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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레오] 13번째 스오우 츠카사

네임버스AU


이 세계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몸의 한 부분에 상대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다. 누군가는 손등에, 누군가는 평생 보일 리 없는 곳에. 위치는 각양각색이었지만 그 의미는 같았다. 그 이름의 주인은 운명의 상대라고 했다. 듣기만 해도 혀가 아릴만큼 낭만적인 세상이었지만 시대가 흐르고 요즘 같은 세상에 운명을 따지는 낭만론자는 구식이었고 드물었다. 특히 츠키나가 레오처럼 그 이름의 상대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더더욱. 그는 늘 자신의 몸에 새겨진 이름을 들여다봤다. 朱桜 司. 이름의 주인을 찾는 일은 명곡을 탄생시키는 것보다 확률적으로 명백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레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

첫 번째 스오우 츠카사는 학생이었다. 츠키나가 레오도 중학생일 때였다.


“설마 ‘이름’ 같은걸 믿어서 사귄 건 아니지? 이제 질렸으니까, 그만 헤어지자.”


두 번째 스오우 츠카사는 그보다 조금 더 나이가 있던 의대생이었다. 츠키나가 레오도 마찬가지로 대학생이었을 무렵이었다.


“아 이거? 문신으로 덮으려고. 요즘 세상에 이름이라니 촌스럽잖아? 너도 같이 할래?”


세 번째 스오우 츠카사는 그를 열렬히 좋아하던 팬이었다. 츠키나가 레오가 아닌 음악을, 열렬히 사랑한.


“이름? 그런 건 상관없어. 츠키나가가 만드는 음악이 좋은걸. 그래서 다음 신곡은? 아직도 미완성인 거야?”


그 말들에 어떤 대답을 했었는지 생각해보면 머리에 물음표가 뜰 뿐이었다. 더 이상 그들의 얼굴도 말도 행동도 분위기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츠키나가 레오는 곧 다음 스오우 츠카사를 찾았으므로.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지금도 그는 알지 못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4번째와 5번째, 3개월도 채 사귀지 못했던 6번째와 7번째, 가까스로 7개월을 채웠던 8번째, 다시 기억나지 않는 9번째와 10번째, 그리고 헤어진 지 2년도 지나지 않은 11번째 12번째 스오우 츠카사를 건너뛰고 아직은 마지막인 13번째 스오우 츠카사. 역시나 또다시 이름의 새로운 주인과 만난 츠키나가 레오는 덤덤하게 입천장을 쓸었다.


 

이번 스오우 츠카사가 츠키나가 레오와 만난 곳은 도쿄 23지구에 본사를 둔 어느 회사의 회의실에서였다. 천재로 이름 높고 누구나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아 그 사람이라며 경탄할 작곡가지만 정작 연락이 어렵기로 소문난 익명의 작곡가와 어렵사리 컨택이 됐다는 소식에 회사의 새로운 cm을 위해 만들어진 팀의 담당으로서 츠카사가 결정되어 사전 미팅을 하게 되었을 때였다. 입사할 적 부터 모두가 오너의 아들이란 걸 눈치 챈 일반사원 스오우 츠카사는 약속시간 5분 전 도착한 불투명한 회의실 창 너머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갸웃거리며 문을 열자 보인 것은 벽에 색색의 음표를 그리고 있는 주황머리의 괴인, 아니 마인이었다. 설마 이래서 예명이 작곡마인x인가? 하지만 생각은 그보다 먼저 찾아온 당황에 날아갔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작곡하는 중이잖아?”

“그걸 왜 벽에 쓰시는 거죠? 잠깐, 그거 유성펜 아닙니까?!”

“맞는데?”

“what?! 맞는데, 가 아니죠! 남의 회사벽에 무슨 짓입니까!”


스오우 츠카사가 우선 한 일은 탁자를 밟고 서 신나게 벽을 가로지르며 오선지를 그리던 레오의 팔을 잡는 일이었고 두 번째로 그 오선지와 음표들이 지워지지 않는 것이라는 걸 확인하는 일이었다. 벽을 쓸어 봐도 묻어나는 것이 없었다. 한손으로 잡고 있는 손목에 들린 펜에 굵게 써진 것은 油性이라는 두 글자였다. 츠카사는 아직 그의 이름을 듣지 못했지만 이 터무니없는 사람이 이번 cm의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연락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게 뭐가 좋은지 방글거리는 레오를 본 츠카사의 두 번째 인상이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사람을 믿고 이렇게 큰일을 맡겨도 되는 걸까요? 당장이라도 상사와 부모님께 달려가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지만 이제 스오우 츠카사는 어른이었고 때라도 썼다가 역시 도련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어른스러운 대응’을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통성명을 하는 것. 그 장소가 회의실의 문 앞이고 아직 자리에 착석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그래서 그쪽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이름이 일하는데 필요해?”

