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잉, 덜컹. 엔진이 정상 작동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파츠에 위치한 렌즈에 빛이 입사했다. 올라간 눈꺼풀 밑, 렌즈의 조리개크기를 조절하여 빛을 적당량 입사시켜 전방에 움직이는 인영에 초점을 맞췄다.

 인간의 표현을 빌리자면 ‘처음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서있던 건 흰 가운을 입고 안경을 쓴 한 남자였다. 전체 안면근육 400개 중 입 근처 60여개가 당겨진, 입력된 데이터가 얘기하는 ‘웃는 얼굴’을 한 그가 다리를 굽혀 내 눈높이에 맞추어 나를 바라봤다.

 “좋은 아침이야 이와쨩. 처음 일어난 기분은 어때?”


 ‘아침, 좋은, 이와쨩, 기분, 처음, 일어나’

귀에 들어온 소리는 각각의 음절들로 분해되고 다시 조립되어 나에게 데이터가 되었다.


그게 내가 처음 들은 소리였고,

그게 나와 박사의 첫 만남이었다.



박사가 사랑한 안드로이드.

1편. 안드로이드의 봄



 “이렇게 일찍 일어날 줄은 몰랐는데, 일단은 기본입력이 정상적으로 됐는지부터 확인을...”

 그는 작동한 나를 보고서 횡설수설하다 15평정도 되는 방의 끝에 설치되어있는 컴퓨터로 달려가 화면을 훑었다. 화면에는 내 뒷목에 연결된 전선들이 컴퓨터로 보내는 데이터들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가 확인 하는 동안 나의 머리에서도 작동하고 있는 회로들이 입력을 자가 점검하기 시작했다. 점검도중 노란 불이 반짝였다. ‘인사를 받으면 답을 해야 한다.’ 기본입력 제 3조 2항이 말하고 있었다.


방금 들은 ‘좋은 아침’ 에 대한 입력 값은,

 “좋은 아침입니다, 박사님.”

나의 구강 내에 설치된 음성 변환기의 대답에 멈칫한 그는 안경을 벗으며 뒤로 돌아 말했다.

 “박사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오이카와 라고 불러줘. 아, 그리고 말도 존댓말 말고 반말로 바꿔서.”

 “새로운 입력인가요?”

의문일 때는 고개를 우로 13.7도 틀어서. 말의 어미는 평서문보다 2도 정도 높인다. 입력된 것에 정확히 맞춘 동작을 하며 질문했다.

 “입력이 아니라 가르쳐주는 거야.”


 ‘가르쳐주는 것.’ 그게 박사가, 이제는 ‘오이카와’가 나에게 한 첫 번째 입력이었다.



2**

 첫 가르침을 시작으로 그는 안드로이드인 내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우선은 내 이름.

 “처음 작동했을 때 나를 이와쨩 이라고 호칭했는데, 그건 내 이름?”

반말이 된 물음에 그는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응! 너는 이와쨩이야.”

그 얼굴이 기뻐보여서 나는 ‘이와쨩’ 이라는 것을 특수입력대상에 저장했다. 입력들 중에 늘 상위권에 놓아두며 지켜야 할 것들 사이에 그것은 재입력, 그리고 삭제금지 처리되었다.

 “이와쨩은 튀김두부를 제일 좋아해. 물론 음식 중에서는 말이야. 그리고 좋아하는 영화는 고지라 관련 영화들. 괴수가 나오는 거면 거의 좋아해. 싫어하는 건 내가 지나치게 달라붙는 거랑... 아니 방금 들은 건 삭제해. 싫어하는 건 지나치게 단 음식들이랑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 그리고 렌즈가 아니라 눈, 음성장치가 아니라 입이라고 하는 거야.”

나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새로운 입력들을 재빨리 처리했다. ‘좋아한다.’는 건 그리 강한 명령어는 아니다. 다른 대체품이 들어오면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한테 음... 뭐라고 해야 할까. 격식을 차려서 얘기하면 안 돼.”

‘안 돼.’ 작동한지 3;50;21시간 동안 내게 한 입력 중 가장 강한 행동강령이었다. 그것 또한 특수입력대상에 집어넣었다.

 “연인이니까. 알겠지?”

 “연인?”


