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월 28일, 일요일. 날씨는 지나치게 맑음.

저번 주부터 지겹도록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이 파래진 날 이였다.

열린 창밖에서는 연인들과 가족들이 하나 둘 벚꽃놀이 준비로 분주하다.

짐으로 가득 찬 캐리어를 한손에 끌고 오른쪽 어깨에는 아이스박스, 반대편 어깨에는 짐가방을 메고서 서로 모여 하하호호.

물론 나는 그 광경을 모퉁이에 위치한 낡은 2LDK 아파트의 창가에서 혼자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지만.


“한심하네.”

왼손에 든 담배를 위 아래로 까딱이며 생각을 입 밖으로 내봤다. 과연, 내 목소리로 들으니 한층 더 한심한 느낌이다.

남들이 모처럼의 휴일에 기뻐할 때 나는 테라스라고 하기 에도 뭐한 좁은 베란다에서 창가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막 일어나 까치집을 진 머리에 회색 츄리닝을 입고서 입가에는 담배 한대.

누구 씨가 본다면 기함할 행색이었다.

뭐 내 행색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그래도 집안은 나름 깔끔했다. 정확히는 ‘어딘가 부족하다’ 가 더 적절한 표현이겠지만.

그 말 그대로 집안에 있는 가구들은 어딘가 일회용이라는 느낌이 풍기고 있었다.

부엌의 식탁 위에 올려놓은 미니 라디오만이 쓸쓸한 방의 분위기를 환기해주고 있었다.


‘...안개가 낀 풍경 속에서 그 날의 노래가 들려와요....’


...환기하고 있다는 말 취소. 더 우중충하게 만들 뿐이었다.

쯧. 짜증나는 저놈의 라디오 확 엎어버릴까, 하고 생각했지만 저기까지 걸어가는 것도 귀찮아졌다. 어차피 곧 다른 곡으로 넘어가겠지 라는 생각으로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 창가에 둔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생활감이 느껴지는 것은 이 작은 하얀색 화분 하나뿐 이였다.

“누구씨꺼 아니랄까봐 참 삐뚤어 졌어요.”

3년간 감감무소식이다 이제야 나기 시작한 새싹을 보자 다시 그 녀석 생각이 났다.


오이카와와는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사귀었었다. 대학생 때 또다시 한번, 대학교 졸업장을 따고서 사회인이 되어 또다시 한번.

장장 도합 세 번을 우리는 사귀었‘었’다.

그래봤자 우리 사이에서 ‘연인’이 추가되고 빠진 것뿐이었다.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후 3년간의 공백을 빼면 여전히 친구라는 등은 반짝이며 켜져 있었다.


“그거 조금 이상한 거 아니야?”

이 이야기가 나오면 늘 듣는 말이었다.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지. 내가 보기에도 이상한걸.

‘연인이 아니게 되어도 여전히 친구인 동시에 같이 산다.’ 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였다.

물론 이번에 대판 싸운 이후에 따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으득!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나는 담배의 필터를 사정없이 으깼다.


시작은 사소한 이유였다. 이제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사소한 이유.

그날 아침식사의 계란말이에 소금을 많이 넣었기 때문이라거나 밥이 질었다던가, 그 정도의 이유로 처음 싸움은 시작됐다.

하지만 작은 싸움은 평소 가지고 있던 불만들을 하나 둘 터트리기 시작했고 싸움은 점점 격해졌다. 우리는 3일 밤낮으로 싸워댔고, 결국 녀석은 얼굴에 커다란 멍 하나를 매달고서 짐가방 하나와 함께 이 집을 나가버렸다.

어차피 둘이 살던 좁은 집에서 그 녀석의 짐은 그게 다였다.


결국 남은 건 요 짜증나는 화분뿐 이라는 소리다.

“...주인 닮아서 참 늦돼요. 이때까지 물 준건 어떡하고 이제야 싹이 나냐?”

괜한 녀석에게 투덜거리고는 새싹을 다시 햇빛이 드는 창가에 내려놨다.


필터가 씹혀 엉망이 된 담배를 입에서 뱉어내고 담배 갑에서 새것을 꺼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서 날숨을 크게 하-아.

입에서 형체가 되지 못한 흰색 구름들이 나왔다.

처음에는 덩어리져있던 것들이 점점 흩어지고, 마지막에는 하늘에 녹아버렸다.

허탈한 기분이었다.


가장 처음, 고등학교 때 헤어졌을 때는 2달이였다.

두 번째 헤어 졌을 때는 대학교 여름방학 4달 동안.

세 번째 헤어 졌을 때는 1년이었다.

우연찮게도 직장에서의 전근발령 때문에 도쿄 근교에서 집을 구하다 부동산에서 녀석을 만났었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을 때 오이카와의 얼굴은 사정없이 구겨져있었다.

음 지금도 그때 녀석의 일그러진 얼굴은 올해의 개그상감이지.


1년 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쭈뼛거리다 술을 마시고, 1차, 2차 그리고 3차까지 가게 됐다.

아침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대위에서 녀석과 같이 알몸이었고,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동산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2년 동안 또 어떻게 어영부영 같이 살다 다시 헤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3년.

그동안 녀석과 문자 한통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대강의 소식은 전해 들어 알고 있지만 본인에게 직접 듣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눈을 감고 가만히 듣고 있자 바람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그리고 바람소리에 너의 발걸음 소리가 더해진다.

28년 동안 들어서 귀에 박혀버린 너의 발소리를 내가 구분 하지 못할 리가 없다.


슬며시 눈을 떴다.

길 위에 더 이상 나들이객들은 보이지 않았다. 만개한 벚꽃만이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이번에 만약 녀석이 다시 한 번 우리사이의 관계에서 연인이라는 등을 켜자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멍청이, 쿠즈, 쿠소!”

어차피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늘 녀석이 먼저 싸움을 걸어왔었고 사과를 하는 것도 녀석의 몫이었다.

그때마다 내 대답도 언제나 똑같았다. 그러니 이 고민도 어차피 쓸모없는 일일 것이다.


‘...벚꽃이여, 벚꽃이여! 단지 춤추며 떨어져요. 언젠가 다시 태어날 때를 믿으며...’

이제 라디오가 내뱉는 노래가사는 내가 할 말과 같았다. 역시 끄지 않길 잘했다.


3년 만에 화분에서 싹이 난 것처럼 우리사이에도 다시 봄이 온 것일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씨앗이 봄을 착각할리는 없으니까.


끼익,  닫혔던 문이 오랜만에 열리고

봄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4번째로 사귀게 되었다.

29살의 봄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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