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지메 알겠니? 세상에 독심술사 같은 초능력자는 없단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는 마음껏 사랑한다고 말하고 표현하는 거야. 아니면 사람은 알지 못하니까.’


어릴 적 아버지가 해주셨던 말.

이와이즈미는 지금도 그 말이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랑 사귀자.”

“응?”

“나, 너를 좋아하니까 사귀자고.”

오이카와가 얼빠진 얼굴을 하고서 자신에게 고백하는 소꿉친구를 쳐다봤다.

“그거 고백이야?”

“그럼 사귀자는 게 고백이 아니면 뭔데.”

“뭐 무드라던가 그런 거 없이 그냥? 아니지, 그거 이전에 우리 친구였지 않나?”

너무 당황해서 그런지 지적의 순서가 틀려버렸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닌데, 그럼 어디부터 문제지? 실없는 생각이 오이카와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친구 맞아. 그런데 좋아졌으니까.”

노 블록 상태의 오이카와에게 다시 한 번 강 스파이크가 내리 꽂혔다.

“사귀자.”

그 얼굴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의 얼굴은 이제껏 중 가장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그 기세에 눌렸던 걸지도 모른다.


“....일주일 정도, 기다려줘.”

그렇게 애매하게 대답했던 것은.




2.

“그래서 사귀게 됐다고?”

의자를 옆으로 돌려 앉아 팔랑팔랑 책을 넘기던 마츠카와가 옆의 책상에 엎드려 있던 오이카와에게 물었다.

“이때까지 뭘 들은 거야 맛층. 일주일동안 생각해 보기로 했다니까?”

웅얼거리는 대답이 책상위의 책무더기 사이에서 들렸다. 앞에 앉은 마츠카와는 얄미울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나는 네가 먼저 고백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 아니 역시 이와이즈미가 남자다운건가.”

음 그렇지 역시 에이스야.

그렇게 중얼거리는 마츠카와를 보며 오이카와가 표정을 구겼다.

“역시라니 무슨 소리야? 그리고 왜 안 놀라는 거야 우리 친구였는데!”

“그거야 너희는 안사귀는게 오히려 이상했으니까.”

“응?”

“오 저기 마침 오네.”

당황한 오이카와를 뒤로하고 마츠카와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의 뒷문에 서있는 하나마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천 엔을 받고는 지갑에 넣는 것이었다.

“으으 오이카와가 먼저 고백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것 봐, 역시 내말처럼 이와이즈미가 먼저 고백했잖냐.”


“...그래 그럼 그렇지. 역시 오이카와씨 친구들이야.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

고개를 들었던 오이카와는 쿵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책사이로 고개를 처박았다.

“한소리 할 줄 알았는데 안하네?”

신기하다는 목소리로 하나마키가 물었다.

“오이카와씨는 뭐든지 알아서 그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흥이야 흥. 다들 상담은 못해줄망정 말이지.”

오른쪽머리를 책상에 부비적거리던걸 고개만 돌려 두 명을 쳐다봤다.


둘은 슬쩍 시선을 마주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고. 오히려 너희들이 안 사귄다고 해서 더 이상했는데.”

마츠카와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 다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제라도 고백했다니까 다행이네. 그러니까 이제 안 사귄다는 헛소리 하면서 염장 지르지 말라고.”

마츠카와의 말에 이어 하나마키가 투덜거렸다.


그리고 그 말에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이와이즈미가 교실에 들어왔다.

“야 오이카와.”

“어어어어어 이와쨔아앙!”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책상의 책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삑사리 난 목소리가 울렸다.

“뭐 죄지었냐. 왜 그렇게 당황해?”

아니 이게 다 누구씨 때문인데 그래! 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입에 풀이라도 바른 듯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큼흠 음음음 몇 번 목소리를 가다듬고서야 입이 떼졌다.


“우리 반에는 큼, 웬일이야 이와쨩?”

그리고 그와 반대로 이와이즈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평소처럼 말했다.