“연인(戀人). 서로 연애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 또는 몹시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

데이터 속 저장된 것을 그대로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얘기하자 그가 또다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와 반대로 이 명제를 이해 할 수 없었다.

 “너는 나를 사랑해?”

 “사랑해.”

 “그럼 나는?”

 “너는 나를 사랑해.”

 “그런 거야?”

 “응.”


나 좋아한다 박사. / 박사 좋아한다 이와쨩.


 내 머릿속 데이터 속에 입력된 인간의 평범한 대화법과는 다른 것 이었지만 박사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입력된 언제나 지켜야 하는 가장 큰 법칙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머릿속에 입력되어있던 데이터를 수정했다.


나는 안드로이드, 이와쨩, 그리고 오이카와의 연인.


 그렇게 나는 막 깨어난 안드로이드에서 단 5시간의 가르침 후에 오이카와 박사의 연인이 되었다.



3***

 그의 가르침-나는 입력이라고 생각하지만-는 언제나 동시다발적인 동시에 무차별적이었다. 최소한 한 달 간 그와 지낸 나의 안드로이드적 감상은 그랬다. 내가가진 물체에 대한 호오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도 금세 다른 곳으로 화제가 돌아가기 일쑤였다. 마치 생각 난대로 마구잡이로 쏟아내듯이.


 “그리고 여긴 부엌, 요리를 하는 곳이야. 알고 있지?”

 “응. 인간이 살기위해 필요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등 식사에 관련된 일을 하는 곳. 제대로 입력되어 있어.”

 “그럴 때는 ‘입력되어 있어’ 가 아니라 ‘알고 있어’ 라고 하는 거야.”

‘알고 있다.’ 그 말이 내 청각 시스템을 통과하자마자 머릿속 사고를 담당하는 사고회로가 급하게 회전하여 의문점을 찾아냈다.

 “하지만 나는 안드로이든데.”

그렇다. 나는 안드로이드. 알고 있다는 말은 맞지 않았다.

 “‘알고 있다’ 는 건 인간이 쓰는 말이야. 그건 박사가 써야할 말.”

 내 대답에 그는 잠시 오른손을 머리에 대고는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지러운 걸 생각하는 듯 시선은 오른쪽 끝을 한번, 그리고 왼쪽 끝을 한번 가리켰다. 그리고 곧 그 시선은 나를 향했다.

 “안드로이드긴 하지만 이와쨩은 나한테 여러 가지 배우고 있잖아. 그치?”

그건 맞는 말 이였다. 불과 한 달 만에 나는 그에게 1258개의 가르침을 받았으니까.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차이는 결국 주변의 것들을, 감정을, 좋고 싫고를 자의로 느끼느냐 타의로 느끼느냐잖아. 하지만 인간이 말하는 그 ‘자의’도 결국 여러 가지 학습된 결과물일 뿐이야. 간단히 말하자면 어릴 때부터 쌓인 타의가 자의가 된다는 거지. 그렇다면 이와쨩도 나에게 이렇게 계속 배운다면 결국에는 ‘인간’이 되는 거야. 안 그래?”

응? 그치? 긍정을 바라는 어미. 어투. 나는 곧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궤변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입력해준 것들 중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논리였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는 없는 것 이였지만 그가 말한 인간이 ‘자의가 되어버린 타의’ 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나도 곧 인간이 되리라. 그건 동의하였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바람대로 나는 계속해서 여러 가지를 배워나갔다. 인간이라면 유치원 과정에서 습득해야 할 것을 나는 일주일 간 습득하였고 초등학교 과정을 이주 만에, 그리고 중학교 과정을 이주하고도 삼일 만에 학습해나갔다.

 그에 맞춰 나의 행동 또한 차례차례 바뀌었다. 행동, 말투, 습관 모든 부분에서. 그렇게 점차 인간이 되던 중 그가 출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오이카와, 일어나 아침이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꾸부정하게 허리를 굽히고 이불에 얼굴을 부비는 그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출근해야 한다며. 빨리 일어나.”

아침 6시에 그를 깨우고, 그 전에 음식을 차려 놓는다. 그건 2주전 출근에 대해 얘기하면서

동시에 정한 규칙이었다. 그를 끌고 나온 식탁에는 냉동식품들이 한가득 이였다. 오이카와는 그걸 보고는 고개를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 기울이며 스트레칭을 하더니 평소보다 높은 하이 톤으로 말했다.

