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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레오] 바벨의 노래

sing of Babel


“레오군은 말이야, 언제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어?"

“말을 시작했을 때부터?”

“하? 너무 빠르잖아. 농담하는 거야?”

“말이 안 된다니 그렇지 않아 세나! 인간의 언어는 모두 제각각이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명곡을 낳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거야!”

“아니 말이 안 된다는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고?”

“그거랑 같은 거라고~?”

“흉내내지마 바보 왕님이.”

의자라는 사물의 사용법을 잊어버린 건지 연습실 바닥에 주저앉고서 그 의자를 책상삼아 곡을 쓰던 작은 주황머리는 거슬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곡을 써나갔다. 2년 전의 일이었다. 과거의 악보위에서 사각거리는 펜 소리와 흥얼거리는 콧소리가 섞여 들어간다.

“그럼 말이 안돼서 언어 센스가 그 모양 인거야? 이번 곡 제목도 이상하잖아. 왜 계속 나한테 이상한 부사들을 붙인 걸로 정하는 건데? 짜증나. 그냥 적당히 그럴 듯 한 걸로 붙이지 그래?”

“세나, 다시 얘기하는데 ‘말’은 중요치 않아. 바벨탑이 무너졌을 때부터 말은 통하지 않게 됐다고! 그러니까 음악만 있으면 돼. 그래도 모차르트는 싫지만 말이야!”

말로 전하는 센스는 최악인 레오군과 세상에 불쾌한 것 밖에 없는 나. 꽤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뭐,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자만인지 오만인지 알 수 없지만.

“흐응. 어차피 통하든 말든 별로 상관없잖아. 결국 남이고. 이해할 수 있을 리 없고.”

부정과 함께 떨어진 악보는 소리도 없이 떨어진다. 그래, 무력하게 무너지는 바벨탑처럼.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들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신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렸다. 바벨탑 건설은 결국 혼돈 속에서 막을 내렸고, 탑을 세우고자 했던 인간들은 불신과 오해 속에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되어 각기 다른 언어들과 함께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21세기가 되어 신이 사랑하던 천재가 쌓던 노래의 바벨탑은 그의 이상과 관계없이 무너져 내렸고 왕은 그렇게 상처투성이로 탑에서 거꾸러져, 남은 건 갈 곳 잃은 기사들뿐이라는 이야기다. 영양가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허무하고 재미없고 짜증나고 흔하지만 그렇다고 눈물이 나지 않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째서 이 이야기가 생각났느냐 하면 전부 이 쓸모없는 인터뷰 때문이다. 3학년의 마지막 여름방학 전에 있을 유닛 모두와 하게 될 단체 인터뷰의 사전 준비서류.

 

‘세나 군은 어떻게 아이돌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노래가 들렸기 때문입니다.’

 

‘세나한테 내 노래는 들리고 있어?’

‘늘 들리는 게 레오군 노래잖아. 매일 그렇게 옆에서 노래해 대니까, 안 들릴 수가 없다고?’

‘아니아니 틀려! 그거랑은 전혀 다른 거야 세나! 노래는 닿는 거니까 말이야! 귀로 듣는 건 단순한 말 이야. 하지만 말은 결국 모두에게 들리지는 못해. 그래서 무너진 거지. 하지만 노래는 가능하거든! 내 노래는, 세나한테 제대로 닿고 있어?’

‘네네, 닿고 있어. 지나칠 정도로 귀를 막아도 짜증날 정도로 들려. 이제 됐지?’

‘응 다행이야! 오늘도 좋아해, 사랑해 세나!’

얼굴을 붉혔던 그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오래된 아이팟의 노래가 재생되기 시작된다. 지겹고 지겹게 들어서 더 이상 귀에 이어폰이 꼽지 않아도 재생되는 노래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음에 닿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결국 노래도 흩어질 뿐 우리의 탑은 일 년도 더 전에 이미 붕괴됐다.

 

‘세나군은 왜 아이돌을 하고 계신가요?’

 

자유롭고 싶다. 가족의 일도, 속물적인 일에도 해방되고 싶다. 단순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레오군은 천재였고, 계속해서 모든 일들에 얽매여 계속해서 자신의 바벨탑을 쌓아가다 무너져 내렸다. 천재는 신의 아이라더니 결국 자멸한 꼴이다. 그렇게 냉소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눈앞이 흐려졌다. 인상도 찡그리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무척 당연하게 흘러야 했던 것이 너무 늦게 흘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소리가 없는 새벽이라도 너의 노래가 멈추지 않고 들린다.

“직접 말로 했으면 될 텐데 그 바보가. 바벨탑이고 뭐고 그냥 한마디면 됐는데.”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가슴에 꽂힌다. 책상위의 서류가 간단히 주먹 쥔 손에 구겨졌고 그보다 빠르게 목이 메였다.

사랑이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일찍 깨달았다. 너는 나에게 영원한 여섯 번 째 손가락, 없는 것이 나을 환상통.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절대로 너를 버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너는 나에게 이 아이팟을 건넸던 걸까? 너에게 결국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불충스러운 기사가 어디까지 아플 수 있나 보기 위해서? 충전하지 않은 아이팟의 전원은 이미 다 닳았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더 이상 내 귀에는 네 노래밖에 들리지 않으니까.

나는 언젠가 네가 더운 여름에 지지 않을 하늘을 가리켰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너와 함께 했던 눈 덮인 겨울도 기억한다. 또한 어두워 빛 하나 없던 검은 산을 같이 올라 저기까지 노래가 닿으면 좋겠다며 별을 올려다보았던 것도 기억한다. 다시 생각하면 눈물 나는 기억이다. 날은 지고 있었는데 음악은 오늘도 멈추지 않았다.

타인의 말을 듣는 것에 의미를 둔 적은 없었다. 모두 쓸모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런 내 귀에도 너의 노래가 들렸다니 너는 얼마나 전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고 했다 해도 너에게 닿지 못했을 테지. 너는 스스로 지은 바벨탑 위의 최고점에서 낙하해버렸고 나는 그저 땅위에 사는 사람일 뿐이니까. 너의 말대로 언어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너에게 노래로 전해줄게. 더 이상 탑은 필요 없어. 그때의 너처럼 너덜너덜해진 내가 지금도 이 자리에서 아이돌을 하고 있는 이유니까.

 

이제 그 아이팟에는 하나의 폴더가 더 생겼다. 이전에 있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제목들이지만 다른 것은 부른 사람뿐이다. 닿지 못하는 말 대신, 어쩌면 이번에는 닿을지 모르는 노래로. 말이 아닌 노래만이 가득하지만 나는 이게 천 마디의 말보다 더없이 너에게 닿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

“그러니까 얼른 돌아오란 말이야 바보레오군.”

답가가 담긴 아이팟은 곧 오늘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곧 ,

 

‘세나군은 왜 아이돌을 하고 계신가요?’

(‘시작한 사람이 멈춰버린 노래라도, 누군가 계속해서 이어 부르면 그 답가가 올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까치/@ggga_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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