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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이와]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신을 믿지 않는다

월간 오이이와 마지막 참여글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매년 새해에 신사의 본전(本殿)에 들어서 끈을 흔들어 종을 울리고 새전으로 5엔 동전을 던진 후 양손을 가운데 모아 올해도 부디 좋은 일이 있게 해주세요, 라며 습관적으로 빌었지만 정말로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깊이 떠받들고 모신적은 없었다. 누군가  듣는다면 불경한 녀석이라며 등을 후드려 팰지도 모를 일이지만 여하튼 나는 19년을 그렇게 살면서 일말의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언제나 나를 믿어주는 든든한 가족이 있다. 속을 터놓고 고민을 얘기하고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도, 하고 싶은 일도 잔뜩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어쩌면 평생 함께할 연인이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부족함 없는 일상이었다. 신은 간절한 이들이 믿는 거라고들 하는데 그렇기에 나에게 신앙심이라는 것은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신?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데. 애초에 신을 안 믿는다고 해서 천벌 같은걸 받을 리도 없잖아? 누군가의 물음에 코웃음과 함께 흘렸던 말들이 기억났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그래서 일어난 일일지도 몰랐다.

“이와쨩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정장을 입은 오이카와의 등 뒤로 붉은색 망토가 펄럭였다. 웃고 있는 입의 양쪽 끝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것은 송곳니였고 손에 들린 것은 황동색 촛대였다. 머리 위로 시선을 올리자 높은 천장에는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샹들리에가 걸려있었다. 오랫동안 타인의 손을 타지 않아 시꺼먼 먼지를 두껍게 뒤집어쓰고서 햇빛도 받지 못해 원래의 것처럼 반짝이지도 않았다. 이 기묘한 풍경은 어딘가의 스튜디오에 온 것도, 놀이동산의 유령의집의 것도 아니었다.

“너도.”

익숙해져버린 이곳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었고, 우리의 일상이었다.


오늘따라 삐걱이는 왼손으로 슬쩍 든 두꺼운 커튼너머의 창밖으로는 오늘도 황무지 너머에서 불타고 있는 땅이 보였다. 더 이상 미야기라고 부를 수 없는 곳이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그 황무지에서도 꼭데기에 위치한 낡은 성이었다. 위치해 있는 곳이 경사진 절벽의 끝이여서 유독 잘 보이는 그 경관은 마경(魔境)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곳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평범하게 체육관에서 배구를 하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할로윈도 아직이었던 그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 보이던 것은 날아오던 공 너머 얄미울정도로 자신감 넘치던 얼굴이 아닌 눈물을 글썽이며 내려다보던 오이카와의 얼굴이었고, 세상은 이미 한번 뒤집힌 후였다. 아니 어쩌면 두 번이나 세 번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기괴한 세상에 남은 인간이라고는 우리 둘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이와쨩, 밥 먹자!”

오이카와는 왼손으로는 통조림을, 오른손으로는 갓 볶은 푸르죽죽한 채소를 담은 접시를 들고 있었다. 물론 그 채소가 멀쩡한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볶음은 늘 먹던 통조림 보다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나는 익숙하게 다리 하나가 검게 썩어가는 탁자위에 포크를 준비했다.

“너는 이런 건 적응도 잘하네, 평소에는 잠자리만 달라져도 제대로 못 자던 놈이.”

이번 볶음은 뿌리여서 그런지 저번 잎보다는 덜 부드러웠다. 어금니 사이로 아삭이며 볶음이 부서졌다. 음 역시 볶음은 이래야지. 밥이 없는건 아쉬웠지만 지금상황에서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나도 익숙하지는 않지. 하지만 별수 있어? 지금 할 수 있는건 적응밖에 없잖아.”

오이카와도 곧 포크를 들어 채소를 입에 넣었고 표정이 구겨졌다. 입을 물로 몇 번이고 행구고는 결국 오늘도 오이카와는 통조림을 열었다. 전부 이 성에 있던 것들이었다.
   어쨌든 오이카와의 말은 맞았다. 이곳에 온(어쩌면 떨어진) 이후 보이는 사람은 없고, 움직이는 것들은 죄다 이상한 것들뿐인데다 하늘의 색부터 달라져 있으며 땅에서 불이 치솟는 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적응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도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다행히 오이카와는 대충이나마 기억을 하고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왜 나만 기억이 없는거지?”

투덜거리며 다시 채소를 입에 넣었다. 오이카와는 희희낙락한 얼굴로 통조림 속 달콤한 옥수수를 포크로 떠먹으며 말했다.

“머리를 부딪쳐서 그렇다니까 그러네?”