 “내일은 공휴일 이니까, 같이 장보러 가자. 그래야 내가 없어도 밥을 해먹지.”

 “나 기계인데, 음식 먹어도 되는 거야?”

내 한마디에 잠시 멈춘 그는 곧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가볍게 털며 말을 이었다.

 “괜찮아 그래서 음식 소화 기능도 달았으니까. 뭐, 동력원은 전기지만, 일단 음식을 씹어서 맛을 느낄 수는 있어. 인간이랑 똑같지? 그리고 이제 이와쨩, 나한테 실내에서 배울만한 건 다 배웠으니까. 실외도 한번 나가보자.”

기본적인 행동, 말투, 습관이 되었으니 이제는 실외로도 나가 가르칠 모양이었다. 새로운 일정을 저장하고서 가슴 앞으로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그리고 곧 그도 같은 동작을 하고 우리는 동시에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4****

 다음날 외출 준비는 간단했다. 나는 안드로이드지만 외장에 대한 몇 번의 보수 끝에, 이제 외양은 성인남성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그가 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위에 푸른색 후드티를 입자 TV로 간간히 보던 사람들과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는 평소 입던 하의와 상의 위에 긴 감색 코트를 하나 걸친 체 방에서 나왔다.

 “위에 그거 하나로 괜찮겠어?”

왼쪽 눈썹을 찌푸리며 묻는 그에게 대답했다.

 “나는 온도 같은 거 느끼지 않으니까 괜찮아.”

그 대답을 들은 그는 곧 바람 빠지는 한숨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갔다 와서 그 부분도 고쳐야겠네.”

하지만 나의 시선을 발견하자 곧 화색을 바꾸며 화제를 돌렸다.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마트로 출발 해볼까?”


 20분간 걸어 도착한 마트는 한산했다. 현재시간이 데이터가 말하는 아침과 점심시간의 사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오이카와가 얘기하는 ‘카트’라는 이동식 짐바구니를 끌고는 음식재료들을 사기 시작했다.

 “요리는 처음 하는 거니까 오늘은 이와쨩이 좋아하는 튀김두부를 할 거야. 그런데 재료가 뭐였더라...”

핸드폰을 뒤적이던 그에게 나는 이미 검색된 자료를 나열했다.

 “간장, 물, 맛술, 생강, 식초, 설탕, 쪽파, 잔멸치.”

그리고 끝에 그 전날 입력된 말투를 덧붙였다.

 “어제 찾아 봤잖아. 까먹지 마, 오이카와.”

그는 조금 놀란 듯 하더니 곧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카트를 끌고 신선식품 진열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원래 그런 걸 잘했지.”

‘원래’는 무슨 뜻 이였을까? 그의 콧소리와 함께 의문은 데이터 속으로 파묻혔다.


 처음 보는 ‘장을 보는 일’은 간단했다. 신선식품의 경우 모여 있는 동종의 물건들 사이에서 신선도를 따져 가장 좋은 것을 카트에 담는다. 공산품의 경우에는 포장의 상태를 확인하고 제조일자와 유통기한만 확인하면 되는 작업이었다. 순식간에 ‘장보기’는 데이터에 입력되었다. 하지만 신기한 부분은 그 다음이었다. 처음으로 인간과 인간의 대화를 본 것이다.

 “총 2687엔입니다. 마트 회원카드 있으신가요?”

빙긋이 웃으며 가격을 이르는 케셔는 친절한 서비스직의 표본이었다. 그 모습 또한 저장 폴더 13번,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 항목에 넣어두었다. 그녀는 결제하던 오이카와의 옆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가볍게 물었다.

 “친구 분이랑 같이 오셨네요. 많이 친하신가 봐요.”

 “아니요 애인이에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이와쨩은 오이카와의 연인. 가장 기본적인 대전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셔는 당황한 듯 콧잔등을 가볍게 찌푸렸다.

 “저번에 오셨을 때는 친구 분이라고 하셨는데. 이제 사귀시나 봐요?”

‘저번.’ 하지만 내가 깨어난 지는 732시간 54분 14초경과. 데이터를 돌려봐도 그 동안 외부로 나가본 적은 없었다. 케셔에게 고정되어있던 시선을 돌려 오이카와에게 맞췄다.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었다. 위치상 집에서는 도보 7분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아이들이 주 이용자, 라고 회로가 신호를 보내왔다. 역시나 그 근처에 도착하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공 튀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이카와.”

