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

“어라 여기 어디?”

묘하게 몸이 무거운데...

바닥에 대자로 드러 누워있던 보쿠토는 몸을 일으키며 생각했다.

늘어지면 아카아시한테 혼날 텐데 어쩌지?


“쓸데없는 걱정이네요.”


챙! 푸콱! 갑자기 들리는 타격음


“아카아시?! 뭐하는 거야?!”

“보쿠토씨야말로 뭐하시는 건가요. 용사한테 두드려 맞는 용이라니.”


으잉?

해괴한 의성어와 함께 자신의 몸을 쳐다봤다.

이게 뭐야?!

“아카아시 왜 이렇게 작아 진거야? 치비보다 작아졌네. 귀여워!”

“보쿠토씨가 큰 겁니다. 용은 원래 3M 이상으로 자라니까요.”

“그렇지 용은 원래 크지! ......나 지금 용인거야?”


순간, 아니 늘 틈을 보이는 용에 비해 용사는 틈 따위는 봐주지 않았다.

자세를 잡은 아카아시 용사, 다섯 번의 도움닫기로 보쿠토 용의 허리로 단숨에 올라간 뒤 검을 휘두른다!

오른쪽 팔을 칼등으로 후려친 뒤 바로 급소로 돌격.


“우왓 왁! 잠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안!”


용사의 망설이지 않는 칼끝은 용의 ‘심장’.

찔린다!


휘이이이이잉, 팍!


공 소리...?

슬며시 눈을 뜬 보쿠토는 이제 한낮의 야구장에 서 있었다.


“네 이번에는 공격팀 4번 타자 보쿠토 코타로 선수입니다! 그리고 투수는 2년간 무적의 방어를 보여주고 있는 5번 투수 아카아시 케이지 선수!”


우와아아아아아! 귀를 뜨겁게 찌르는 환호성과 함께 투수는 마운드 위에 오른다.

당황한 타자는 중얼거린다.


“용사 아니었어?”


휘익! 깔끔한 폼으로 던지는 아카아시 선수.

“네! 언제나처럼 방망이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보쿠토 선수 원아웃 당하네요. 통산 685번째 삼진아웃기록을 끊을 수 있을까요?”

“아 힘들지 않을까요? 이 기록만 해도 벌써 2년 동안 이어진 거니까요.”

“그리고 방금 말씀드린 순간 투 아우우우웃!!”


“아니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


당황한 보쿠토는 마치 한낮의 햇빛에 나온 부엉이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승부인 이상 지지 않는다고 아카아-시!”

“아뇨 이번에도 지실 걸요.”


깔끔하게 한쪽다리를 들어 올리고 강하게 휘두르는 오른팔!

공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더 아름다운 손끝에서 떨어진다.


“으음 역시 야구복도 무지 잘 어울리잖아!”

하지만 그래도 질 수 없지!

날아오는 공을 바라보며 타자는 생각한다.

직구? 변화구? 어느 쪽?


686번째 예측. 이번에도 역시 심장 안쪽에 강하게 들어오는 직구!


“어느 쪽이라도 아카아시니까 전부 쳐주겠어!”

두 눈으로 공을 노려보고 오른손에 힘을 주고서 배트를 휘두른다.

그리고



결혼식?!?!


결혼행진곡이 울리고 정장을 입은 보쿠토는 하객 석에 앉아 있었다.

몸에 익숙하지 않은 까만 정장을 보자 기분이 이상했다.

“용에 타자에 이번에는 하객이라니 무슨 환각이라도 보는 건가?”

아 그래도 용사 아카아시도 야구복 아카아시도 좋았으니까 ‘황홀경’인가.


그러고 보니 이번 아카아시는 뭐지?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카아시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익숙한 뒷모습은 보였지만.


“신랑은 평생 상대를 사랑할 것을, 이 모든 하객들 앞에서 맹세합니까?”

옆의 얼굴모를 상대방을 보며 웃는 아카아시

이 상황은 절대적으로,


“잘못됐어! 헤이헤이헤-이, 아카아시 결혼 하는 거야?!”


갑자기 난입한 보쿠토 때문에 식장은 어수선 해졌다.

객석을 박차고 나와 버진로드로 뛰쳐나간 보쿠토는 급하게 목을 옥죄는 타이를 풀며 외쳤다.


“아카아시!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결혼하다니 무슨 소리야?”

까만 정장을 입고 포마드로 머리를 올린 아카아시가 뒤를 돌아본다.

“제가 왜 보쿠토씨와 결혼합니까?”

“그거야 내가 2년 동안 좋아했으니까! 그런데 결혼이라니 너무하잖아! 용사도 그렇고 투수도 그렇고 전부 너무 하지만 이게 제일 너무해!”

아카아시는 한숨을 쉬고 말을 잇는다.


“그거야 ............. 잖아요. 여전히 제멋대로네요.”


아카아시의 입에서 날라 온 말은 용사의 칼보다, 투수의 시속 160km 직구보다도 더 날카롭게 보쿠토의 심장을 찌른다.

응? 잠깐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다시 얘기해줘!


“하지만 이제 황홀경에서는 깰 시간이에요. 저쪽에서 마저 들으세요.”








..토씨, 보쿠토씨.

“보쿠토씨 괜찮으세요?”

어?

어수선한 주변 환경 속에서 가장 먼저 들리는 목소리.


“날아온 야구공에 맞으셨다면서요. 괜찮으신 건가요?”

그러고 보니 뒤통수가 뜨거운 거 같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카아시!”

“...머리를 심하게 맞으셨나 보네요. 일단 병원부터 가죠. 어서 일어나세요.”

“아니 그전에 아카아시 나 말고 다른 사람하고 결혼 안 할 거지? 응? 그거부터 얘기해줘!”

꼬옥 끌어안은 보쿠토의 머리 뒤로 아카아시의 얼굴이 굳었다.

“꿈이라도 꾸신 건가요?”

“대답!”

긴장한 보쿠토가 보챘다. 어서 얘기해줘 그때 대답의 들리지 않은 부분!


“...그 대답이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혼얘기 이전에 고백을 하셔야죠.”


‘그거야 고백도 하지 않으시고 알아달라니 말이 안되잖아요. 여전히 제멋대로네요.’


그래. 고백. 675일째의 짝사랑에서 아직 보쿠토는 고백하지 않았다.

때를 잡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떡하지? 아카아시가 거절하면 어떡하지? 하는 것들이 늘 훼방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백하지 않으면 아카아시는 멀어져 버린다.

그렇다면 해야 할 건 단 하나.


“아카아시 좋아해!”

“...일단 병원부터 다녀와서. 빨리 검사부터 하죠.”

“다녀오면 대답 해줄 거야?”

“알겠으니까 빨리 검사부터.”

심각한건 아니려나 모르겠네요.

중얼거리는 아카아시의 말을 뒤로하고 보쿠토는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다.


“갑옷도 야구복도 정장도 무지 잘 어울렸어. 역시 내가 좋아하는 아카아시야.”


“그리고 내 말을 듣고 얼굴이 빨개지는 아카아시도 좋아!”


아카아시는 뒤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보쿠토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안 그래도 감당하기 벅찼던 선배는 이제 막무가내로 공격을 퍼붓고 있다.

“어서 병원이나 가죠.”

아니면 그전에 제가 쓰러질 테니까.

뒷말은 삼키고 열심히 이끌었다.




세 번의 황홀경도 좋지만 역시 지금은 배구복과 교복을 입은 아카아시가 좋다고 생각하며 보쿠토는 다시 고백했다.


“엄청 좋아해 아카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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