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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레오] 듀엣, 카논

숏컷과 피어싱과 문신



그는 늘 목덜미가 가려질 만큼 제멋대로 자란 머리를 한쪽 어깨에 걸쳐 묶는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다. 아니, 고수했다기 보다 신경 쓰지 않는 것에 가까웠다. 누군가 손봐주지 않으면 이쪽저쪽으로 뻗쳐 마치 그 주인의 성질을 닮아 정리가 되지 않는 머리는 잔소리와 함께 시간을 들여 말끔히 빗어주면 그런대로 봐줄만한 발랄한 주홍색이 되었었다. 두 음절의 이름을 부를 때 마다 젖살이 덜 빠진 얼굴 옆에서 마치 꼬리처럼 흔들리던 주홍빛.

처음 만난 16살의 고등학생 때부터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어버린 지금까지 그 길이를 늘여가던 색은 그날 저녁 일을 마치고 들어가자 가리고 있던 목덜미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세나 왔어?”


언제나처럼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말꼬리를 잡고 들어오는 대답이 돌아오는 저녁이었다. 현관문을 돌아보지 않고 소파에 앉아 TV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오는 동창생의 모습을 보고 있던 레오군의 모습에 오늘도 평소와 같은 하루구나, 라고 생각하며 오늘의 저녁 샐러드를 고민하고 있던 그때 TV의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빛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 곳에서나 다짜고짜 드러누워 인스피레이션과 우주와의 통신을 외치는 누구씨 덕분에 집안에 유리제품은 애초에 들이지도 않은 이 집에서 그렇게 빛날만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뒤돌아보지 않는 레오군이 앉아 있는 2인용 소파에 발소리 없이 다가서자 보인 것은 목이 훤히 들여다 보일만큼 짧게 잘린 머리칼과 그 사이에 드러난 귀에서 반짝이는 피어싱들이었다. 은색과 금색으로 빛나는 다섯 개의 날카로운 바늘들. 그것들이 오늘 아침 스튜디오로 촬영을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깨끗했던 귀의 위부터 아래까지 꿰뚫고 있었다.

TV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때 까지 목덜미를 황망하게 바라보고 있자 그제야 눈치 챈 그가 짧아진 머리를 흔들며 눈을 길게 접어 웃었다.


“왜 그래 세나, 돌아왔으면 인사해야지! 자 웃츄~!”

“방금 들어오면서 한 거 들었잖아? 벌써 까먹은 거야 레오군?”


주황빛 머리칼은 분명 같은데, 웃으며 어리광 부리는 그 얼굴도 같은데, 하지만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자르지 않던 머리였는데. 생각이 그 다음으로 전개되지 못하는 머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때에는 가만히 있으면 절반은 간다는 말을 어렵게 떠올렸다.


“저녁은 닭가슴살 샐러드로 할 거니까 탁자 좀 정리해줘.”

“알았어!”


대답 또한 평소와 같은 레오군이 수저를 서랍에서 꺼내며 보인 손등에는 얼핏 보기에 제법 작지 않은 문신까지 그려져 있었다. 이제는 생각할 기력도 없어 포장에서 꺼낸 생고기를 보지도 않고 프라이팬에 뭉텅이채로 올렸다. 치직 거리는 소리와 수저가 식탁에 놓이는 소리가 듀엣이 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머리가 물었다.

지금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물론 대답은 없었다.


 


오늘의 저녁인 토마토 닭가슴살 샐러드의 레시피는 간단하다. 양상추 20g에 방울토마토 10개, 닭가슴살 2쪽과 로즈마리 약간, 레디쉬 2개와 어린잎 10g을 준비한다. 우선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자르고 이번에는 그냥 구워버렸지만 평소에는 오일에 소금과 후추를 뿌린 닭가슴살을 적당히 달군 프라이팬 위에 구워준다. 노릇하게 구워진 닭가슴살은 한입크기로 잘라주고 올리브 오일 두 스푼과 다진 양파 크게 한 스푼, 발사믹 식초 두 스푼에 어제 마시고 남겨 둔 레몬주스 세 스푼을 섞어 만든 드레싱을 준비한 야채와 그 위에 얹은 고기에 얹어주면 끝. 레오군은 레디쉬를 싫어하니까 그건 내 몫의 샐러드에만 올려준다. 채소는 싫다고 투덜거리는 동거인도 나름대로 만족하는 샐러드의 완성이다.