 “응?”

 “저게 뭐야?”

 “애들이 하고 있는 공놀이 말이야?”

어딘가 삐끗한 목소리였다. 이런 목소리의 그는 처음이어서 자연스럽게 눈의 초점이 그의 입에 맞춰졌다.

 “농구, 축구, 야구,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 골프, 핸드볼, 볼링. 데이터 속 구기 종목 중 어느 것에도 맞지 않는데.”

공원의 가운데서는 한 아이가 공을 머리위로 올렸다가 다른 아이가 그걸 크게 휘두른 팔로 쳐내는 동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가 그렇게 날아온 공을 앞으로 쭉 뻗은 팔을 이용해 받아냈다. 데이터와는 무엇 하나 맞지 않은 동작들이었다.

 “배구야.”

 “배구?”

 “응. 저기 방금 아이가 공을 올린 걸 토스, 그 공을 친 걸 스파이크,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공을 받은걸 리시브라고 해.”

세세한 설명이었다. 그는 ‘배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했었어. 옛날에.”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은 어딘가 멀리 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무엇을 보는가 싶어 그 시선 끝을 따라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눈의 성능은 변함이 없는데.

 “하지만 지금은 필요 없는 일이야.”

다시 나를 돌아보며 그가 말했다. 멀리에 있던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진 것 같았다.

 “입력할 필요, 그러니까 기억할 필요 없는 거야?”

 “응. 그러니까 지워버려.”

단호한 마지막 말과 함께 [10時12分 ~ 10時 17分]까지의 기억은 자동 삭제되기 시작했다. 곧 회로가 삭제완료 등을 깜빡였고 우리는 손을 잡은 채 공원을 등지고 집으로 향했다. 빈 부분의 데이터만큼 우리는 점심에 할 요리의 순서에 대해 이야기 했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같이 TV에서 방영하는 일일극 드라마를 시청했다. 드라마의 줄거리는 중구난방이었지만 오늘의 내용은 여자주인공의 부모는 사실 친부모가 아니었고 남자 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사실은 배다른 형제라는 이야기였다. 드라마의 막바지에 여주인공은 친부모에게 어째서 자신을 낳았느냐며 화를 냈다. 극의 절정이었고 그 대사를 마지막으로 차회예고가 흘러나왔다. 망막에 맺힌 장면을 곱씹으며 나는 가지고 있던 의문사항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던 것을 얘기했다.

 “있지 오이카와, 나는 왜 만든 거야?”

그는 나의 허리에 두르고 있던 팔을 목으로 옮기며 말했다.

 “내가 너를 애매하게 사랑했기 때문이지.”

 “애매?”

 “응. 하지만 지금은 정말 좋아하니까 괜찮아.”

괜찮아. 좋아하니까.

드라마가 완전히 끝나고 9시 뉴스가 흘러나올 때까지 그는 그 두 마디만을 계속 내 귓가에 속삭였다.



5*****

 내가 깨어나고 달력의 큰 숫자가 3번 바뀐 날이었다. 그리고 그가 출근한지는 두 달이 지났을 때, 오이카와는 처음으로 집에 늦게 들어왔다. 퇴근시간 6시, 그리고 이동시간 40분을 고려해 늘 그 +-10분쯤에 돌아오던 그가 저녁 11시를 훌쩍 넘겨 들어온 것이다. 얼굴이 벌겋게 되고 걸음걸이가 불안정하게 비틀거리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나에게 달려와 꼭 껴안았다. 평소보다 상당히 강한 힘이었다.

 “오이카와?”

 “응, 이와쨩.”

이와쨩, 이와쨩, 이와쨩.... 그는 탁음이 뭉개진 발음으로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렀다.

 “여기 있지?”

위치에 대한 질문. 답은 간단하다. 그는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당연하지, 나는 오이카와의 연인인걸. 당연히 여기에 있어.”

어딘가 잘못된 대답이었을까? 그는 그 대답을 듣고는 곧 훌쩍이며 더 강한 힘으로 나를 껴안는 것이었다.

 “슬픈 거야?”

회로가 만들어낸 의문을 물었다.

