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 오이카와!”

“응?”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놀라 머리를 박고 있던 베개에서 고개를 들었다. 뻑뻑한 눈을 끔뻑이며 눈을 뜨자 츄리닝을 입은 이와쨩이 침대 옆에 서있었다.

“일어나라고. 벌써 8시야.”

머리를 긁적이며 흐릿한 눈으로 탁상위의 달력을 보자 오늘은 17일 토요일.

“아우 이와짱은 왜 휴일날 아침에 이렇게 일찍 깨우는 거야...”

잠긴 목소리로 투정을 부리자 평소와 같은 목소리가 날아왔다.

“‘휴일이라도 아침 8시에 기상. 같이 아침식사.’ 이거 네가 적은 거다? 보이지?”

손가락을 까딱이며 벽에 붙여놓은 우리의 동거수칙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후딱 씻고 나와라. 아침밥 다 됐으니까.”

“네에”

기다란 하품을 하며 대답했다.

“눈곱이나 떼고 하시지.”

“그런 건 얘기하는 거 아니야 이와짱! 그리고 오이카와씨는 그런 거 붙어있어도 잘생겼거든!”

“그래그래.”

이제는 시답잖은 장난 정도는 그냥 넘겨버리는 이와짱을 보고 투덜거리며 금방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고는 수건을 두르며 나왔다.



“역시 이와짱 30년쯤 전 사람인게 분명해. 취향이 완전 할아버지야 할아버지.”

식탁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며 말했다.

소금 꽁치구이에 건더기 없는 미소된장국, 흰 쌀밥에 장아찌라니.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렇게는 않드신다구! 라고 하면 역시 한 대 맞겠지.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자 실눈을 한 이와쨩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생각 하는지 다 보이니까 입 다물고 먹기나 해라.”

“넵.”

입 한 가득 우물거리며 한 그릇을 다 비우고서 시원한 물 한잔을 들이켰다. 이와짱은 아직 먹는 중이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역시 이와쨩 밥이 제일 맛있다니까.

창가 옆에 꽂아 놓은 라벤더 향기가 식탁까지 퍼지고 있었다.



아침밥은 이와쨩이 했으니 설거지는 내 차례였다. 식기정리를 끝내고서 고무장갑을 벗으며 이와쨩에게 물었다.

“이제 정리도 다 했고 영화나 보러갈까 이와짱?”

“좋아”

바깥 데이트를 좋아하지 않던 이와쨩의 뜻밖의 대답에 기뻐서 고개를 들었다.

“고지라 시리즈 보려고 빌려왔지.”

그리고 보인 건 고지라 비디오들.

“...이와쨩 몇 살이세요? 이제 앞자리 숫자가 2거든요? 그거 초등학교 때부터 1년에 한 번씩은 본거 같은데.”

“저번에 네가 약속했잖아. 딴소리 말고 팝콘이나 들고 와라.”

“잠깐 그거 술 마시고 한 약속인데!”

“술이고 뭐고 약속은 약속이잖아. 어서 준비해라.”




그렇게 억울하게 시작한 영화는 이미 몇 번이나 봤던 것인지라 영 심심했다. 도대체 고지라는 왜 바다에서 저렇게 튀어 나오는 건지 정말이지 옛날부터 이해 불가다.

흘긋 옆을 보자, 집중하고 있는 이와쨩의 얼굴이 보였다.

언제나처럼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입을 삐죽 내민 자세로 화면을 쳐다보는 못생긴 얼굴.

샌프란시스코에 고질라가 등장하는 장면이 나오면 늘 못생긴 눈을 크게 뜨고 작게 입이 벌어진다. 찍고 싶은데, 그러면 분명 혼날 테니 눈으로만 열심히 쳐다봤다.



120분간의 러닝타임동안 이와짱은 고지라를, 나는 고지라를 보는 이와짱을 감상했다.

영화관보다는 이와짱이 잘 보이니까 뭐 이것도 괜찮은 데이트인 것 같았다.

시계는 오후 3시를 지나고 있었다.

TV옆의 라벤더는 향기를 집안에 퍼트리고 있었다. 달콤한 향이었다.



두 편이면 끝날 것 같던 영화감상은 이와쨩이 가져온 신 고지라 덕분에 더 늘어났다.

‘新’이 붙어봤자 내가보기에는 기껏 해봤자 CG의 차이였지만 이와쨩한테는 그게 아니었나보다.

뭐 나야 2시간짜리 실시간 이와쨩 감상회여서 좋았지만. 이것도 말하면 혼나려나.

