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을 건너는 방법은 카코토(過去事)다리를 건너는 것, 딱 하나였다. 그리 넓지는 않은 강이었지만 그렇다고 맨몸으로 건널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 맨몸으로는 건너지 못할 곳이었다. 주춤하게 서있는 내 옆에는 네가 있었다. 어느 때처럼 따뜻한 봄의 강은 평화로웠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구름 한 점 없는 한낮의 다리 위를 걷기 시작했다. 벚꽃이 내리고 봄이 가고, 물보라가 이는 여름이 가고, 낙엽이 낙하하는 가을이 지날 때쯤 우리는 다리의 끝에 도착해있었다.

다리의 끄트머리가 겨우 보이는 맨션은 크기는 작았지만 그에 비해 집세가 쌌다. 무엇보다 작기는 해도 창밖으로 다리가 보인다는 것이 좋아서 고른 곳이었다.


‘다리 이름이 카코토(過去事)라니 재밌지 않아? 엄청 문학적이잖아. 늘 모두가 지나는 곳 이름을 과거의 일이라고 짓다니 다리를 만든 사람은 소설가라도 되고 싶었던 걸까? 그럼 저 다리를 이와이즈미랑 건너면 같이 미래로 가는 걸지도 모르겠네. 내가 생각해도 부끄러운 말이긴 한데 그래도 주먹으로 치지는 마!’


귀 끝에 울리는 웃음소리가 방안에 찼고 그에 맞춰 방은 점점 여러 가지 물건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책장 하나와 큰 침대 하나. 그리고 곧이어 하나로는 버티지 못한 책장을 보충하기위해 또다시 갈색 책장 하나가 들어왔다. 평온한 곳이었다. 종종 창가에 여러 권 겹쳐 쌓은 책으로 만든 의자위에 걸터앉아 두 개밖에 없는 컵으로 같이 커피를 마실 때면 창밖의 작은 다리도 좋았다. 행복한 기억은 늘 2배속 감기를 누른 듯 재빨리 흘러갔다.

곧이어 눈도 내리지 않는 겨울이 왔다.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는데 창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남아있던 꽃들도 목이 꺾여 떨어지기 시작했다. 손안에 든 커피는 차게 얼어있었다. 겨울의 끝이 봄이라고 한 사람은 누구였던가. 겨울의 끝은 봄이 아닌 또 다른 겨울이었다. 남겨진 사람은 혼자 그 겨울을 견뎌야 했고 이곳에 남은 것은 나뿐이었다. 책무덤 속에 홀로 묻혀버린 나와 더 이상 연락이 없는 그 사람, 그리고 더 이상 건너지 못하게 된 다리만 남았다.

카코토(過去事)다리는 그 사람의 말처럼 정말 절묘한 이름이었다. 다리는 오늘도 내 꿈에서 과거의 일을 보여준다. 양손에 든 커피를 마셔도 목을 긁는 울음이 나오는걸 보니 아직 이곳은 꿈속이었다. 일시정지는커녕 0.5배속으로 눈물 나는 그때의 기억을 보여주는 꿈. 다리를 건너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손도 흔들지 않고 짐도 들지 않은 체였다. 겨울 내도록 꾸고 있는 이 꿈은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런 꿈도 드디어 끝이었다. 안녕 잘 가. 차라리 그렇게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가버려. 멀리 보이는 등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아니야 가지마. 아직 나는 인사도 못했는데, 아무것도 묻지 못했는데,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는데, 잠깐만 기다려줘! 숨이 가빠진다. 가슴의 고동이 멈추지 않는다. 창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었다.

그때 나를 깨우는 알람이 울렸다. 아침이었다.

 

왼손으로 침대 옆을 뒤적여 시끄럽게 울리던 알람을 껐다. 아직 해가 지평선 너머에서 완전히 올라오지 않은 새벽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완전히 차게 식은 바닥을 걸어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였다. 눈도 제대로 뜨지 않고서 찬장에 손을 넣어 인스턴트커피를 집었다. 헷갈릴 일은 없었다. 어차피 있는 거라고는 그게 다였으니까. 피어오르는 김에 손을 가까이하자 따뜻함이 느껴졌다. 겨울 내도록 꾼 꿈도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했다. 적어도 지금은 울면서 일어나는 일은 없으니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뎌졌다해서 슬프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고 무섭지 않다는 것도 아니었다. 커피를 마시며 진정해 보아도 여전히 심장은 아프도록 뛰고 있었다.

건조완료 알림소리에 세탁기에서 꺼낸 것은 작년 봄에 입던 옷들이었다. 설마 이것들을 꺼내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라 겨울이 시작할 때쯤 전부 한 상자에 접지도 안고 넣어 방한구석에 처박아 놨던지라 옷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못 입을 정도는 아니니까 다행이네.”