“full name도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일을 맡기라는 겁니까?”

“싫으면 안 맞기면 되는 거잖아? 애초에 컨택도 그쪽에서 한 거고. 그런데 너 말투 되게 웃기네! 음음 재미없는 것 보단 그 정도로 웃겨서 인스피레이션이 솟아오르는 쪽이 즐겁지☆”

“남이 고치려는 버릇을 비웃다니 무례하군요!”


화를 내도 눈꼬리를 접으며 웃는 얼굴에 한소리를 더 하려던 츠카사는 다시 한 번 자신은 어른이라 되뇌며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얼굴의 마인 작곡가에게 품에서 꺼낸 명함을 건넸다.


“이게 제 명함입니다. 받으시죠.”

“손을 놔 줘야 받을 거 아냐?”


그제야 츠카사는 자신이 아직 그의 손을 잡고 있던 것을 기억했다. 깜짝 놀라 마치 항복자세를 취하듯 양손을 들어올렸다.


“Sorry, 아니 죄송합니다! 큼, 읽는 법은 스오우 츠카사입니다. 제대로 기억해 두시죠!”

“헤에 너 이름이 스오우 츠카사야? 가명 아니고?”

“제가 그쪽도 아니고 왜 가명을 씁니까? 흥!”

“그럼 너 나랑 사귈래?”

“네? 저희 오늘 처음 만난 거 아시죠?”

“응 그래도 상관없어.”

“저는 그쪽 이름도 모르는데요?”

“그것도 상관없어. 그냥 레오라고 불러. 그래서, 사귈래 말래?”


그렇게 선 자리에서 얼떨결에 처음으로 누군가와 자신의 의지로 사귀게 된 스오우 츠카사와 그런 13번째 스오우 츠카사를 만난 츠키나가 레오가 만나게 된 것이다.

그날의 츠키나가 레오는 그 이후 알게 된 평소 모습과 조금 다르지 않았나, 하고 츠카사는 생각했지만 그건 이후의 일이었다.

 



이번엔 새롭게 스오우 츠카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의 인생에 있어 손바닥에 가지고 태어난 이름의 사람은 마치 창밖의 나비와 같은 존재였다. 그에게 사랑은 존중과 인내이자 집안에서 정해준 레일 위를 달리는 일 중 하나였고 밖에서 위태로운 비행을 이어가는 나비는 언젠가 스러질 것이었다. 구태여 밖을 나가 그런 나비와 만날 마음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 사람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곧 운명이라 생각하게 되지만, 처음은 그랬다. 온실 속의 도련님인 주제에 이상한 곳에서 만큼은 현실적인 스오우 츠카사의 인생 첫 연애의 시작이었다.

애초에 집안 소개로 선을 보는 것 이외의 것을 해본 적도 없는 츠카사에게 ‘연애’란 매우 교과서적인 개념이었다. ‘연애’란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것. 근무 시간 중 검색해본 단어의 뜻에 츠카사는 결심했다. 얼떨결이긴 해도 한번 시작한 것을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스오우라는 이름이 용납할 수 없으니 반드시 완벽하게 해 보이겠다고. 그날 이후 cm의 회의라는 명목으로 매일 점심시간마다 레오를 만나 쫓아다니며 끼니를 챙기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전화를 해 그 전날 제대로 잠에 들었는지 확인하는 것을 연애라고 할 수 있다면, 츠카사는 그럭저럭 잘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쯤 되면 제가 일을 하러 출근하는 건지 레오씨의 밥을 챙기러 출근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매 점심시간마다 누군가와 식사를 한다는 소리에 주위에서는 고양이라도 키우게 됐느냐 물어왔다. 물론 이미 모두 츠카사가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했다는 것과 그 누군가가 정체불명의 작곡가라는 것을 알았지만 순진한 도련님을 위해 모르는 척 입을 다물었다.

