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나는 지금 4번 사귀고 4번 헤어졌던, 그런데도 같이 살고 있는 상대의 결혼식 축사를 쓰고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담배를 뻑뻑 피며 새하얀 백지를 노려봤다.

깜빡이는 화면에는 미련한 내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후우”

하얀 구름들이 머리위에 가득 생겨났다가 곧 먹구름이 되었다.

오늘의 내 머릿속 날씨는 최악.

저기압인 내 기분을 중심으로 더 저기압인 생각들이 모여들면서 상승, 훌륭하게도 구름 투성이다.

차라리 비라도 쏟아져서 사라져버리면 좋으련만.

죄 없는 머리만 벅벅 긁었다.


왜 옛 연인의 축사를 쓰고 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처음 그 얘기가 나왔을 때 우리는 아침식사 중이었다. 그날따라 마침 계란말이가 예쁘게 말렸었고, 밥이 고슬고슬하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된장국도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되서 좋았던 날.


그 날은 헤어진 지 2년, 동거한지는 5년째였던 날 이였다.


오이카와가 불쑥 말을 꺼냈다.

“결혼식 축사 말이야, 이와짱이 해주면 좋겠어.”

녀석은 마치 오늘따라 계란말이가 맛있네? 라고 묻듯이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내 머릿속은 폭풍이 휘몰아치다 못해 완전히 한번 가라앉았다 떠오른 것 같았다.

네 번 사귄 상대한테? 같이 동거한 상대한테?

우리, 사귄 걸로만 치면 10년인 거 알아? 거기다가 동거한 거로는 거의 12년이다?

묻고 싶은 것은 한 가득 이었지만 구태여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녀석도 모를 리 없으니까.

“그래.”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우리의 식사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싱겁게 얘기가 끝나버리고 지금 이 상황이라는 얘기다.

“...그냥 확 망쳐버릴까.”

세게 담배를 비벼 끄며 생각했다.

간단한 일이었다. 내일 결혼식에서 혼인서약 후, 내 차례 때 저 망할 오이카와와 나는 사귀었던 사이라고 밝히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그걸 모르고 나에게 맡겼을 리가 없었다.

축사를 부탁한 뒤 덧붙였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부탁해.’

“그래 잘 아는 사람이지, 4번이나 사귀었으니까.”

헛웃음이 났다.


딱히 안 좋게 헤어진 건 아니었었다.

너무 긴 시간을 사귀어서 그랬던 걸까.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건 분명했다.

단지 우리는 식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타오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건 누구의 탓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싸우지도 않았고 떨어지지도 않았다.


‘연인’이라는 등은 이제 퓨즈가 끊겨 다시는 켤 수 없을 테니까.

이제는 단지 ‘친구’니까.

그러니 녀석이 나한테 축사를 맡긴 것이 딱히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방식대로 남은 사랑을 전하기로 했다.

사랑이라 말하기도 쑥스러운, 남은 것들이지만.

타다닥 거리는 타자소리만이 방안에 가득했다.


머리를 쥐어짜길 두 시간, 드디어 연사(사모할 연戀, 말씀 사辭)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가득한 거짓연사를.


띠링, 철컥

“나왔어 이와짱~”

그리고 그날 우리는 오이카와의 결혼 전야를 축하했다.







그리고 다음날 결혼식 당일.

분주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하나마키는 축의금을 받고 장부에 적고 있었고,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의 예상대로 어린 하객들을 울리고 있었다. 감독님은 주례 때문에 꽤나 긴장하셨는지 손을 떠시며 다시 인쇄물을 읽어보고 계셨다.


그리고 나는 단상 뒤쪽에서 다시 한 번 축사를 연습하고 있었다.

“크큼”

오랜만에 멘 검은 타이가 목을 옥죄는 것 같았다.


그 녀석이 행복하길 바라지는 않았다.

불행하지 않기만을 바랬다.

그 이상을 빌어줄 의리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 기분으로 단상 앞에 섰다.

내가 할 말은 간단했다.


“다음은 오늘 두 사람의 즐거운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신랑의 친구 이와이즈미 하지메씨의 축하메시지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단상은, 녀석이 서있는 곳보다 세 계단 위였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후우, 내쉬고. 축사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와이즈미 하지메 라고 합니다. 오늘의 신랑과는 여러 가지로 악연이 쌓여 소꿉친구에서부터 여기까지 왔습니다.”

소꿉친구가 악연이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하객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녀석도 웃고 있었다. 신부도, 웃고 있었다.


