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헛소리하네. 악몽 때문에 지각했다니 말이 되냐!”

“진짜라구여! 진짜 꿈에서 괴물이 쫓아 왔다니깐여?”

부실에 들어서자 오늘도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중 단연 먼저 귀에 꽂히는 소리는 리에프의 목소리였다. 그 다음으로는 타박하는 야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원래 하얗던 얼굴이 더 하얗게 되어버린 리에프는 열심히 자신이 꾸었다는 악몽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까만 머리, 까맣게 그을린 팔, 도끼를 든 손, 그리고 자신을 끌어당기는 계단.


듣자하니 기가 찬지 야쿠의 무릎이 또다시 리에프의 등을 가격하고 선언했다.

“그러니까 애들한테 학교괴담 같은걸 묻고 다니지 말라고. 그냥 네가 무서운걸 많이 들어서 그런 거잖아, 정말이지!”

훌륭한 야쿠의 끝맺음.

리에프도 더 이상 변명하지 못하는지 꾸물꾸물 거리고 있었다.

“호오 불쌍해라. 리에프, 악몽도 꾸는 거야? 에이스가 될 거라면서 약하네~”

킬킬거리며 비웃자 단세포 후배는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는 쿠로오씨는여? 다들 악몽정도는 꾼 다구여!”

“나는 이제 안 꿔.”

웃으며 말을 마치고 나머지를 얘기하려는 순간 코치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자 이제 잡담 끝! 연습 시작한다!”


갑자기 켄마가 이쪽을 쳐다봤다.

“...연습시작이야 쿠로. 그 얘기는 나중에.”

오호 웬일로 이렇게 열심히 일까? 라는 눈길로 쳐다봤지만 켄마는 평소처럼 고개를 숙였다.

뭐라고 중얼거린 것 같지만 내 착각 일려나.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2

켄마와 둘이서 돌아가는 길. 원래라면 언제나처럼 부원들과 다 같이 가는 길일 테지만 켄마가 살 것이 있다며 둘이서만 조금 멀리 있는 대형 마트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불쑥 말을 꺼냈다.

‘이제는 꿈을 꾸지 않는 일에 대하여.’




3

응? 연습 전에 얘기 했던 거? 그냥 평소대로 잡담 이였잖아.

아, ‘이제’ 악몽 안꾼다는거. 간단한 이야긴데. 뭐 이상하다면 이상한가.

아니 그냥. 말 그대로 ‘이제는 안 꾼다는’ 뜻이야.

지금은 아예 꿈을 안 꾸거든.

그전에? 그전은 ‘악몽 대극장!’ 이었는데.

아니 장난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알겠어. 알겠어. 그럼 처음부터 얘기할까?

시작은 그래. 3학년 초반 때였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한 반 년전 이네.

왜 그게 처음이냐고? 다른 꿈들과 달랐거든. 그 전에도 꿈은 꿨지만 그때부터 달라졌지.

으음 설명하자면…….선명했어. 색이 선명한 것도 맞지만 좀 더 리얼하다고 해야 하나? 꿈을 꾸고 나서도 기억이 날 정도로 말이야.

그렇다고 정상적인 내용들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그게 첫 번째 ‘악몽’이지.

마치 켄마 네가 늘 하는 게임처럼 말이야. 주인공이 이유도 모르고 이상한 곳으로 떨어지는 거지.

별로 장난치는 건 아니라고?

알겠어 알겠어. 다시 돌아가서 얘기 하자면 처음의 꿈은 ‘새하얬어’.




쿠로오의 악몽 대극장.


그 첫 번째 꿈.

 이 꿈이 시작이야. 그 꿈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나는 긴오두막에 있었어. 아니 길다는게 가로가 아니라 새로로. 신기한 게 나는 1층에만 있었거든. 그런데도 길다는 생각이 들었어. 무의식적으로 려나?

 그곳에는 털옷을 입은 사냥꾼들이 있었어. 왜 tv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옛날 사냥꾼들처럼 털옷을 입고 등에 산탄총을 매단 사람들 말이야. 다들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 다른 곳을 보고 있더라고. 마치 서로가 없다는 것처럼. 그러다가 왠지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 감이지 감.

그래서 눈앞에 있는 문을 여니까 새하얀 눈밭이 펼쳐졌어. 맞아 그래서 새하얀 꿈이라고 한 거야.

음? 이 정도는 그냥 꿈이지 않느냐고? 맞아. 하지만 그 다음이 있지.

앞에 있던 문으로는 못나갈거 같아서 뒤의 문으로 나갔어. 이번에는 바다절벽이었지 뭐야.

그런데 갑자기 웬 보트가 달려오더니 어떤 사람이 나를 낚아 채 갔어. 그 ‘사람’을 보자마자 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맞아 여기서 끝나면 꿈이지, 악몽이 아니라. 갑자기 그 반대편의 눈들이 우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어. 뒤에서는 누군가가 쫓아오기 시작했고 끝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우리는 같이 손을 잡고 바다로 뛰어들었어.

그리고 꿈에서 깼지.

이게 첫 번째 악몽인 이유는 그 죽음이 너무 생생해서였어.