레오는 고양이 같은 사람이었지만 고양이보다도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츠카사가 레오를 만나고 가장 놀란 점은 그의 천재적인 작곡 실력도, 지나치게 동안인 외모도 아닌 수면도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무슨 망나니도 아니고!


“그럼 언제 잠을 자는 겁니까?”

“잠이 올 때?”

“...식사는요?”

“음 먹고 싶을 때?”

“그러다 죽고 싶지 않을 때 죽는 수가 있어요, 레오씨.”


어쩌다 사귀게 된 애인의 한탄에도 그는 손을 멈추지 않고 악보를 써 나가고 있었다. 정말 이런 사람과 사귀어도 되는지 츠카사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면서도 근처 유명 중식 집에서 사온 만두에 간장에 절인 생강을 얹어 레오의 입에 넣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 마인작곡가가 점점 귀여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나이에 맞지 않게 어린애 같은 짓만 하는 사람일 뿐인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런 점도 좋긴 하지만.

만난 지 이주일밖에 되지 않았고 여전히 장소는 회의실이었으며 이번에는 제대로 악보에 펜을 놀리고 있다는 차이밖에 없는데도 츠카사의 안에서 그때와 전혀 다른 인상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혼자 두자니 걱정이 되어 자다가도 잠을 번쩍 깨우는 사람. 좋아하던 과자를 먹던 와중에도 과연 아침은 챙겼을지 걱정이 되는 사람. 핸드폰 번호는 받았지만 생활패턴이 원채 불규칙한 사람인지라 연락도 제때 되지 않았다. 그나마 꼬박꼬박 회의라는 명목으로 회사에 나온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레오라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성은 모르고 아는 거라곤 이름과 전화번호뿐인 사람이지만.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같이 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응?”

“그렇게 자기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면 차라리 같이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중입니다.”


금방 답이 돌아올 거라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있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호쾌하게 사귀자고 제안했던 레오였는데 왜 그런가 싶어 한쪽 눈을 슬쩍 떠보자 악보를 쓰다말고 손을 떼지 못해 잉크가 번지고 있었다. 동그란 눈이 츠카사의 얼굴로 올라왔다가 다시 번지는 악보로 떨어졌다.


“같이 살자고?”

“요즘 낮에 전화해도 제대로 받지 않는 이유가 밤늦게 잠에 들기 때문이죠? 저 스오우 츠카사가 레오씨와 같이 살면서 확실하게 챙겨드릴테니 차라리 같이 살죠.”

“스오는 바보지?”

“바보라니 제대로 식사도 챙기지 못하는 레오씨가 할 말은 아니죠. 그리고 그 스오라는 이상한 별명, 고칠 생각은 없는 겁니까?”


츠카사가 진심을 담아 투덜거렸다. 그리고 명함을 한 장 꺼내 레오가 쥐고 있던 펜으로 빠르게 주소를 적어 내렸다. 위치는 회사 근처의 오피스텔이었다. 명함을 건네는 오른손 안으로 무어라 적힌 글자가 보였지만 레오는 냉큼 명함만 받고 눈을 돌렸다.


“스오, 연애해본 적 없지?”

“그게 왜 거기로 연결되는 겁니까? 연인의 올바르지 못한 생활을 바로 잡겠다는 건 무척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그 문제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같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이상하단 거잖아 바보스오.”

“제가 미숙하단 건 인정하지만 부를 때마다 바보라는 말은 빼주시죠!”


츠카사는 진심이 반쯤 담긴 화를 내면서도 레오가 주소가 적힌 명함을 제대로 받아드는 것에 내심 안심했다. 스스로 말한 대로 본명인지도 모르는 이름과 전화번호 밖에 모르는 사람을 연인의 식생활과 수면의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집에 끌어들였다는 건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과정이야 어쨌든 스오우 츠카사는 첫연애를 시작하고 2주만에 츠키나가 레오와 한집에 살게 되었다. 예상대로 되었다는 생각에 다시 레오의 입에 간장을 옅게 얹은 만두를 넣었고 우물거리며 받아먹는 모습에 자신의 입에도 하나를 넣었다. 역시 이 곳의 샤오롱바오는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분명 이상한 우주인 인형이라던가 하다 못해 투명한 어항같은 걸 뒤집어 쓴 우주복이라도 입고 올거라 생각했던 츠카사의 생각은 평소 옷차림에 캐리어 하나만 달랑 끌고 온 레오의 모습에 깨져버렸다.