손을 들어 뒤통수를 문질러 봐도 혹은 없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려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곳에 온 이후 나아버린 것일까? 야채와 포크를 씹으며 고민하다 오이카와의 시선이 턱을 괸 왼손으로 따라오는게 느껴졌다. 다시 삐걱이는 왼손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다시한 번 왼쪽, 오른쪽. 고양이에게 하는 장난같이 이리저리 움직이다 그나마 멀쩡한 오른손으로 녀석의 이마를 때렸다.

“세터에서 고양이로 직업변경이라도 한 거야?”

“세터에서 뱀파이어였다가 고양이로 변경했다고 해줘.”

“그럼 뭐 나는 스파이커에서 좀비로 변한거냐?”

“스파이커에서 좀비가 됐다가 고양이풀이 된 거지.”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요란했다. 확실히 오이카와가 입고 있는 옷은 이 성에서 찾은 뱀파이어 같은 옷이었고 내가 입고 있도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찾은 평범한 옷이었다. 옷만 그렇게 입으면 됐지 굳이 뱀파이어네 좀비네 하는 것을 얘기했던 이유는 오이카와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배구 경기장 안에서는 나랑 이와쨩은 세터랑 스파이커로 파트너였잖아? 그런데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완전히 뒤집힌 곳인데다 성이니까, 그러니까 뱀파이어인거야.”

“너는 옷 때문에 뱀파이어라고 쳐. 나는 왜 좀비인건데?”

“음 생긴게 감자라서?”

“감자랑 좀비랑 무슨상관이야? 그럼 감자한테 한번 맞아볼래?”

“그렇게 말하면서 벌써 때렸잖아!”

“뱀파이어면 가짜좀비 주먹정도는 넘기라고 쿠소야!”

아프다는 투덜거림이 오이카와의 목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이와쨩 고양이풀에서 아픈 좀비로 다시 변한거야?”

“그러니까 좀비 아니라고 했지!”

또다시 엄살 부리는 소리와 내 왼손이 삐걱이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잘 때 뭔가 단단한걸로 고정해놓던가 해야지.

어쨌든 이곳에서 우리는 멀쩡했다.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던가.

오늘도 눈을 뜨고 가장 처음 보인 것은 오이카와의 얼굴이었다.

“나 이번에는 며칠이나 잤어?”

“한 3일 정도?”

그렇게 말하는 오이카와의 손에 잡힌 것은 무언가의 가는 뼈로 만든 것 같은 뜨개질바늘과 두 개의 바늘 사이에 얽혀있는 무언가의 털이었다. 제법 양이 쌓인걸 보니 어쩌면 3일 이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오고 종종 나에게 갑자기 기억이 끊어지며 잠에 빠져드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나절, 하루, 이틀 그리고 오늘은 삼일이었다. 배구를 하면서 그렇게 운동을 했지만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다. 제법 적응을 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유일한 일이었다. 잠이란 든다, 기 보다 빠진다, 는 말이 정확하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처음 알게 됐다. 시합직후 피곤해 죽겠는 몸으로 누워도 24시간 이상은 잔 적 없던 일이라 더욱 이상하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왜 그런 걸까?”

“뭐가?”

“이렇게 잠에 빠지는 일 말이야. 그런 병도 있다고 들은 거 같은데, 그런 걸까?”

침대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움직이는 팔다리가 삐걱거렸다.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을 처음 조립했을 때와 같은 느낌의 위화감이었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세상도 이렇게 이상해졌는데 잠이 늘어난 것 정도야 있을 수 있는 일 아니겠어?”

“오래 자서 그런지 몸이 영 뻐근하네. 아, 거기다 팔에 또 상처가 생겼어.”

“몽유병이라 돌아다니다가 다친거 아니야?”

“오이카와 네가 옆에 있었다면서. 몽유병이면 진즉에 알아보고 놀려댔겠지, 쿠소카와. 쿠즈카와.”

“이제 둘밖에 없는 사이인데 너무하네! 그런것보다 이것봐 이와쨩, 이번 건 제법 배구공 같지 않아?”

“오 이번건 잘 만들었네. 그런데 내 몸이 안좋은게 ‘그런거’라니 맞을래?”

“맞을래 라고 물으면서 때리는건 반칙이잖아! 오이카와씨 잘생긴 얼굴 때리는데 힘쓰지 말고 어서 일어나서 배구나 하러 가자.”