 “아니. 너무 기뻐서 그런 거야. 인간은 너무 기뻐도 울거든.”

눈물의 생성은 고조된 감정 상태나 추위 또는 바람에 노출되었을 때 자연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지금 어떤 감정에 고취되어 눈물이 흐르는 것인 거 같았다. 그 이유는 ‘아직은’ 안드로이드인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지금 상황에 대한 최선의 대처를 해야 한다. 눈 주위에 결막염이나 알레르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울지 마.”

손을 뻗어 조심스레 그의 눈가의 물기를 닦아냈다. 그리고 조금은 진정이 된 듯 한 그에게 다가가 키스를 했다. 가장 빠른 위로 법은 신체의 접촉. 입술을 떼고 쳐다본 그는 무언가 놀란 얼굴이었다. 그리고 곧 웃음을 터트렸다.

 “이와쨩 이제 완전히 인간이구나.”

 그리고 또다시 그의 눈에서 다량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 어깨는 천천히 그의 눈물에 젖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그의 훌쩍임을 들으며 사고했다. 나는 그의 가르침에 젖어 점차 인간이 되는 것인가. 그가 기뻐하는 걸 보면 빨리 그렇게 되면 좋을 텐데.

 그날 하루는 그렇게 둘이 소파에서 껴안은 체 잠에 들었다. 그는 취침을, 나는 절전을.


 다음날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그는 출근할 때 들고 다니던 서류가방에서 꺼낸 하얀 카드를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카드는 앞부분에 프릴이 달린 실크 재질의 화사한 것 이였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아침을 만들면서 흘긋거리는 중이였다.

 “밥 다됐어 오이카와. 어서 씻고 와.”

 “알겠어, 오늘 아침도 맛있겠네~”

금세 표정을 바꾼 그는 평소처럼 헬렐레 거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그가 잠시 자리를 옮긴 사이 나는 부엌에서 눈의 배율을 x3.5로 높여 거실 탁자에 놓인 카드의 열린 부분을 들여다봤다. 그곳에는 나의 이름과 모르는 이의 이름이 나란히 프린트 되어있었다. ‘....이 사랑의 이름으로 지켜나갈 수 있게 앞날을 축복....’ 그 이상은 원래 카드가 담겨져 있던 하얀 봉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봉투에는 수신인과 발신인이 쓰여 있지 않았고, 우표도 붙여져 있지 않은 체였다. 말인 즉 슨, 그는 어디선가 저것을 전달받았다는 뜻이다. 처음 보는 것인걸 보면 어제일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 다 씻었으니까 이제 맛있는 아침밥을 먹어볼까?”

 “아직 머리에서 물 흐르잖아 멍청아, 똑바로 닦기부터 해.”

 곧 욕실에서 나온 그와 나 사이에서 평소의 대화가 오고갔다. 몇 번의 잔소리 끝에 머리의 물기를 한 번 더 털어낸 그가 자리에 앉자 늦은 아침식사가 시작됐다. 그러던 중 그가 뜻밖의 외출소식을 전했다.

 “나 이번 주말은 어디 좀 갔다 와야 할 거 같아.”

 “어제처럼 늦게 들어오는 거야?”

 “아니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한 6시쯤이면 들어오려나?”

그 하얀 카드와 관련된 외출인 것일까.

 “같이 저녁 먹을 수 있겠다.”

 “다행이네.”

우리는 마주보고 웃었다. 아무렴 괜찮아 보이니까 상관없겠지. 아침 다음은 같이 장이나 보러가자고 할까.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근처 산책로에서 같이 산책을 하고,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평소처럼 같이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으면서 돌아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상관없는 일들은 빠르게 나의 사고 속에서 지워지고 다음 일정들이 그 자리를 메꾸었다.



6*******

 “쨔잔- 이와쨩 들어봐 빅뉴스야!”

어느 때와 같이 6시 40분에 들어온 그가 요리하고 있는 내 허리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팔 치워. 지금 불 쓰고 있어.”

내 샐쭉한 대답에도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웃으며 빅뉴스라는 것에 대해 떠들어댔다. 자질구레한 것들을 얘기하다 마지막에 그는 정말 빅뉴스를 터트렸다.

 “나 퇴사했어.”

퇴사. 회사를 그만둠. 회사는 정해진 노동을 통해 급여를 지급하는 곳. 그리고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말은....