“그게 전부인가요?”

“인스피레이션이 떠오르는데 많은 건 필요없으니까~☆”

“뭐 필요한게 생긴다면 그때 구매해도 되긴 하겠지만요.”


우문우답이었지만 본인들은 납득한 듯 싶었다.


“현관에서 들어오면 바로 거실이고 저기 왼쪽 방이 서재, 오른쪽 방이 창고, 그리고 제일 안쪽 방이 침실입니다. 왼쪽 방 옆에 있는 게 욕실이에요. 부엌은 거실 건너편인데 일하시는 분이 매일 아침 제가 출근하고 오셔서 식사를 만들고 가십니다.”

“그럼 나는 어느 쪽 방을 쓰면 되는거야?”

“안방이요.”

“스오는 이상한데서 이상하단 말이지.”

“이상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극히 normal한, 아니 정상적이라니까요?”


이번만은 레오가 맞았지만 상관쓰지 않고 츠카사는 오른손으로 레오의 캐리어를 받아들고 그를 안방 안의 욕실로 떠밀었다.


“자, 제가 정리하고 있을테니 그동안 안의 욕실에서 세수라도 하시죠. 이 날씨에 후드라니 얼굴이 땀범벅이잖아요.”


가을이 채 오기 전 후드를 입고 온 레오를 새하얀 욕실로 떠밀고서 그가 들고 온 기내용 사이즈의 작은 캐리어를 열자마자 보인 것은 케이스도 씌우지 않은 붉은색 여권이었다. 험하게 다뤘는지 끝이 약간 너덜거리는 여권의 맨 첫 장을 열자 보인 것은 지금 보다 약간 젖살이 덜 빠진 얼굴이 있었다.


“月永レオ……. 츠키나가 레오?”


오른손을 펼치자 보인 이름과 동성, 동명의 사람. 눈치가 없다는 말을 가끔 듣는 츠카사라도 이정도는 눈치 챌 수 있었다. 운명의 사람의 이름을 몸에 가지고 태어나는 이 로맨틱한 세상에서 그는 드디어 운명의 사람을 만난 것이다. 첫 만남에 레오에게 자신의 명함을 줬었다는 건 잊어버린 것 같았지만 아무렴 좋았다. 츠카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욕실문을 열어 젖혔다.


“레오씨, 본명이 츠키나가 레오인가요?”

“그런데?”


레오의 시큰둥한 태도도 흥분에 심장이 도저히 멈추지 않는 츠카사에게는 상관없었다. 25년 삶의 첫 애인이 운명의 사람이라니, 너무 로맨틱 하지 않나요!


“운명이잖아요? 아니, 운명이에요!”


츠카사가 손바닥을 펴 레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분명 그곳에 선명하게 새겨진 이름은 레오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레오는 시큰둥했다. 며칠 전 또 다시 벽에 펜을 갖다 대려던 모습에 그러면 안 된다며 팔을 잡아 올렸을 때보다 불퉁한 얼굴이었다.

투덜거리는 어투로 레오가 츠카사에게 물었다.


“스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좋아하는 건 있어?”

“...snack일까요? 과자는 언제 먹어도 좋으니까요.”

“그중에 뭘 좋아하는데?”

“달콤하고 부드러운 종류라면 뭐든 좋아합니다만 굳이 꼽자면 glico사의 제과류네요.”

“그거랑 똑같은 거야. 이름도.”


차가운 물소리가 욕실에 가득 퍼졌다.


“그냥 선호의 차이 아니겠어?”


무어라 반박하려던 츠카사는 그런 레오의 얼굴이 너무 슬퍼보여서,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울어버릴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잠시 그 문제를 제쳐두고 피곤할텐데 일찍 자자는 말을 할 뿐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인생에서 잘한 일 중 하나라고 고개를 주억거릴 일이었다.

 

 

아침은 간단하게 토스트와 스크램블에그에 그날그날 다른 스프, 점심은 같이 회사 근처의 요리집에서, 저녁은 낮에 요리사가 집에서 만들어 놓은 것들을 간단히 데워서. 잠은 11시 이전에 자고 아침 7시에 일어난다. 간단한 스케줄이었지만 낮밤이 바뀐 걸 넘어 이때까지 도대체 어떤 생활을 했는지 의심스러운 마인 작곡가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결국 그런 레오를 챙기는 건 츠카사의 일이었다.