“잘 먹겠습니다!”


양상추를 씹어 넘기며 마주 본 얼굴은 어제와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그동안 나름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왼쪽의 꽁지머리와 자국하나 없던 귀, 그리고 오른쪽 손등이었다. 사람이 갑자기 겉모습을 바꾼다는 건 죽을 때가 됐을 때거나 정말 변했다는 뜻이라는데 레오군은 어느 쪽일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는 것이 앞에 앉아있는 츠키나가 레오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이쪽은 최대한 얼굴표정을 바꾸지 않고 갑자기 나타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중인데 기세 좋게 우걱우걱 고기만 골라먹는 얼굴은 태연하기만 하다.

몇 년간 잠잠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찾아온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혹시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와 트러블이라도 생겼나? 그것도 아니면 당장 지금이라도 나이츠 활동을 그만두겠다고 선언이라도 하려는 걸까? 아니 그렇게 책임감이 없는 녀석은 아닌데. 거기다 요 몇 년간 딱히 문제랄 것도 없었다. 차라리 작곡나라의 왕님이 되어 고양이들을 신하삼아 살겠다는 폭탄발언을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아니 분명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 저 녀석이라면 그러고도 충분하지.

일단 그 입에서 나올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말은 헤어지자는 말. 아니면 또 그때처럼 어디 멀리 외국으로 떠나버리겠다는 선언. 둘 다 최악이지만 동시에 해버린다면? 그러고 보니 여권은 어디 있더라?


“왜 그래 세나, 무슨 일이라도 있어?”

“응?”

“하나도 안 먹고 있잖아. 어디 아픈 거야?”

여전히 적응 되지 않는 그 반짝이는 피어싱을 찰랑거리며 물어오는 앳된 얼굴을 애써 외면했다.

“멀쩡하니까 신경 끄고 남은 야채도 먹지 그래?”

“야채는 초식동물이나 먹는 거야!”

“아 그래. 그럼 일단 이거나 먹고 입 좀 다물고 있어.”


닭가슴살 덩어리 하나를 입에 넣어주자 조용히 우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반응을 확인하고서 들고 있던 젓가락을 놓고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송신자는 매니저, 내용은 여권이 어디 있냐는 것. 유능한 매니저답게 곧 답장이 왔다. 발신자는 매니저, 내용은 ‘멤버 전원의 여권은 사무실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세나씨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은 저 앞의 녀석에게 있지 저에게는 없습니다만. 마지막 말은 답장에 입력하지 않고 적당히 얼버무린 말을 전송했다. 레디쉬의 맛이 쓴지 단지, 생각 없이 목구멍을 넘어갔다.


“오늘도 맛있는 저녁이었어, 세나!”


저 녀석에 관한 생각만 빼고.

 



“세나 인스피레이션이 떠오르게 이 부분 좀 불러봐! 도에서 솔로 천천히 올라가는 거야.”

“이거? 이번 새 앨범에 들어갈 새 곡이야. 어때, 명곡이지? 와하하 역시 나는 천재라니까!”

“카논형식인데 나누자면 바흐의 <푸가 기법>중에 나선상 카논이 기본인 곡이야. 카논의 주제라고 하는 1성부의 선율이 시작되고 응답이라고 하는 다른 성부가 시간 간격을 두고 주제를 한번 모방 할 때마다 조금씩 높게 조바꿈을 하는 거야. 재밌지? 흠 흐흠~ 이 부분 말이야, 여길 세나가 부르는 거야. 난이도는 조금 있지만 세나라면 분명 잘 부를 수 있을 거야.”

“오랜만에 둘이서 부르는 곡이네, 세나.”

“시작은 나, 다음은 세나, 다시 나, 그리고 세나! 흥흥 8악장까지 반복이지만 지겹지는 않게 계속 변주하니까 분명 명곡으로 태어날 거야.”

“그럼 잘 자고 내일 봐!”