 “생활비는 어쩌자고 그랬냐!”

 “그 부분에서 화를 내다니 이제 완전히 인간이구나, 이와쨩! 오이카와씨는 정말 기뻐!”

이상한 부분에서 그는 기뻐하며 줄줄이 말을 이었다. 두 달 전, 출근하기 전까지는 무급휴가와 유급휴가를 모두 털어 넣었었다는 것. 퇴직금이 어마어마해서 새로 관리할 통장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것. 앞으로의 생활비는 퇴직금과 특허 비를 합하면 두 사람이 살기에는 넉넉하다는 것. 빙글빙글 내 손을 잡고 설명하던 모든 부가적인 것이 끝나고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이제 계속 같이 있는 거야. 기쁘지?”

 “응 기뻐.”

얼굴을 마주보고 웃으며 나오는 대답. 우리는 그날 그렇게 저녁을 먹는 것도 잊고서 거실에서 몇 번이나 빙글빙글 돌며 춤을 췄다. 물론 내 데이터에 있는, 이름이 있는 춤은 아니었다. 그는 그걸 ‘퇴사에 기뻐하는 직장인의 댄스’라고 명명했지만 나로서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좀 더 중요한 것은 그와 이제는 계속 같이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기뻤다.


 그리고 3일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그 주말, 그는 저번에 받아온 하얀 실크카드를 손에 들고서 어딘가로 외출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차려입은 체였다. 저번과 같이 그를 우울하게 만들 줄 알았는데 돌아온 그의 얼굴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나에게 가르친 여러 가지 인간의 표정 중에 해당하는 것을 꼽으라면 우울한 얼굴과 떨쳐낸 얼굴, 그 두 가지였다. 무엇을 떨쳐냈는지, 무엇에 우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어딘가 다녀온 그날 하루 종일 나를 껴안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느 방식으로든 붙어 있고 싶은 것처럼. 그렇게 오후시간이 지나고 새벽에 가까워질 시간, 그가 불쑥 나에게 물었다.

 "이와쨩은 영혼이 뭐라고 생각해?”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나는 검색을 시작했고 다양한 결과들이 쏟아졌다. 영혼.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 하지만 곧 나는 그에게 배운 것과 비슷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영혼은 생명체가 가진 거니까, 저번에 네가 얘기했던 것처럼 이게 좋다 이게 싫다 느끼는 ‘자의’이지 않을까.”

 “이와쨩은 확실히 느끼고 있어?”

 “응, 나는 네가 좋아. 오이카와가 좋아. 확실히 느끼고 있어. 자의로.”

 “이제 정말 진짜 이와쨩이구나.”

 “틀려.”

그가 한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정정했다.

 “나는 원래 진짜 이와쨩이였어. 네가 처음 깨어났을 때 그랬잖아?”

 “맞아. 응, 그랬지.”

여전히 나를 껴안은 체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정말 기뻐.”

 “기뻐?”

 “응. 죽을 만큼 기뻐.”

그 말과 함께 그는 연거푸 내게 키스했다. 맞다은 피부로 느껴지는 그의 심박수는 삽시간에 상승했다. 정말 기쁘구나. 그렇다면 나도 기뻤다.

 “이와쨩, 이제 토오루라고 불러줘.”

오이카와 토오루. 토오루는 그의 이름이었다. 같이 본 드라마에서 이름을 부르는 것을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래. 알겠어 토오루.”

나는 언제나 그를 사랑했으니 문제될 건 없었다. 이제 정말 같은 마음이 된 것 같았다.



7********

 이제 달력의 날짜는 6월의 끝자락 이었다. 언제나와 같이 우리는 거실에 앉아 여러 가지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하고 있는 게임은 젠가라는 것이었다. 젠가는 3개씩 18층으로 이루어진 나무 블록 탑의 맨 위층 블록을 뺀 나머지 층의 블록을 하나씩 빼서 다시 맨 위층에 쌓아 올리는 보드게임인데 현재 그가 3연승 중이였다.

 “이와쨩 성질이 급해서 그렇다니까. 이렇게 급한데 평소에 요리는 어떻게 하는 걸까요?”

 “시끄러 토오루, 처음이라 그래. 한판 더 해보자고.”