건조까지 마친 옷은 들어갈 때와 달리 몰라볼 정도로 깔끔해져 있었다. 반쯤 열어놓은 창문의 걸쇠부분에 옷걸이를 걸자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옷을 하늘거렸다. 3월의 바람을 맞으며 두 번째로 끓인 커피를 마셨다. 첫 번째 보다 설탕을 한 스푼 더 넣었더니 바람도 조금은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위장이 같이 으슬거렸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사람 하나 없던 다리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시계를 보니 벌써 6시 14분이었다. 첫차가 다리 끝의 역에 큰 소리와 함께 정차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은 평소와 다를 바 없다는 얼굴로 줄을 지어 열차를 기다렸다. 커피를 책 무더기 위에 올려놓고 오이카와 작가의 이번 신작을 찾았다. 어젯밤 오이카와에 대해 생각하다 무심결에 끝까지 읽어버리고 만 소설은 머리에 응당 있어야 할 자석이 없는 오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새 중에서도 철새의 머릿속에는 작은 자석이 들어있다고 했다. 1979년 미국의 한 연구자가 알아낸 사실이었다. 새들은 가로 세로 1mm도 되지 않는 그 작은 자석에 의지해 그들이 가야만 하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날아가는 와중에 소설의 ‘오리’는 어느 곳이 가야할 길인지 알지 못해 강 하구에 낙오되어버린 것이었다. 없는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오리는 결국 어떤 보답도 받지 못하고 혼자 하구에서 쓸쓸히 남아있었다. 그때 갑자기 철새 한 마리가 나타나 오리에게 길을 안내해 줄 테니 같이 이곳을 떠나자고 했고, 오리는 스스로 나아가는 것은 포기하고 결국 이름 모를 철새를 따라 강을 떠난다는 이야기였다. 팔랑팔랑 페이지를 넘겨 마지막 장의 마지막에도 후기가 없는 결말로 그렇게 끝이었다.

어제 작가의 기분이 그렇게 나빴던 것은 이게 이유인 것 같았다. 아마 오이카와가 생각한 마지막은 혼자 끝을 맞이하는 결말이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걸 편집부의 누군가가 고쳤던 게 아닐까. 소설은 꿈과 희망이 있어야 한다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니까. 그래서 내 전 담당자는 잘려버린 것이고 작가는 어제의 폭탄발언을 펑펑 터트리고 애꿎은 나는 그 덤터기를 쓴게 아닐까 하는 곳까지 생각이 미쳤다. 남은 커피를 전부 위로 쏟아 부었다. 아무렴 좋을 일이었다.

소리에 놀라 날아가는 새들과 함께 첫차가 출발했다. 결코 변할 리 없는 철로를 따라 움직이는 전차를 마치 익숙한 길을 가는 철새들과 같았다. 나도 준비를 해야 했다. 철새는 못되더라도 오리는 되어야 했으니까.

 

걸어서 20분, 전철을 타고 25분, 마지막으로 도보 5분은 직장의 거리치고는 적당했다. 멍하니 머리를 비우고 한 시간 정도 찬바람을 맞으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8시 반이 막 넘어가는 열차 안은 이곳에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인지 몰라도 늘 그렇듯 한산했다. 오늘도 습관처럼 전철의 순방향 자리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굳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손 안의 핸드폰은 일 때문에 오랜만에 가득 충전되어 있었다. 그 속에는 지난 몇 달간 얼굴한번 보지 못한 친구들의 전화번호가 가득했다. 그중 몇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이들도 있었다. 시상식장을 나온 직후 기억 속 희미한 오이카와에 대해 물어볼까 싶었지만 곧 그만두었다. 왜? 스스로 물어봐도 답은 모호했다. 다른 사람의 뒷조사 같아서 켕긴다는 이유인지 그마저도 귀찮다는 이유인지.

아, 오리다. 강 하구에는 전보다 그 수가 줄어든 오리 떼가 머리를 강에 박고 먹이를 찾고 있었다. 오리는 언제쯤 다리를 날아갈까. 이 긴 겨울이 끝날 때 날아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오이카와가 이번에 쓴 소설에 오리가 나오니 잘 알 테니 물어보자고, 불면증에 뒤따라오는 졸음을 쫓으며 생각했다.

 

“응?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이와쨩.”


어제 폭탄을 터트린 사람은 모른다는 듯이 오이카와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사무실의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기다란 갈색코트를 입은 체였다. 아직 차가운 공기의 냄새가 나는걸 보니 그도 출판사로 출근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오리야 뭐 새니까, 자기가 날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으로 날아가지 않겠어? 근데 그거 물어보려고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역시 감자 같네, 이와쨩. 그럼 감자와쨩인가? 아니면 이와감자쨩? 어느 쪽이 좋아?”

“그렇게 부르면 쿠소카와라고 불러버린다.”

“감자랑 쿠소는 완전히 다르잖아! 한쪽은 완전히 욕인데?”

“대체 오리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번 신간은 오리가 주인공인 건데?”

“그냥 집 앞에서 자주 보여서 그런 것뿐이야. 세상의 모든 소설가가 주인공을 잘 아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 이번 신간도 벌써 읽은 거야?”

“어젯밤에.”

“엉망진창인 책 읽는다고 수고가 많았네. 밤에 잠은 잤어?”

“적당히 잤어.”

“그런 것 치고는 눈 밑이 어두운데 말이야. 아침은 먹고 온 거야?”

“그건, 편집자로서 대답해야하는 말인가요?”


말끝을 올리자 오이카와는 다시 눈을 접으며 웃었다. 그러니까 저 얼굴을 분명 교복을 입던 무렵에 코앞에서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을 더듬어도 아리송했다.


“그렇지만 이와쨩은 내 책들을 읽었잖아? 글도 표현의 한 종류니까 전부 읽었다면 나랑 6번이나 만난거랑 같은 거잖아. 그것도 일방적으로 내 얘기만 한 거니까 미안해서 그렇지.”


손가락이 기다랗게 예쁜 손이 깍지를 꼈다. 단단한 손이었다. 체육관에서 공을 올리던 손이었다. 그래, 분명 나는 이 사람을 중학교 때 만났었다. 고등학교 때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히 16살 무렵, 저 웃음을 보았었다.


“내가 살 테니까 밥이라도 같이 먹는 건 어때?”

응? 이와쨩




이상 <오버 더 브리지> 웹 공개본 입니다.

저번 월간 오이이와에서 부터 지켜봐 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소설 중간부, 후반부의 샘플과 함께 인포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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