오이카와의 말대로 생각해서 바뀔 일은 아니었다. 오늘도 그러려니 하는 일들이 늘어났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살풍경한 곳에서도 가끔은 사람 비슷한 것들이 있기도 했다. 말 비스무리한 것을 중얼거린다던가 두발로 걸어다닌다던가, 교집합은 적었지만 이런 곳에서 그 정도면 충분히 ‘인간 비슷한 것’의 범주에 드는 것들이었다. 물론 그것들은 곧 이 성에서 없어졌다. 오이카와의 말로는 갑자기 미쳐버렸거나, 죽어버려서 뒤뜰에 묻었다고.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둘만 남게 되는 일의 반복이었다. 어쩌면 정말 신을 믿지 않아서 일지도 몰랐다.

그래.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신을 믿지 않았다. 어쩌면 갑자기 세상이 이렇게 된 것도 그 때문일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오이카와 너는 신을 믿어?”

“아니, 나는 한사람밖에 안 믿어.”

오늘도 하늘이 우중충한 이곳에서 우리는 살아 움직이면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버섯들을 볼링 핀으로 삼아 볼링을 했다.

스트라이크였다.


우리는 이제 ‘타인이 없다’는 말보다 ‘이곳에 우리밖에 없다’는 말을 썼다. 주어와 목적어가 달라진 문장은 우리의 사이가 전보다 가까워졌다는걸 뜻하기도 했다. 어쩌면 대부분 그걸 뜻할지도 몰랐다. 대화의 상대는 눈앞의 한사람으로 한정되었고 감정표현의 대상도 그렇게 되었다. 세상이 뒤집어 졌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것 치고 우리 달라진 건 그렇게 없지 않아?”

박쥐 가죽을 짜깁기해서 새로 만든 공을 튀기며 물으면 볼링핀 대용으로 썼던 버섯을 찢던 오이카와가 대답했다. 버섯은 곧 우리의 저녁식사가 될 예정이었다. 기름을 살짝 두르고 센불에 볶으면 맛있을 것 같았다.

“눈치 채는 게 너무 늦어 이와쨩.”

오이카와가 뱉어낸 한숨을 두르고 버섯은 곧 불 위에서 뜨겁게 뒹굴었다. 붉은 색 갓은 곧 검은 그으름과 함께 주황색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렇게 두 명만 남을 때 상대가 이와쨩이라 다행이야! 그렇지?”

이 나간 하얀 접시위에 다 구워진 버섯을 떨어트리고 오이카와가 날카로운 포크를 내밀었다.

“영화로 치면 음... 시체들에 새벽인가?”

“배틀로얄이지 않아?”

“그건 밖에 상황이겠지 바보카와. 어제 잠이라도 제대로 못 잔거야? 이상한 소리나 하고.”

“에헤헤 그럼 오늘은 일찍 자자. 그것보다 어서 오이카와 뱀파이어씨 특제 버섯구이나 먹으라고!”

“구이야 볶음이야?”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까 정하기 나름이지 않을까?”

“그럼 볶음으로.”

“좋아. 아, 그리고 이거 지하실에서 찾은 와인인데 이것도 마실래?”

“미성년자지만 이제 법도 없으니까 상관없겠지?”

“이와쨩이 왠일로 분위기에 맞추네. 내가 만든 볶음이 너무 맛있었나? 그럼 건배!”

“그전에 건배사라던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흐음 좋아. 이와쨩이 볶음을 정했으니까 건배사는 내가 해도 되지?”

“그러던가.”

“그럼 우리 둘만 남은 세상을 위하여!”

“축하해야하는걸 해야지 바보가.”

또다시 헤픈 웃음을 짓는 오이카와에게 가볍게 공을 던지고 우리는 건배를 했다. 유리가 부딪히는 소리는 명쾌하게 울렸다. 와인은 조금 쌉싸래한 맛이었다. 입맛을 다실수록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아마 오래도록 혀끝에 기억날 것 같았다. 단숨에 비워낸 첫 번째 잔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흥겹게 두 번째 잔을 따랐다. 처음 마신 술이라 그런 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도 없는 우리 성을 위하여!”


속을 비우고 만들었던 뜨개질 공에서 진화해서 이번에는 풀로 만든 겉면 안에 가벼운 털들을 가득 채운 공이었다. 32번째 것이었는지 33번째 것이었는지는 햇갈리지만 여하튼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겉의 질긴 풀은 내가 새로 캐온 것이었지만 북슬한 갈색 털은 늘 그렇듯 처음 보는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털들을 한데 뭉치고 다시 떼는 것을 반복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렇게 하면 털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서 부피는 커지지만 무게는 그대로라 공의 모양을 유지하면서 가볍게 만들기에 좋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오이카와가 부풀린 털이 공안에 잘 들어가도록 구멍 사이를 벌렸다.

“너 재료를 잘도 찾아오네. 늘 처음 보는 것들인데.”