투닥거리던 중 현관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토오루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을 열고 우편배달부로부터 무언가를 받아왔다. 무엇이냐 묻자 그는 주소갱신을 위해 동사무소에서 보내온 것이라고 했다. 그 우편물 속 첫 번째 장에는 토오루의 인적사항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뒷장에는 새로이 적어서 내야할 것이 있었다.

 “안 해?”

 “응. 이사 갈 거거든.”

우편물들을 젠가와 같이 저편으로 치워버리며 말했다.

 “여기서는 상당히 떨어진 곳인데 단독주택인데다 근처에 사람도 별로 안 살아서 편안한 곳이야. 거기 도착하면 새로 차를 살 생각이니까, 생필품 같은 것도 걱정 없고. 가격은 내 퇴직금을 거의 털어 넣어야 하긴 하지만. 생활비는 특허비로도 충분하니까 문제없어.”

그는 빠르게 말을 정리하고서 크게 숨을 들이쉬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같이 갈 거지 이와쨩?”

나는 안드로이드. 애초에 거부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나에게 있는 건 토오루 뿐이니까.

 “알겠어. 그럼 그 전에 준비부터 해야겠네. 이삿짐센터를 부를 거야?”

 “응. 무거운 기계류가 꽤 있으니까 대형트럭을 부르려고.”

내 대답을 들은 그는 기쁜 듯 나에게 들러붙어왔다.

 “이제 더워 토오루. 적당히 들러붙으라고.”

 “에이 싫은걸 이와쨩은 나 좋아하니까 문제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투덜거리는 목소리의 내 대답을 듣자마자 그는 곧 나에게 달려들었다.



8********

 이삿짐을 싸면서 창밖을 보자 이제는 완전히 늦봄 이였다. 작은 방에 있는 기계류들은 그가 정리하기로 했으므로 나는 부엌의 식기들을 싸는 중이었다. 큰 대접 몇 개와 작은 접시들 몇 가지, 그리고 수저들을 챙기자 자질구레한 몇 가지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푸른색 플라스틱 박스에 구긴 신문지를 몇 장 깔고 마찬가지로 신문지로 감싼 식기들을 담자 대충 부엌은 끝난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테이프로 입구를 봉한 박스를 현관근처에 쌓고서 문을 두드려 토오루를 불렀다.

 “토오루, 부엌정리 다했어. 이제 위층만 정리하면 되는 거지?”

 “응! 미안한데 먼저 정리하고 있어줄래?”

 “알겠어. 그쪽은 끝나가냐?”

 “몇 개만 더 옮기면 돼. 한 10분쯤이면 될 거 같아.”


 그의 대답을 듣고서 나는 침실 옆에 있는 낡은 계단을 타고서 다락으로 올라갔다. 아침햇살이 가득 들어온 다락은 하얀 먼지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내가 안드로이드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었으면 분명 먼지 때문에 꽤 고생했을 테니까. 오이카와가 올라올 것을 생각해 우선은 방 끝에 달린 창문을 벌컥 열었다. 따뜻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오며 순식간에 먼지들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서 다락을 둘러보자 생각보다 꽤 물건들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 적어도 몇 달은 손을 대지 않은 듯 먼지가 겹겹이 쌓인 채였다.

 “자질구레한 것들은 필요 없을 거 같고... 책들은 챙겨야 하나?”

책과 박스들이 늘여져 있는 곳에 주저앉아 겉의 먼지를 대충 손으로 걷어내자 책의 이름이 보였다. 졸업앨범. 그리고 그 밑은 교과서들이였다. 3-c 오이카와 토오루. 평소 보던 그의 글씨체로 적힌 것을 보면 아마 그의 고등학교 때 물품들인 것 같았다. 그것들을 다시 쌓아 놓고서 오른쪽에 있던 박스를 열자 삼색으로 되어있는 공이 나왔다. 데이터에 있지 않은 처음 보는 것 이였다. 그곳에서는 내가 모르는 것들이 줄줄이 나왔다. 모르는 형태의 공, 모르는 디자인의 유니폼, 모르는 사진.

 “이와쨩 다 정리했어?”

 “나머지는 다 된 거 같아. 그런데 이건 뭐야?”

한손으로 공을 들고서 그에게 물었다. 그의 시선이 열려 있는 상자에 머무르더니 곧 나를 보며 말했다.

 “그건 필요 없는 거야.”