어디서 들었더라? 꿈에서 죽으면 잠에서 깬다는 말이, 진짜더라고.



그 두 번째 꿈.

처음이라 그런지 약했나? 그런데 점점 단계가 올라가기 시작했어.

두 번째 꿈에서는 정신이 드니까 나는 택시를 타고 있었어. 택시기사는 나한테 몇 번이나 계속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어. 나는 몇 번이나 대답하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들었던거 같아. 그냥 무작정 비행기에 타야한다는 생각만 들었어. 비행기? 맞아 나는 공항으로 가고 있었거든. 왜였냐고? 글쎄. 이유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비행기에 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거든.

무언가 쫓는 건 없었지만 나는 미친 듯이 뛰어서 비행기장에 갔어. 탑승시간이 아슬아슬했지. 뭐 여차저차해서 결국에 비행기에 타기는 했지. 그런데 갑자기 승무원이 나한테 오더니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지 뭐야. 뭐 택시를 타고 오면서 10번도 넘게 확인했던 거니까 당당하게 내밀었더니 나한테 ‘이게 아니다.’ 라는 말만 반복했어. 그리고 ‘잘못 탑승하셨네요.’ 라더니 나를 밀어버리더라니까.

어디서냐고? 물론 비행기에서지! 무슨 영화처럼 나를 끝으로 데려가더니 밀어버리지 뭐야. 그리고 이번에도 그 순간 잠에서 깼어.

응? 승무원 얼굴? 글쎄 기억나지 않는데.



그 세 번째 꿈.

두 번째 꿈을 꾸고 난 뒤에 한 달 정도는 안 꿨어. 그런데 갑자기 세 번째 부터는 정도가 확실히 심해졌어.

그때? 아마 도쿄 단체합숙 이후일거야. 후쿠로다니 그룹이랑 치비네랑 같이 한 합숙 말이야.

켄마 듣고 있는 거야? 계속 딴 생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뭐 듣고 있다니까 됐나. 그럼 마저 얘기할게.

세 번째 꿈은 수영장 이었어. 밑에는 파란 물들이 가득했고 나는 기다란 하얀 계단의 꼭대기에서 그걸 내려다보고 있었어.

수영장이라고 생각한 이유? 내가 수영복을 입고 있어서...일려나. 거기다가 내 몸이 젖어있었거든. 몸에서 파란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어. 그리고 이번에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밑에 있는 수영장에 어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고 보니 왜 계속 나는 어딘가로 가려고 했을까? 이상하네. 응? 맞아 원래 꿈이 다 이상하지.


계속 얘기하자면 그 생각이 들고 나서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어. 밑은 사람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어서 시끌벅적 했고,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서 울렸어.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나를 불렀어. 역광이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는데 작았지만 남자였던 거 같아.

나한테 뭐라고 얘기하는 거 같았어. 그런데 들리지는 않았어. 소리가 울리는 건 느껴졌지만 들리지는 않았거든. 말을 마치고 잠시 남자는 멈췄었던 거 같아.

그리고 갑자기 그가 손에 기다란 걸 들더니 빠르게 내 옆구리 갈비뼈 사이를 찔렀어. 정확히는 오른쪽 두 번째와 세 번째 갈비뼈 사이에.

아픔? 별로. 꿈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리고 뒤로 넘어졌고 그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보였어. 아니 넘어지지는 않았지. 넘어지기 전에 깼거든.

그래 알겠어. 재미없는 농담은 안할 테니까.

이어서 얘기하자면 넘어지는 사이에 상처를 봤어. 옆구리 사이에 하얀 칼이 꽂혀있었고 그 사이에서는 파란 물이 나오지 뭐야.

내가 방금 수영장 물도 파란색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 그냥 타일색이 비친 거겠지.

아, 그러고 보니 그 칼 케이크용 칼 같았어. 파이나 디저트 자를 때 쓰는 거말이야. 그런 거에 쑥 찔린 거 보면 꿈은 꿈인가봐.




그 네 번째 꿈.

이번이 마지막 꿈이야.

응? 어. 알겠어, 얘기할게. 이번 건 뭐라고 할까 제일 소름 돋았던 거라서. 말이 잘 안 나오네.

하아. 이번 꿈, 아니 ‘악몽’에서도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어. 숲속이었던 거 같아. 온통 초록빛이었거든. 그러다가 어느 건물에 들어섰어. 그 녹음 안에서 혼자 굉장히 이질적이었어. 콘크리트 건물이었거든.

아니 일반적인 그런 건물이 아니라 정말 ‘모든 게 콘크리트로 된 건물’이었어. 건물에 들어서자 갑자기 어떤 사람을 만났어. 갑자기 내 손을 잡지 뭐야. 거절? 별로. 굉장히 친근한 느낌이었어. 그래 마치 오랜 친구나 연인처럼.

처음 그 건물에는 나와 그 사람 둘뿐이었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왁자지껄 해졌어. 하지만 다들 서로한테 관심이 없었어. 다들 혼자였고 혼자 떠들고 있었지. 거기서 둘인 사람은 우리뿐이었어.


