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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레오] 사물함 속의 러브레터

이즈레오 전력 60분 주제 '사물함'


잡동사니들이 정리되지 않은 사물함 속에서 그 러브레터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던 것은 그 속의 모든 사물들 중 유일하게 제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열어본 것은 일 년하고도 몇 개월 만이었다. 이 학교에 돌아오고 이곳저곳 제멋대로 지내기를 몇 달, 책상에 쌓아놓던 짐들이 넘쳤다는 게 이유였다.

“으으음? 이게 내 사물함이었던가?”

내 글씨가 이렇게 반듯할 리 없는데? 하얀 종이 속에 수기로 쓰인 이름. 내가 없던 일 년 동안의 나. 글씨를 제대로 쓴 게 언제가 마지막이더라, 그렇게 데굴데굴 굴러가는 생각 속에 열어본 사물함의 무질서 속에서 먼지하나 없이 있던 게 이 하얀 편지봉투다. 그걸 남의 사물함 속에 구태여 넣어놨다는 건 러브레터?

“앗 잠깐만 떠오를 거 같아! 인스피레이션!”

앞뒤로 돌려봐도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새하얀 봉투를 흔들면 사각거리는 종이들이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새하얗고, 아무것도 써지지 않은 봉투, 그리고 약하게 맡아지는 상쾌한 냄새.

킁킁, 킁킁킁. 음?

“어디서 맡아본 적 있는 거 같은데.”

가볍고 묘하게 차가운 냄새, 어디서였더라?

팔을 뻗어 천장의 형광등으로 비쳐보아도 보이는 건 불투명한 내용물뿐이었다. 으음 역시 우주인이 보낸 건가?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분명 명곡이 탄생할거야! 스티커도 아닌 풀로 붙인 봉투. 누군가가 생각나는 무뚝뚝한 섬세함.

구겨짐 없이 조심스럽게 접은 봉투는 궁금증과 같이 뜯겨졌다. 나온 것은 한 장뿐인 편지. 아마도 예상대로 러브레터. 쓰여진 것은 예상외로 단 한 줄과 한마디였다.

 

 

길을 잃은 건지 생각이 길을 잃은 건지 또다시 인스피레이션이라는 것에 제멋대로 빠져 어딘가에서 펜으로 끼적이고 있을 왕님을 찾는 것은 내 일이었다. 짜증나, 최소한 시간은 지켜야 하는 거 아냐?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주황색 꼬리를 찾던 세나가 마침내 찾은 곳은 꽤 오래된 사물함이 있던 창고였다. 창고래 봤자 예전에 쓰던 별실일 뿐이지만 이미 일 년도 더 전부터 쓰지 않게 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언제나처럼 엎어져 펜을 놀리던 것이 왕님. 찾아서 다행이다. 오른손으로 창고의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왕님 이런 곳에서 작곡하지 말라니까? 먼지란 먼지는 다 뒤집어 쓰고 뭐하는 거야. 그리고 레슨시간은 제대로 맞추라고.”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에게 다가가자 그의 시선이 있는 곳에 있는 것은 종이였다. 예전에 글자가 이상한 그를 대신해 써줬던 이름표와 악보. 제목은 사물함 속의 러브레터.

사고가 정지한다. 그러고 보니까 여기는,

“봤어?!”

“아냐, 난 캐비닛 안에서 아무것도 못 봤어!”

“근데 제목이 왜이래?!”

“진짜 러브레터는 못 찾았다니까!”

“아 진짜! 짜증나! 모르는 척 하라고!”

“걱정 마 제대로 답장하는 중이니까!”

까치/@ggga_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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