 “상자에 담겨 있었는데 중요한 거 아니야?”

 “예전에는 그랬는데. 이제는 이와쨩이 있으니까 괜찮아.”

그가 다가와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그리고 내 손에서 공을 받아 들고는 오른손으로 박스를 향해 던졌다. 정확한 포물선을 그리며 공은 그 안으로 안착했다. 무척이나 익숙해 보이는 동작이었다. 예전에 했던 운동일까?

 “여기는 이 상태로 나두면 돼. 이제 슬슬 이삿짐 트럭도 올 테니까 내려가자.”

 그는 방금 공을 던져 넣은 그 오른손으로 내 손을 잡고서 다락을 나섰다. 뒤를 돌아보자 햇빛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비추고 있었다. 그 박스들만이 어두운 채, 문이 닫혔다.



9*********

 곧 도착한 이삿짐센터의 직원들은 우리가 미리 내놓은 짐들을 트럭에 옮겨 싣기 시작했다.

 “무슨 기계류가 이리 많습니까?”

 “제 직업이 그래서요. 그래도 다른 짐들은 적어요.”

혀를 차는 직원에게 토오루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 말대로 무거운 몇 개의 짐들을 전부 옮기자 남은 건 플라스틱 박스 3개. 그리고 끝이 났다. 거의 5개월을 같이 살았지만 짐은 겨우 50분 만에 전부 옮겨져 버린 것 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걸 보면 나는 정말 토오루의 말처럼 인간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가벼운 흙먼지를 뒤로 하고 짐을 실은 트럭은 곧 새집을 향해 출발했다. 우리는 조금 있다 이전에 주문했던 렌탈카를 타고 그곳으로 떠날 것이다.


 6월의 바람은 따뜻했다. 집 앞에 심어져있던 벚나무는 이미 꽃이 떨어지고 푸른색 잎사귀들이 가득했다. 내리쬐는 햇볕도 이미 그전의 것이 아니었다. 따뜻함을 느끼게 된 손으로 닿아보자 곧 뜨거운 직사광선이 피부를 달궜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말한 여름이 오는 것일까.

 “이와쨩.”

그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평소처럼 웃는 토오루가 서있었다.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에 입력 값은,

 “나도 사랑해 토오루.”

웃고 있던 우리 앞에 곧 주문한 검은색 렌탈카가 도착했다. 그는 차를 가져온 회사직원과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곧 차키를 손에 쥐고서 나에게 다가왔다.

 “짐은 다 보냈으니까 이제 가면 돼.”

 “생각보다 간단하네.”

 “그러게.”

늦봄의 바람이 우리 사이에 살랑였다.



10**********

 남은 것들을 트렁크에 실어 넣자 정말로 모든 게 끝났다. 아니 아직 새 집에서 짐을 풀어야 하니 다는 아니겠지만. 그가 연 조수석문을 잡고서 나는 차에 착석했다.

 “확실히 안전벨트까지 메는 거, 잊지 말라고?”

 “그런 걸 왜 잊어. 너도 얼른 앉아. 이삿짐트럭이 먼저 도착 하겠다.”

 “잠시만. 나 한 가지 잊어버렸어.”

 “방금 집 나오면서는 다 했다더니만.”

투덜거리는 내 말을 뒤로하고 그는 잠시 앉아있으라며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말 잠시 뒤 그는 빈손으로 집에서 나왔다. 옷에서는 약한 기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자 이제 출발할까 이와쨩?”

 “어서가자고 토오루.”

시동이 걸리는 소리와 함께 곧 그가 부드럽게 엑셀을 밟았다. 차는 천천히 집 앞을 빠져나와 마을 초입으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제법 길게 살았다고 들었는데 그는 별로 아쉽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새로운 집으로 가는 게 즐거운 것일까? 아니면 이곳을 떠나는 게 즐거운 것일까. 아니면 양쪽 다 일까. 그렇다면 나도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 연인이니까, 사랑하니까.

 “이삿짐 다 풀면 네가 좋아하는 거라도 해볼까?”

 “완전 중의적인 표현이네 이와쨩?”

 “음식 얘기하는 거야 멍청아.”

평화로운 평소의 대화가 차안을 채우고 우리는 새집으로 떠났다.


봄이 끝나고, 차창 뒤로 회색빛의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까치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