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와짱. 나, 이와짱을 좋아해.”

둘이서 같이 방에서 경기영상을 보던 중 갑자기 고백이 날아왔다.

느닷없는 고백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처음 느껴진 건 당혹. 황당. 두려움.


미안 나는 너를 친구이상으로 생각해본 적 없어. 아니 사실 있지만 남자끼리잖아?

입은 벙긋하지 못했지만, 거절의 말을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좀 그렇지? 아니 뭐, 그냥 그렇다는 거야.”

붉어진 녀석은 시선을 피했다.


“어..그... 미안.”

나는 겨우 입을 때고서 작게 말했다.

“농담이야. 그럼 나는 갈게, 이와짱. 늦잠자서 더 못생겨지지 말고, 내일 봐!”

녀석은 평소처럼 가방을 챙기고 자기 집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그 녀석이 말한 내일에는 평소와 다른 재앙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다음날, 오이카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


똑똑

똑똑똑!

“쿠즈카와! 빨리 안나오냐! 더 늦으면 학교 지각이라고!”

똑똑똑!

“야!”

더 세게 두드리려는 순간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아주머니께서 나오셨다.


“어머 이와짱 아니니? 그런데 학교를 가다니 누구랑?”

“네? 당연히 오이카와, 아니 그러니까 토오루랑이죠.”

마주본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떠 있었다.

“‘토오루’ 라니 누구?”


*


‘이것 참 토오루 라니 우리 집에 그런 아이는 없잖니?’

곤란하다는 듯 한 웃음과 함께 문이 닫혔다.

아주머니가 쿠소카와 자식과 함께 질 나쁜 장난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끝까지 집에서 그 녀석은 나오지 않았다.

설마 고백을 거절해서 그런 걸까?

그 정도로 속 좁은 녀석은 아닌데.

만나면 사과해야할까? 하지만 녀석도 받아들이지 않았나? 농담이라고 했잖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어쨌든 만나서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그래 우선 만나서.

그렇게 결정하고서 전력으로 학교로 향했다.

왠지 불안했다.


*


전력으로 3층의 3학년 5반까지 질주하고서 문을 열어 제쳤다.

벌컥, 쾅!

떨어져 나갈 듯 덜컹거렸다.

“야 오이카와!!!!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

싸늘한 정적.

반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소름이 돋았다.

그들의 얼굴에도 같은 것이 떠올라 있었다.

오이카와라니 누구?’


*


뒤통수가 따갑기 시작했다.

장난이라고 하기 에는 너무 심했다.


*


당장 창가에 앉아있던 하나마키에게 달려갔다.

“하나마키 너도 설마 그 녀석이랑 같이 장난치는 거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주변에 산소가 모자라 진걸까. 그렇다고 하기 에는 오늘도 똑같은데.


“이와이즈미 일단 진정하고”

녀석의 얼굴도 똑같았다.

오이카와라니 그런 녀석 우리 반에는 없다고. 아니 애초에 우리 학교에 그런 녀석이 있나?”


*


늘 자신만만하고 잘생겼지만 그 이상으로 짜증나는 녀석.

배구부 주장에 주전세터고 내 소꿉친구이자 단짝친구.

좋아하는 건 우유빵, 싫어하는 건 천재후배.

쑥스러운 말을 할 때 코끝을 만지는 버릇이 있는 오이카와 토오루.


열심히 설명했지만 모두의 대답은 같았다.

선생님들과 학생들, 그리고 심지어 배구부 부원들까지도.


오이카와 라니 누구?”


*


결국 나는 6교시 수업을 내팽겨 치고서 부실로 도망쳤다.

다리가 떨렸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모두가 한 가지 사실만을 얘기하고 있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없다’고.

하지만 그럴 리 없었다.

그렇다면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같이 배구를 하고, 경기 영상을 보고 그리고 고백을 한 ‘오이카와 토오루’는 도대체 누구인가.


*


“아니 그래도 이 녀석만은 기억할거야.”

다급하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서 연락처 5번째 이름을 선택하고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뚜-뚜-


손이 떨렸다. 만약 이 녀석도 모른다면 더 이상 알 녀석도, 물어볼 녀석도 없었다.

[여보세요, 이와이즈미 선배?]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


“카게야마?! 너 알지 그 녀석, 그 키타이치중때 네 선배 세터였던 녀석!”

왜 있잖아 늘 너한테 깐죽거리면서 가르쳐 달라던 서브를 가르쳐주지 않던 녀석. 그 녀석을 아무도 기억 못해. 하지만 넌 알지? 알고 있지?