어째서 레오군이 저렇게 하루아침에 변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사람을 붙잡고 신곡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다 평소처럼 노래를 부르게 하고는 우주와의 통신을 외치고 또다시 멀쩡한 탁자를 놔두고서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악보를 휘갈기다가 졸리다며 안방의 침대 오른쪽 구석에 누워버리고는 다시 멋대로 인사를 하고 잠들었다. 놀라울 정도로 변하지 않는 모습이 반복되자 이제는 내가 이상한 건가 의심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등을 돌리고 누워 졸음이 오지 않는 머릿속으로 어쩌면 자고 일어나면 전부 꿈이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닛은 휴식기지만 개인 일거리가 많이 들어와 요 몇 달간 제대로 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논리를 끊어 억지로 답을 끼워 넣었다. 회사에 얘기해서 적당히 일거리를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 전부 꿈인 게 분명하다.

섹섹 거리는 숨소리를 주제로 삼아 오늘 레오군이 신나게 떠들었던 카논처럼 천천히 숨소리로 응답한다. 내일 일어나면 전부 없던 일이 되어 있겠지.


“..나, 세나!”

“응?”


아직 꿈속인지 좌우로 흔들리는 시야에 들어온 건 여전히 어제와 같은 모습인 레오군 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오른쪽 귀가 살짝 부었다는 것.


“세나,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뭘 말하는 거야?”

“이거 귀 말이야. 나 지금 샤워 하려는데 피어싱에 물 들어가도 돼?”

“당연히 안 되지!”


그 소리에 잠이 달아나 버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서둘러 꺼낸 소독용 알콜솜과 연고, 그리고 핀셋을 손에 들고 레오군을 의자에 앉혔다. 한 번에 다섯 군대에 구멍이 뚫렸으니 귀가 남아날 일이 없지.


“이런 것도 생각 안하고 한 거야?”

“세나가 해줄 거 아냐?”

“...그 이외에 생각은 안하고 그런 거였어?”

“그렇게 라니 아, 이거? 괜찮지 않아?”


봐 예쁘지? 손으로 찰랑거리는 피어싱을 집어 올리자 벌겋게 부은 귓불이 같이 올라왔다. 분명 꿈도 꾸지 않은 잠을 잤는데 일어나 보니 결국 현실이었고 이번에도 결국 처치담당은 나였다. 이것까지 평소와 같았다. 이런 것까지 똑같지 않아도 괜찮은데.

한숨과 같은 용기를 내서 물었다.


“...휴식기라 해도 너무 바꾼 거 아냐?”

“괜찮아 속은 안 바뀌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여전히 나이츠의 왕님이니까.”

“그래?”


이 말에 정신이 든 건 내가 역시 그의 기사이기 때문이겠지.

그제야 들여다 본 손등의 문신은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도 사랑하는 우리의 문양이었다. 어제 하루 종일 걱정했던 일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손등에 입술을 대자 변하지 않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위잉 위잉 거리는 헤어드라이기의 소리가 울리는 주말 아침은 세상에 짜증나는 것이 훨씬 많은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깨끗이 씻어낸 물을 털어내고 그날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소리에 대화가 섞여들었다.


“그래서, 왜 갑자기 그렇게 한 건데?”

“응? 이거? 그러니까... 22살 데뷔?”

“보통 그런 건 고교데뷔라고 하지 않아?”

“그거랑은 다른 거야.”

“네이네이. 어떻게 다른데요, 폐하?”

“너무 길어져버려서 말이야, 잘라낸 거야.”

“귓볼도?”

“이건 겸사겸사.”


짧아진 머리칼 사이로 더 잘 보이는 귓불에 닿지 않게 조심스럽게 머리칼을 사이를 헤집었다.


“그래서 결국 뭐가 하고 싶었던 건데?”

“비-밀! 거기서 인스피레이션을 얻어 봐 세나!”


그 말에 작게 짜증이 나 머리를 세게 휘저었다. 경쾌한 웃음소리가 용케 소음에 묻히지 않았다.


“머리를 자르니까 가볍구나~ 피어싱도 문신도 하나도 무겁지 않네.”

“무겁다는 게 무슨 뜻이야?”

“궁금하면 25살 데뷔 때 물어봐.”

“그때도 비슷하게 대답할 거잖아.”

“적어도 50, 아니 80데뷔까지는 기다려야 할지도!”

“너무 길어.”


귀 뒤 쪽은 더 섬세하게 말려야 한다. 혹시 고름이라도 생기면 안 되니까. 필요한건 약과 솜, 알코올 그리고, 콧노래면 충분하겠지.

헤어드라이기와 물방울이 튀는 소리에 듀엣이 뒤를 이었다. 훌륭한 카논이었다.

까치/@ggga_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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