동거를 시작하고 츠카사는 그제야 레오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로 꺼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늦다면 늦었지만 첫 연애 치고는 그럭저럭 아슬아슬하게 합격점이었다.

조급하게 말을 꺼내진 않았다. 신중하다면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질문을 몇일에 한번 던졌다. 그렇다고 그런 질문에 레오가 순순히 답해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되물음 10개 정도를 츠카사가 대답하면 레오는 질문 중 1,2개만을 대답했다. 분명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사람인데 정작 말을 하다보면 휘둘리는 것은 늘 츠카사였다. 하지만 그런 점에 화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도 불합리하다 생각하면서도 달력의 날짜만 차곡차곡 쌓여갔다.


“스오는 다른 사람이랑 사겨 본 적 있어?”

“집안차원에서 한 번 만나보라고 한 사람은 있었어요. 맞지 않아서 곧 헤어졌지만요. 레오씨는요?”

“있었어.”

“레오씨 성격에 분명 기껏해야 저처럼 한두 명,”

“13명이었나.”

“what?!”

“그런 것 보다 명곡을 탄생시키는 중이니까 등 움직이지마. 악보가 움직이잖아!”


타박과 함께 침대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츠카사는 다시 침대를 등지고 앉아 앞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13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


“13은 jesus의 마지막 숫자죠. 그건 꼭 제가 마지막이라는 뜻 같네요!”


활짝 웃으며 대답하는 말에도 응수는 냉수였다.


“2000년도 더 전에 죽은 사람한테 의미 따위 없지 않아? 그러니까 스오가 바보인거야 바보 스오~”

“바보라니 이 스오우 츠카사한테 무슨 망발인가요 레오씨!”

“아아 내 곡이 제대로 써지지 않잖아 바보 말미잘 멍청이 스오!”


츠카사는 레오가 가득 채운 악보를 건네받고 다시 빈 악보를 머리 위로 건넸다. 글씨는 엉망진창이면서 음표만은 곧게 쓰여있었다. 13번째 마디 후 쉼표만이 그려진 악보를 손에 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끄러운 질문인건 압니다만, 제 앞의 12명보다 제가 못한가요?”

“스오가 그 전보다 못했으면 내가 왜 헤어져서 지금 스오랑 사귀고 있겠어?”

“너무 가벼운 발언이잖습니까. 좀 더 상냥한 말로 해주세요! 이왕이면 애정을 담아서 해주면 좋잖아요.”

“그렇게 말해봤자 앞에 12명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연애든 음악이든 지금이 좋은거잖아?”


통통 튀는 어투로 다시 츠카사의 등 위의 악보를 가로질렀다. 그 말이 츠카사에게는 위안이었다. 자신은 현재의 사람이었고 과거의 그에게는 간섭할 수 없었으니까. 기분 좋은 허밍을 등에 지고 오늘은 저녁을 무어로 해야 레오와 기분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 날을 츠카사는 그래도 긍정받아 기분 좋은 날이라고 기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처음으로 레오가 츠카사에게 한 거짓말이었다. 츠키나가 레오는 모두 기억했다. 13번째 스오우 츠카사 이전 그들의 얼굴도, 말도, 행동까지도. 그는 천재였고 사랑에도 마찬가지였다. 만났던 상대가 나빴을 뿐 이었지만 12번이나 반복되는 실패에 모든 걸 놓은채 작업실에만 은둔한지 근 1년이 되어가던 날이었다.

혀 위의 이름은 언제나 지워지지 않았고 레오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13번째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도 13번째가 마지막이었으니 자신도 13번째가 마지막이겠지. 그러니 대충 아무나 만나서 사귀고 끝내 버리자.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사귀지 말고 끝을 내자.

그때 스오우 츠카사를 만난게 잘못이었다. 마지막 스오우 츠카사, 그리고 정말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레오씨, 잘 잤어요?”


이 웃는 얼굴에게 앞의 이야기를 할 일은 없겠지만 잘난 척 하는 얼굴은 보기 싫었으니까. 다시 한 번 입천장을 쓸었다. 천천히 느껴지는 이름이, 이제는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혀 위에 그의 이름이 있다는 건 1년 후 알려줄 생각이었다. 만약 그때도 사귀고 있다면.

운명을 믿는 두 사람의 정오 무렵 일이었다.

 

까치/@ggga_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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