[...? 네, 그거야 물론 알죠.]

나는 안도했다. 그래 분명 알고 있겠지. 그렇지? 알고 있지?

[$%df*! 선배 말이죠?]


*


쾅! 푸자쟉 파샥

너무 놀라 핸드폰을 벽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파샥 거리며 산산조각이 나버린 핸드폰.

[선배? 이와이즈미 선배?]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아직도 두려운 말을 내뱉고 있었다.

[@#sdf%$ 선배 치직 배구 그만 두 치직지직 않았나요?]

누구야 그 녀석은?

나 혼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던 걸까?

갑자기 두려워졌다.


*


8살 때 기른 구피 6마리.

아버지가 펫센터에서 사오셨던, 꼬리가 아주 화려한 물고기였다.

그중 한 마리 튀는 녀석은 유독 반짝거려 종종 멍하니 바라보았었다.


언젠가 하루, 먹이를 주기위해 들여다본 어항 속에는 ‘그 녀석’ 만이 남아있었다.

혼자서 여유롭게, 더 화려해진 꼬리를 살랑거리며.

작은 자갈과 수풀위에는 살점이, 수면위에는 못다 먹은 5개의 사체(死體)가 유영하고 있었다.


놀라서 굳어있던 나 대신에 오이카와가 뜰채로 그 녀석을 화장실 변기통에 던져 넣고 손잡이를 돌렸었다.

꾸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 구피는 사라졌다. 마지막에 눈이 마주쳤던 거 같기도 하다. 착각이겠지.


*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계단을 뛰어 넘어 4층의 교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책장에 있던 출석부들을 바닥에 던진 뒤에 뒤졌다.

해가 지기 시작했는지 점점 모든 것이 오랜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94년생 입학자...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이것도 아니고”

책장을 거의 엎다시피 하며 명부를 뒤졌다. 손에 따끔함이 느껴지는 것 같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망할 ‘오이카와’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하지만 그럴 리 없었다.

떨리는 손을 잡으며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기억하는 ‘오이카와’ 는 도대체 누구지?”


*


“이와짱 역시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바로 고백할거야.”

“그러냐.”

“정말이지 그렇게 넘기지 말라고!”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일 아니냐.”

“그건 모르는 일이지.”

빙글거리며 웃던 녀석. 마치 오렌지 빛의, 흘러내리는 듯 한 웃음이었다.


*


이건 말도 안 돼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복도를 질주하고 계단을 뛰어넘어 교문을 뛰쳐나왔다.


아프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서 집을 향해 뛰어갔다.

검게 물들어가는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리가 아렸다.


*


10살 때 오이카와와, 아니 그때는 토오루였던 오이카와와 같이 가위 바위 보를 하며 계단 올라가기 놀이를 하곤 했었다.

녀석은 늘 4번째 계단을 싫어했다.

져서 그곳에 올라서기라도 하면 늘 일찍 내려오기 위해서 보채곤 했다.

녀석이 말하길,


“4번째 개단은 늘 꿈으로 이어지는 거야. 이와짱도 조심해?”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울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집 현관계단은 늘 4개이지 않았나?


*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에 있을 그녀석의 흔적을 뒤졌다.

유치원 앨범. 중학교 때의 졸업앨범. 대회에 나갔을 때의 사진. 내가 썼었던 일기.

검은 선으로 삐죽삐죽 칠해진 ‘무언가’만이 가득했다.


내가 잘못된 걸까?

이제 정말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와이즈미 하지메’의 머릿속에밖에 존재 하지 않게 되어버린 걸까.


*


몸의 떨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녀석이 없는 세상이라니 그건. 있을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 짧은 의문이 스쳐지나갔다.

갑자기 울음이 났다.


*


나 혹시 그 녀석을 좋아했었나?


*


“이와짱 나는 꿈 꾸는 게 좋아.”

“저번에 발표시간에 발표한 꿈?”

“아니 그거 말고 꾸는 꿈 말이야.”

“나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아니야 나랑 같이 꾸면 분명 좋아 할 거야.”

느닷없는 소리를 하며 녀석은 웃었다.

실없는 소리였다.


*


양손으로 울음이 터져 나오는 입을 막았다.

아무리 막아도 구멍이라도 난건지 멈춰지지 않았다.

형편없이 떨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침대위에 쓰러졌다.

최악이었다.

최악의 날이었다.


*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것일까.

그때 거절하지 말아야 했던 건가. 하지만 이제는 모두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질문에 대답해줄 사람은 이제 없어졌으니까.


