩! 역시 내가 맞았다니까.

눈앞에 입김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이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새하얀 눈이 하나 둘 떨어지자 도쿄타워 앞의 수많은 커플들이 환호성과 함께 모두 하늘을 올려다봤다. 날리는 눈송이들은 어두운 밤의 불빛을 받아 작고 무수히 많은 빛들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저런 인위적인 빛에 잠시 반짝이고 진흙이 되어버리고 마는 눈보다 이와쨩이 분명 더 빛날 거라고 생각하며 차가워진 뺨을 감쌌다.

다시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꾹꾹 찍었다. 하얗게 남은 지문이 말했다.


‘이와쨩 도착했어?’ - 9時22分


고개를 돌려봐도 이와쨩은 보이지 않았다. 6년 만에 만난다고 평소와 달리 약속시간에 늦을 정도로 준비하다니 여전히 귀엽구나, 생각하면서 다시 코트의 끝을 여몄다. 이제 눈은 눈송이가 아닌 제법 큼직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도쿄타워의 빛은 더욱 거세졌다. 맨 꼭대기까지 불을 켠 야경은 눈이 시릴 정도였다.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을 보자 답장이 와있었다.


‘나 도착했어. 동상 바로 앞이야.’ - 9時25分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봐도 이와쨩은 보이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숨이 가빠졌다. 만나기로 한 곳을 몇 번이고 돌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쌓인 눈들이 어깨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 눈들은 서성이는 발에 체여 곧 질퍽한 진흙이 되었다. 다시 찾아봐도 이와쨩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한 번에 찾아낼거나 생각했는데. 저 빛보다 빛나는 너를 누구보다 먼저 찾아낼 거라고 믿었는데.

나는 그날 이와이즈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 공간에 내가 아는 이와이즈미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이카와?’ - 9時30分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첫사랑은 바로 이 앞에서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을 손에 들고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눈은 더욱 거세져 빛마저 휘감기 시작했다.


‘나 여기 바로 앞이야. 어디 있는 거야? 오이카와?’ - 9時38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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