“처음 만난 건 유치원 때였는데 그때부터 심각하게 꼬인 놈이었죠. 먹고 싶지 않은 반찬이 나오면 드러누워 떼쓰지를 않나, 사슴벌레를 잡자고 했더니 다짜고짜 배구를 하자고 하지를 않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으면 일단 울어버리고. 물론 저는 그럴 때마다 쿠소카와라고 불렀습니다만.”

이제는 웃다 못해 모두가 박장대소였다. 동창들이 모여앉은 자리에서는 너무 한 거 아니야? 라며 놀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자기중심적이고, 남 놀리기 좋아하고, 일단 자기가 하고 싶은 일부터 먼저 하는 그런 녀석이니까요.”

그 말에 카게야마는 열심히 끄덕이고, 배구부 친구들은 그렇지! 라는 눈길을 보냈다.

생각해보니 너도 참 34년 동안 한결같았구나.

“그래도 나쁜 녀석은 아닙니다. 아니면 이때까지 제가 친구였을 리가 없으니까요. 적어도 옆에 계신 신부 분을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좋은 놈은 아니지만.”

마지막까지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하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모두가 웃고 떠들며 이 날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최대한 웃으려 노력했다.

입가가 떨렸다. 눈물이 나는 것 같았지만 너무 웃어서 나는 것 일거다.


“뭐, 그래도 행복해라, 오이카와.”

이건 약간 거짓말 이였다.

너는 알아챘을까. 마주친 녀석의 얼굴이 약간 굳은 것 같았다.

하객들의 환호성을 뒤로하고 나는 퇴장했다. 입가가 떨렸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웃었다.

후련한 기분이었다.


축사가 끝나고 신랑과 신부는 버진로드를 가로질러 퇴장했다.

“오늘 신랑 오이카와군과 신부 xxx양이 둘의 인생이면서도 하나의 인생을 맞이하였습니다. 1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그리고 30년 뒤에도 늘 한결같이 서로 아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모두 힘찬 박수로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두의 박수가 쏟아졌다.

나도 박수를 쳤다. 마지막까지 잘했다. 하지메. 잘한 거야.



자리에 앉자 옆에 있던 하나마키가 물었다.

“이와이즈미 너는 식 끝나면 어디가? 같이 뒤풀이 가자!”

“아니 나는 여행 갈 거야.”

“지긋지긋한 친구한테서 벗어난 기념으로? 신혼 여행가는 녀석이랑 시기도 같다니 너희 진짜 사이좋구나.”

“그래, 그런 것 같네.”

나는 활짝 웃었다. 모든 걸 털어낸 웃음이었다.

“...너 오이카와랑 같이 살더니 웃는 것도 옮은 거 아니야? 평소에 잘 웃지도 않던 녀석이 지금은 어떻게 그렇게 똑같냐.”

“뭐 같이 살다보니 그런가 보지. 생각해보니 너무 오래 같이 살았어.”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이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의 마지막, 단체사진이었다.


모두들 사진을 찍기 위해 단상으로 모였다.

내 자리는 오이카와의 옆이었다.

찰칵. 찰칵.

“네, 거기서 모두들 한 번 더 웃어주세요! 하나 둘”

찰칵.

“네 이제 다 됐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이제 정말 끝이었다.

“잘 살아라.”

“...응.”

마지막 단체사진을 찍고 오이카와와 마주보고 웃었다.

마주잡은 손이 따뜻했다. 뜨겁지 않은, 따뜻함이었다.



그렇게 폐식을 하고 녀석은 신혼여행을, 나는 기차여행을 떠나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합니다, 안전선 뒤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열차는 xxx행, xxx행입니다. 승객 분들은…….’

열차가 도착하고 나는 창가 제일 끝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큰 짐은 머리 위 짐칸에 올리고, 의자에 앉아 가방 속을 정리했다. 노트를 꺼내고 카메라 렌즈를 점검했다. 모두 충동적으로 산 것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에 사진이 잡혔다.

우습게도 결혼식에서의 사진은 흔들린 사진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흔들렸기에 좋은 사진도 있는 법이었다.

구겨진 끝부분을 손으로 펴 노트 사이에 집어넣었다.


‘이 열차는 이제 xxx로 출발합니다. 승객여러분은 다시 한 번 승차표를 확인하시고....’

사실 이 열차표를 살 때 도착지를 보지 않았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서로 없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같이 살았다. 하지만 괜찮은 거 같았다.

이제 어디로 가든 혼자 살아갈 수 있어.



중심별에서 떨어져 나온 위성은 차가운 우주를 여행한다.

언젠가 새로운 행성을 발견할까.

아니면 계속 이렇게 차가운 우주를 유영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 것 같다.




기차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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