그렇게 어느새 시간은 해질녘이었다.

이렇게 둘이서 느긋하게 구경하는 건 굉장히 오랜만인 기분이었다. 서로 공부와 일정 때문에 바빠서 늘 시간이 어긋났었으니까.

이왕이면 구경하면서 차나 마실까? 하고 우리는 급조한 컵과 센베이로 준비를 했다.

“아무리 그래도 차(茶)라고 쓰인 도자기 컵에 커피는 좀 아니지 않아 이와짱?”

“이거 아니면 내열되는 컵도 없어.”

흥 이라며 대답하는 모습은 어느 때와 같았다. 에헤헤, 하고 늘 바보 같다고 혼나는 웃음이 났다.

“그러면 전부 발코니로 옮기자.”

나는 컵 두 개에 방금 탄 커피를 담고, 이와쨩은 넓은 접시에 센베이를 담고서 발코니로 나갔다.

기분 좋은 바람이 라벤더 향기를 발코니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발코니의 작은 탁상에 들고 온 것들을 내려놓고서 우리는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시답잖은 얘기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왼쪽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전히 땅거미가 졌을 때 말을 던졌다.

“있지, 이와짱.”

건너편에 앉은 이와쨩은 평소의 이와쨩이었다.

“왜 그러냐.”

“분명히 우리 헤어졌잖아. 이와짱 짐 싸서 나갔고.”

“그랬지.”

“근데 왜 여기 있는 거야? 꿈인가? 아니 내가 이런 꿈을 꿀 리 없잖아. 아하하 우리 엉망진창으로 싸우고 헤어졌고. 그때 할 말 다 해버렸으니까, 더 이상 미련 같은 거 전-혀 없는데.”

집안을 가득 채우던 라벤더 향이 점점 사라진다. 제발 사라지지 말아줘.



“남아있기 때문이겠지.”

눈부신 마지막 황혼이 너를 비추고

“그리고 오이카와.”

너는

“늘 얘기했잖아. 이미 아는 걸 모르는 척 하는 건 좋지 못한 버릇이라고.”

꿈속에서도 옳은 말. 과연 내 에이스. 찌르는 시선이 꿈에서도 따갑다.

“알아. 알고 있었어. 오늘이 꿈이라는 것도. 하지만 놓기 싫었다고. 기분 좋은 꿈이잖아. 왜 깨야 하는 거야? 이와짱.”

두 손으로 눈물이 나는 얼굴을 가리고 싶지만 그러면 네 얼굴을 못 보니까, 그럴 수 없었다.

“흥, 다시 얘기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걸 묻지 말라고. 쿠소카와”

잔을 훌쩍 비워버린 이와쨩은 나와 눈을 맞추더니 다리부터 점점 라벤더로 변하기 시작했다.

잡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래야 하는데. 생각을 하면서도 팔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점점 사라지는 이와쨩을 그날과 같이…….


그렇게 라벤더로 변해버린 이와쨩은 창밖으로 멀리 날아가 버렸다. 멀리 멀리. 그때처럼.

응, 맞아. 알고 있었지.

이 라벤더향. 행복의 향.

헤어지지 않은 행복한 [이곳] 에서는 날 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깨닫는 순간 그렇게 사라질 필요는 없잖아 정말.



“...그리고 눈뜨자마자 내 앞에 있을 필요는 더 없는데 말이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자 말라비틀어진 라벤더와 마주쳤다.

말라비틀어진, 색 바랜, 라벤더.

더 이상 향이 나지 않는, 싸운 날 아침에 선물 받은 라벤더.


누워있던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고서 무릎을 감싸 앉아 생각했다.

“으음, 그래도 벌써 해질녘이고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는 없잖아. 그래그래.”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혼자 말했다. 말하는 이 오이카와, 듣는 이 오이카와.

“일단 밥을 하고 저녁을 먹고 정리하고, 청소도 하고 쓰레기도 버리고, 이제 혼자서.... 혼자서...”


[이와짱 없이]


혼자인 게 얼마만이지? 늘 같이 였는데. 새삼 다가온 혼자라는 말이 두려웠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라벤더 향이 스쳤다.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 뭔가 결심하고 핸드폰을 쥐었다.

“정말 이와짱 나도 안다고!”

난폭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연스럽게 1번을 꾸욱 누르고서 전한다.

깨달았지만 피해왔던 말.

“이와짱 나 -----.”




다시 한 번 라벤더 향기는, 행복은 그 집에 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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