우리라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네. 켄마 무시하지 말라니까?


‘우리’는 사람들을 지나쳐서 계속해서 걸었어. 생각보다 건물이 큰지 한참을 걸었는데 갑자기 엄청 커다란,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커다란 수조가 눈에 들어왔어.

응, 이번에도 파란색. 정말로 새파란 색이었어.

자세히 보니까 꼭 아쿠아리움에 수조처럼 위층까지 있어서 우리는 위로 올라가기로 했어. 얘기도 했었냐고? 아니. 그냥 느낌.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수조는 점점 새파래졌어. 그런데 안쪽에 말이야. 안쪽에.

아니 괜찮아. 이런 건 빨리 털어버려야지. 더 이상 꾸지도 않으니까.

안쪽에 말이지 뭔가 까만 점같은 것들이 둥실거리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마치 물고기처럼 말이야.

그래 유영. 유영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어.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어. 우리는 더 높이 올라가기로 했어. 그리고 올라가는 동안 나는 계속 수조만 보고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살짝 당겼어. 손끝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구멍들이 있었어. 까만 구멍들. 그중 하나는 노란 종이가 붙어있었어.

무언가를 묻어놓은 것 같은.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 나한테는 수조밖에 보이지 않았거든.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꼭대기 층에 도착했고 나는 수조에 가까이 다가갔어.


그리고 머리를 봤어.


아니 정말 머리였어. 정확히는 ‘머리들’ 이었지.

푸른 수조 속을 유영하는 검은 머리들. 농담이라도 심하지?

하지만 진짜였거든.

그걸 보는 순간 얼어버렸어. 아무생각도 들지 않고 아무느낌도 들지 않았어.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뛰어왔어. 무슨 말인지 외쳤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어. 일본어가 아닌 거 같았거든. 그는 곧 몇 명의 동료들을 부르고 우리를 잡으려 했어. 그때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있던 그가 내 손을 잡고 어딘가로 뛰어가기 시작했지. 어디였을 것 같아?

맞아 바로 그 구멍 앞이었어. 지독하지 정말.

하지만 쫓아오던 사람들이 이제 손에 곡괭이까지 들고 오는데 어떡해. 잡히면 죽을 거 같았거든.

우리는 그 구멍 속으로 뛰어들었어. 많은 구멍 속에서 유일하게 노란색 종이가 붙어져 있던 구멍으로.

그리고 그게 마지막 꿈이었어. 깨는 순간까지도 그 푸른색이 아른거리더라고. 맞아 덕분에 그날은 처음으로 결석까지 했지.

그래도 괜찮아 이제 끝인 거니까.


그런데 아직 궁금하긴 해.

그 머리들은 누구의 머리였을까?




3

“이게 끝이야. 생각보다 별 거 없지?”

생각해보니 그냥 꿈일 뿐이잖아. 그러네. 음.

혼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켄마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들렸다.

“쿠로, 그거 다른 사람한테 얘기한적 있어?”

“이런 걸 어디 가서 얘기해? 아 하지만 악몽을 꿨다는 얘기는 한 적 있어.”

“누군데?”

켄마가 다시 주변을 흘긋거리며 물었다.

“저번에 합숙 이후에 보쿠토 녀석한테. 그 녀석도 악몽을 꾼다기에 곧 끝날 거라고 얘기해줬지. 무슨 꿈인지는 못 들었지만. 뭐 그녀석 답게 간단한 거 아니겠어?”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 켄마가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뭐라도 묻은 건가? 얼굴을 닦아도 묻어 나오는 건 없는데.

“쿠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말이야.”

녀석이 웬일로 들고 있던 게임기를 스스로 가방 속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괴담은 고양이가 개굴하고 우는 거랑 같은 거야.”

“...리에프한테 옮은 거야? 괴담이라니 무슨 말도 안 돼는 소리야?”

“그 말 그대로. 말도 안 돼는 소리지. 꿈이니까, 말도 안 돼는 일이 일어나는 거야.”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너도 리에프 녀석도. 뭐 그래도 이제 전부 끝났잖아?”

“꿈을 꾸지 않는다고 했지?”

“응. 긴장했었는데 다행이야. 꿈도 안 꾸고 요즘은 완전 숙면!”

“그래서 머리가 더 심해진 건가...”

“아니 그거랑은 다르다니까 뭐 어쨌든 이제 문제 해결이지. 어서 가자고. 오늘 애플파이도 사왔으니까. 칼도 챙겼지? 우리 집에는 없으니까 필수야.”

“응. 챙겼어”

“그럼 악몽도 끝난 기념으로 어서 가서 파이나 먹자고.”


소꿉친구가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켄마는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아직 악몽 속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이건 아마 가장 불행한 악몽일거다.


둘은 이제 완전히 석양을 등지고 걸어갔다. 그들에게 역광이 졌다.

그 중 작은 쪽이 손에 얇은 칼을 쥐었다. 케이크용 나이프였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담벼락위에 앉아 있었다.

검은 고양이는 지나가는 그들을 흘긋 본 뒤에 여유롭게 몸을 풀며 울었다.


“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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