“이제 점심시간이니까 밥 먹자고 왔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보자 벌써 12시였다.

그래 일단 당황하지 말고 평소처럼. 그렇게 속으로 생각한 오이카와의 평상심은 1초 만에 깨져버렸다.

“자 여기 네 도시락.”

연한 하늘색 보에 쌓인 저건..... 설마 수제 도시락?!?!? 싸온 거야?!?

“우와 이거 네가 싼 거야 이와이즈미?”

뒷문에 있던 두 명이 자연스럽게 책상을 붙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응.”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린 이와이즈미도 자연스럽게 착석.

뭐야 지금 나만 당황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손으로는 부들거리며 도시락의 뚜껑을 열고 있었다.


뚜껑을 열자 안에는 새하얀 쌀밥과 고기류 반찬들이 가득했다.

겉이 바삭한 닭튀김과 익힌 미니토마토를 베이컨으로 말아 이쑤시개로 연결한 롤, 스테이크와 양파를 소스에 같이 볶은 요리가 가득 든 단백질 듬뿍 정성 식단이었다. 아마 평소에 제대로 챙겨먹지 않는 오이카와를 위해서겠지.

그렇게 생각이 들자 두 명은 도시락에서 눈을 떼고 오이카와를 쳐다봤다.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부정하던 친구는 어깨를 들썩이며 얼굴을 붉게 붉히고 그 도시락에서 눈을 못 떼고 있었다.

“응 역시 싫다.”

“그러게.”

유일하게 정상인인 두 명이 말했다.




3.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도시락에서 이어진 이와이즈미의 배려특급애정연속이었다.


밥을 먹은 후에,

“자 받아라.”

“뭐야?”

평소보다 약간 인상 쓴 얼굴로 오이카와의 손에 쥐어준 것은 오이카와가 좋아하는 제과점의 수량한정 우유빵이었다.

“어...이거 어디서 난거야 이와쨩?”

“줄서서 사온거지 어디서 나기는.”

“오래 기다려야 하는 덴데?”

“좋아하니까 괜찮았어. 저기 가서 같이 먹자.”


이동 수업 전에,

“오늘 가정 시간에 체육복 긴 거 입고 가라.”

“그냥 요리 한다는데 왜?”

“기름 튀어서 다치면 어쩌려고, 자 내 체육복 두르고 해.”

그러면서 위에 입고 있던 져지를 벗고는 턱, 오이카와의 품에 넘겨주는 것이었다.

“그럼 이와쨩 옷에 기름 튀는데?”

“괜찮아 그 정도는. 그것보다 네가 다치는 게 더 문제지니까.”

“뭐야 공 올릴 세터가 다치면 안돼서 그러는 거야?”

농담으로 넘기려는 오이카와에게 이와이즈미는 다시 한 번 얘기했다.

“좋아하니까 다치지 말란 거다, 바보야.”


부활동 전에,

“이거 먹어둬.”

오이카와는 붉은색 캡슐로 된 알약을 받으며 물었다.

“감기약?”

그리고 말이 끝나기 전에 갑자기 이와이즈미가 다가와 손을 뻗어 오이카와의 이마에 짚었다.

“너 지금 평소보다 체온 높은 거 같으니까, 미리 먹어둬. 자 여기 물.”

평소라면 일단 주먹이 날아와서 혼을 냈을 텐데 상냥한 말이 날아오다니.

그것만으로도 오이카와는 지금이 감기보다 훨씬 위험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안거야?”

“좋아하니까 그 정도는 보면 알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방과 후에 같이 패스트 푸드점에 갔을 때,

드르륵-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가 앉을 의자를 빼주며 말했다.

“앉아있어라 주문하고 올게.”

그러고는 뒤로 돌아 계산대로 향했다.


“이제는 이거에 어떻게 대꾸할 기력도 없어...”

오이카와가 어깨에 힘을 쭈욱 빼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양손에 얼굴을 묻는 것이었다.