“왜 저번에 봤던 뒤뜰에 기다란 나무 있지? 거기에 새가 둥지를 틀었더라고. 그래서 잽싸게 잡았지.”

“그럼 오늘 저녁은 닭고기라는 말?”

“지금 탕으로 끓이는 중이야.”

“그럼 그전에 배구라도 할까?”

“이제는 리시브 해 줄 사람이 없지만.”

“그래서 불만인거야?”

“그럴 리가.”

부엌에서 펄펄 끓는 소리와 함께 고기를 끓이는 냄새가 퍼졌나갔다. 이번엔 여태껏 잠들었던 시간들을 모두 합쳤던 것 만큼 잠들었던 것의 기념이라며 특별히 음식에 신경을 썼다는 오이카와의 머리를 쥐어박아주고 우리는 오늘도 평소의 일상대로 1층으로 향했다. 이곳에 온지 몇 일 째인지는 알 수 없고 우리밖에 남지 않은 것도 이건 이것대로 괜찮으니 모두 상관없다는 달콤한 소리를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속삭인다.

배구라기보다는 배구놀이가 되어버린 것의 룰은 간단했다. 서로 공을 네트 너머로 주고 받다가 세 번에 한번씩 스파이크를 날리고, 받지 못한 사람이 다시 공을 가지고 와 서브를 한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해가 질때까지 반복하는 간단한 룰이었다. 애초에 사람이 두명밖에 없으니 이것밖에 방법이 없기도 했다. 이번엔 오이카와가 스파이크를 날릴 차례였고 늘 제대로 조준하던 녀석이 이번은 무슨 생각인지 내 뒤의 지하실로 공을 날려버렸다. 경쾌한 홈런이었다.

“너 일부러 날린거지?”

“에이 그럴 리가. 이와쨩이야말로 제대로 못 받았으니까 어서 주우러 가야지. 지금 리시브 못해서 변명하는거야?”

눈을 흘기며 지하실로 내려가자 등 뒤로 오이카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일단 올라가면 공을 있는 힘껏 오이카와 녀석의 얼굴에 날려줄테다.

몇 번 와보지 않은 지하실은 이름대로 어둡고 축축했다. 내려가는 계단 중간중간 벽에 걸린 양초들만 아니었다면 절대로 내려가지 않을 모습이었다. 공은 어디까지 기세 좋게 떨어지고 있는지 구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해서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하실 맨 밑층에서 세어 나오는 불빛이었다. 공은 그 앞에서 멈춰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세어 나오는 것은 불빛만이 아니었다.
마주친 것은 묶여있던 사람의 눈이었다. 하얀 동체에 검은 동공을 가진 그 눈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익숙하게 보던 것의 눈이었지만 지독할 만큼 낯설게 느껴졌다. 눈은 말하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죽기 싫어요. 분명 나는 여기서 죽을 거예요 살려주세요. 문틈으로 들리지 않는 비명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몸이 안 좋다고 오이카와에게 말했었지. 머리가 쓸데없는 사실을 끄집어냈지만 손은 그보다 빨랐다. 조금 열려있던 문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닫혔다. 더 이상 나오는 빛은 없었다. 쿵하는 소리에 놀라 내려 보니 문을 닫은 것은 내 손이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은 둘이고 내가 한 일은 아니니 남은 건 하나였다.

가슴이 뛰었다. 사실은 뛰지 않는 심장이었지만, 느끼기에는 처음으로 경기에 나갔을 때만큼, 오이카와에게 고백을 받았을 때만큼이나 세차게 뛰었다. 멀어진 지하실에서 아직도 긁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가슴 속에서 또다시 달큰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괜찮아. 이건 이것대로 행복하니 모두 괜찮아. 그래 이곳은 모든 게 이상한 세상이었다.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창밖에서는 연신 불을 뿜는 땅이 있고 가짜 뱀파이어와 좀비가 같이 사는 세상이었다.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이상해진 것들과 같아야 했다.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가짜 뱀파이어 연인과 좀비인 나뿐이었다. 신도 없는 세상이었다.

“이와쨩 얼굴색이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지하실은 곧 기억에서 지워졌다.

“오늘 밤에 나 또 오래 잘 것 같아서. 오늘은 배구하고 일찍 자야겠어.”

“그래? 그럼 이번엔 성 구석에서 새로 찾은 이불 덮어줄게 같이 자자.”

오이카와는 기쁜 표정으로 공을 건네받았고 곧 공이 날아올랐다. 공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처음으로 기도했다.

신이시여, 오이카와를 용서해주세요. 아멘.


까치/@ggga_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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