*


17년 인생에서 이제 완전히 혼자가 되어버렸다.


*


한참을 울어 멍해진 정신을 부여잡고서 체육복을 찢었다.

등에 적힌 민트색 4번이 가로로 길게 찢어졌다.

찌익, 2갈래 3갈래, 그리고 4갈래로 찢긴 옷을 매듭지었다.

동그란 원하나와 기다란 줄 하나가 생겼다.

전구에 줄을 매달았다.

그리고 목도, 함께 매달았다.


*


교사(絞死)는 민사(悶死)가 되고 다시 액사(縊死)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사(情死)가 되어버린 건가.


목에 강한 압박이 점차 편안하게 느껴졌다.

산소가 차단되고 뇌가 멈췄다. 심장도 멈추고서,

이제는 어둠. 정적. 정지.

무(無)가 되었다.


*


나는 그렇게 죽었다.


*


흐린 눈앞에 무언가가 어른거렸다.


“이와짱 ”

고백했던 날과 같은 교복차림이었다.

“어땠어, 내가 없던 하루는?”

녀석이 내 목을 감싸고 웃었다.


죽음의 이유는 순식간에 유살(誘殺)이 되어버렸다.


*


“자, 여기”

녀석이 내가 만든 교수대를 내밀었다.

한 번 더 묶여져 매듭이 두 개가 된 것이었다. 어느새 내 목에서 빼낸 것일까.

나는 멍하니 녀석을 올려다봤다.


“너, 여기에서는 없었는데 이 세계에서, 는, 너는, 아무도 몰랐 나 혼자”

입에서 말이 되다 만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숨을 헐떡이며 뒷말을 이었다.


“여기, 여기는 네가 없는 곳 아니였어?”


*


“저번에 거절했었잖아 이와짱이.”

어째서?

“거절했었으니까 한번 해봤어.”

어떻게?

“걱정 하지 마, 모두 꿈이니까. 우리 둘이 같이 꾸는 꿈 인거야.”

배시시 웃는 녀석은 분명히 내가 아는 오이카와였다.

그 웃음에 두려운 동시에 안도했다면, 이상한 일 일까.


*


모두가 나오는 꿈이라니 말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가능해 이와짱."

말도 안 돼는 소리.

"맞아 하지만 꿈속에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꿈?

“그래. 이것 봐, 이와짱이 말하지 않아도 전부 알고 있잖아? 여기는 꿈속이야. 네가 신인. 하나의 세상이지.”

왜?

녀석이 방긋 웃었다.

“그럼 나도 다시 한 번 물을게 이와짱.”

녀석이 다시 올가미를 내밀었다.

방금 전까지 내 목이 감겨있었던 올가미

녀석이 웃었다.

올가미도 같이 웃었다.


“내가 없던 하루는 어땠어? 완벽한 하루였어?”


*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붉은 빛이 사방으로 반짝였다.

도망쳐야했다.

본능이 얘기하고 있었다. 대답하면 안 된다고, “가장 불행한 하루였다”고 대답하면 안 된다고.

이와이즈미는 있는 힘껏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낙하는 길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부서지지 않았다.

왜냐면 꿈은 끊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둘은 꿈속에.


*


“괜찮아 이와짱.”

아직 꿈속이니까.

“다음번에는 긍정 해줄 거지? 부정 한다 해도, 괜찮아.”

둘이서 영원히 꿀 수 있는 꿈이니까.


*


올바르게 케이크를 먹는 방법.

케이크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자른 두 단면 사이를 붙여주어야 한다고 전문가가 설명했다.

“모든 건 케이크와 같지 않을까?”

오이카와의 말을 받아치듯이 전문가의 말이 이어졌다.

[계속해서 자른 부분의 단면을 붙여줍니다. 서로 마주보게 하면 공기에 노출되지 않으니까요. 그럼 늘 맛있는 케이크인 상태인 거죠.]

“다른 건 필요 없는 것처럼 말이야.”


*


또다시 둘은 마주봤다.

네가 없는 하루가 가장 완벽하지 못한 하루가 되기 위해서.

“괜찮아 아직도 이어지고 있으니까.”


다시 밤이 찾아 왔다.

이와이즈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이카와는 고백을 하기 위해 입을 뗐다.


위에서 지켜보던 다른 오이카와가 말했다.

아니 속으로 얘기했다.

그 쪽의 이와짱은 아직 모르는 이와짱이야.

어떡할래?

그 말은 누구에게 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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