“뭐야 갑자기 왜?”


당황한 하나마키에게 더 당황스러운 대답이 날아왔다.

“이와쨩 지금 내 생각하면서 주문하고 있어! 어떡하면 머스터드소스에서 오이카와씨가 생각나는 건데?! 으아아아아아아!!”

“....사이도 좋네. 커플.”

“그렇게 죽어라, 커플.”

“커플 아니라니까 그러네?!”

설득력 없는 말을 내놓고는 다시 부끄러움에 몸을 퍼덕이는 오이카와를 보며 두 명은 고개를 저었다.


몸을 부들거리던 오이카와는 곧 4명분의 햄버거 세트를 받아온 이와이즈미가 오자 바로 햄버거를 받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아마 부끄러운 얼굴을 숨기고 싶어서 일거라고 다들 짐작했다.

“나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순식간에 햄버거 하나를 먹어치운 오이카와는 퀭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확실히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는걸 본 마츠카와가 이와이즈미를 불렀다.

“이와이즈미.”

그리고 고백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순간부터 머릿속에 들었던 의문을 제기했다.

“너 평소에 저 녀석이 짜증난다고 했었지 않았나?”

고개를 숙이고 햄버거를 먹던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응 그랬는데. 좋아하게 되니까 그랬던 것도 전부 좋아져버려서, 괜찮아.”

그걸 들은 두 명의 얼굴은 구겨졌다.

“죽어라 커플...”

“응 꼭 폭발해버려라.”


곧 돌아온 오이카와에게 이와이즈미가 물었다.

“오이카와, 내일 저녁에 너 시간 되지?”

완전히 얼이 나가있던 오이카와가 얼굴을 흔들어 퍼뜩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어? 응 내일은 휴일이라서 아무 일 없어.”

“그럼 같이 영화 보러가자.”

또다시 덤덤하게 얘기하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오이카와가 황망하게 물었다.

“이와쨩 보통 그런 거 물어볼 때 막 부끄러워한다던가, 그러지 않아?”


쪼-옥.

다 마신 콜라를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내려놓은 이와이즈미가 놀라울 만큼 경쾌하게 답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데이트하자고 하는 게 뭐가 부끄러운데?”


“우와아아아”

옆에서 두 사람 분의 탄성이 들렸다.

“커플은 폭발해야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예외인걸로.”

“그래그래 저 정도면 괜찮을 거 같네, 멋지다 진짜.”

“그걸 너희들이 정하면 어떡해?!”

이상한 친구들의 문답에 화를 내던 오이카와에게 다시 한 번 이와이즈미가 물었다.

“그래서 싫냐?”

“아니 그렇지는 않은데.”

우물쭈물하는 대답을 이와이즈미는 간단하게 끝냈다.

“그럼, 내일 방과 후에 가자.”




4.

그렇게 오이카와는 그 다음날도 이와이즈미의 무차별적인 애정공격으로 너덜너덜해진 채로 영화관에 도착했다. 이와이즈미가 티켓을 받아올 동안 오이카와는 팝콘과 콜라를 사와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자 영화티켓.”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건넨 티켓을 받고는 의아했다. 그의 취향은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액션영화였었다. 아니면 괴수가 나온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좀비라던가.


그런데 방금 받은 표에 적힌 영화 장르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일상/다큐멘터리’

이건 오이카와의 취향이었다. 이와이즈미의 흥미와는 1억 광년이상 떨어진.

고개를 슬쩍 들어 표정을 확인했다. 하지만 평소대로의 얼굴이었다.

“슬슬 시작하겠다 들어가자.”


둘의 자리는 뒤에서 세 번째 줄 중앙이었다. I열 7번이 오이카와, 8번이 이와이즈미.

영화는 곧 시작했고 얼마 안가 이와이즈미는 흥미를 잃은 듯 멍하게 화면을 바라봤다.

그런 그와 반대로 오이카와는 평소 본인의 취향이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120분의 러닝타임이 지나고서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갔고 직원의 안내 소리와 동시에 밝게 불이 켜졌다.

생각보다 괜찮았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이와이즈미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을 때 오이카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너 어디 아프냐?”

걱정이 잔뜩 뭍은 목소리로 묻자 세댄 목소리로 대답이 날아왔다.

“이와쨩 부탁이니까 영화 볼 때는 영화만 생각하라구! 왜 영화관에서까지 오이카와씨를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

새빨개진 얼굴로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아직 나가지 않은 주변사람들이 힐끗 거렸지만 상관없었다.

“정말이지 왜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데?! 좀 적당히 할 수는 없는 거야? 이제는 힘들 정도라구!”

헐떡이며 귀를 양손으로 막고 얘기하는 그 모습을, 이와이즈미는 덤덤하게 내려다봤다.


“처음부터 얘기했지 않냐. 좋아한다고.”

그는 콜라와 팝콘을 한손에 들고서 허리를 굽혀 앉아있는 오이카와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휘청 이며 둘은 일어섰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좋아하는데 정도가 어디 있어. 세상에 초능력자 같은 건 없으니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만큼 생각하고 말하고 표현할거야.”

이제 영화관에는 둘만이 남아 서로 마주보고 서있었다.

“이제 됐지?”

“....응”

기어드는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잡고 있는 손을 풀지는 않았다.


둘은 그렇게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집까지는 도보 20분. 길가에 사람은 없었다.

오이카와가 여전히 얼굴을 붉게 하고 물었다.

“있지 요즘 나한테 왜 그렇게까지 맞춰 준거야?”

여전히 손을 단단히 얽어매고서 물었다. 이와이즈미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별로 맞춰준 건 아니야.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싶었어.”


마지막 결정타였다.

그 말까지 들었는데 거절 할 수 없었다.

맞잡은 손이 뜨거웠다.


“이와쨩 오늘 우리 집 비는데 말이지”

오른손이 더 뜨겁게 느껴졌다.

“자고 갈래?”




5.

“그래서 이제 사귄다는 거냐?”

“일주일 동안 누구 죽일 듯이 실컷 염장 지르더니만 이제 야냐."

한심하다는 시선이 온몸에 꽂혔지만 오이카와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귀여운 이와쨩이 오이카와씨를 좋아한다는건 전부터 알고 있었다구. 그냥 그렇게까지 좋아하는지 몰랐을 뿐이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걸 좋아하고 싶다니 완전 귀엽지 않아?”

“자랑이다 아주.”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갑자기 오이카와가 벌떡 일어섰다.

같이 있던 두 사람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

그리고 입에서 나온 대답은 뚱딴지같은 소리였다.


“지금 이와쨩이 오이카와씨를 생각하면서 우유빵이랑 주스를 사고 있어!”

“뭐?”

어이없는 얼굴을 한 친구들을 뒤로한 체 달려 나갔다.

“그럼 먼저 간다!”

그렇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둘이서 여러 번 했던 이야기를 다시 입에 올렸다.

“아무리 봐도 더 좋아하는 건 오이카와인데 말이지.”

“저 정도면 거의 레이더, 아니 초능력 수준 아니야?”

“맞아 정말 유별나다니까.”


오이카와는 빠르게 매점으로 뛰어갔다.

머릿속으로 쉴 새 없이 사랑의 말이 흘러들어왔다. 듣는 것만으로도 뇌가 흐물흐물해지는 말들.

“정말이지 적당히 좋아해주면 좋을 텐데!”


매점에 도착한 오이카와는 한 번에 이와이즈미를 찾고는 말했다.

“지금 또 이와쨩 오이카와씨 생각하고 있었지?”

“좋아하니까, 그런다니까 그러네.”




그렇게 둘은 친구관계를 청산하고 연인이 되었다는 이야기.


세상에 독심술사는 존재합니다만.

연애는 별로 다를 게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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