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해”

 “나도 사랑해 토오루”

사랑한다고 얘기하면 웃으며 대답해주는 네가 있다.

천국이 있다면, 여기라고 생각했다.



02. 박사의 여름



 막 봄이 끝난 날의 햇볕이 따뜻했다. 정오가 되기 전의 볕은 창문을 지나 마룻바닥을 따뜻하게 달구고 있었다. 넘어오는 빛에 가늘어진 눈으로 너머의 정원을 보자 날이 좋아서 그런지 평소보다 싱그러워 보였다.

 “이와쨩 일어나봐. 점심시간이 다 돼간다고?”

 “벌써?”

바스락 거리는 이불과 함께 일어난 이와쨩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시계로 돌렸다. 시침이 11에 가까워진걸 보고는 어김없이 잔소리가 날아왔다.

 “바보 토오루, 아침 굶으면 어떡해?”

다정한 그와 함께 오늘도 하루가 시작됐다.




2**

 도쿄에서 차로 2시간 넘게 달려 도착하는 니가타 시(市)는 겨울의 설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렇다고 이곳의 여름이 별로라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로 가볍게 달리면 나오는 해안가 절벽은 저 멀리 푸른 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어 멋진 곳이니까. 자연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가지인 반다이 지역도 관광객에게는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우리는 그 반대편 나가노 강을 끼고 가면 나오는 한적한 외곽 지역에서도 더 들어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넓은 정원이 딸린 2층 집과 그것을 둘러싼 숲이 인상 깊은 그 곳은, 더욱이 밖으로 이어진 길은 하나뿐 이여서 세상에 정말 우리 둘만 남겨진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두 사람이 살기에는 커다란 집의 내부는 이사하기 전에 미리 리모델링을 해서 깔끔한 모양새다. 처음에는 공사 후에 나는 특유의 접착제 냄새와 페인트 냄새 때문에 하루 종일 이와쨩과 둘이 열심히 쓸고 닦아야 했지만. 집에 원래 있어야 할 부엌과 거실사이의 벽은 일부러 없앤 것 이었다. 그렇게 생긴 횡 하니 넓은 거실벽면은 곧 내가 찍은 이와쨩의 사진들로 잔뜩 채워졌다.

 그 앞에는 기다란 소파가 있고 그 너머 반대편 벽에는 TV가 걸려있다. 2층에는 킹사이즈 침대가 놓여있는 침실하나와 책들로 가득 채운 서재, 그리고 더 이상 쓰지 않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쌓아놓은 창고 하나가 다였다.


 그린 것처럼 완벽하게 완성된 집에서의 우리의 일상도 완벽했다. 알람 없이 느긋하게 일어나 이와쨩과 같이 아침을 맞고 냉장고의 식재료들로 간단하게 요리한 아침을 먹는다. 후에 커피를 마시고 식기들을 간단하게 정리한 후 할일 없는 우리는 노닥거리며 시간을 때웠다. 때때로 이쪽저쪽 의미 없이 다녀보기도 하고, 이유 없이 가구의 배치를 바꾸어 보기도 한다. 그러다 볕이 뜨거워진다 싶으면 거실 벽면의 창을 열고 정원에 나가고는 하는데 사는데 필요 없는,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화초들을 심고 때때로 영양제를 주기도 하면서 그곳을 거닐었다. 가끔가다 그것의 종류를 물어보면 나는 기억을 더듬어 그것의 생태를 얘기해주고는 했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둘이서 흙 묻은 신발을 벗고 2층의 서재로 올라가 식물사전을 뒤적였다.

 “토오루 이거 같은데.”

 “응 맞는 거 같네. 식물계 진정쌍떡잎식물군 국화군에 속하는 아이비. 덩굴식물로 다른 물체에 붙어 자라고 잎에는 독성이 있어 그리스 시대에는 고통을 안정시키는 역할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이비는 담쟁인데 왜 국화군이야? 국화랑은 하나도 안 닮았는데.”

어린아이같이 물어보는 너를 보고, 나는 웃으며 자상하게 대답해준다. 다시 한 번 사전적인 지식들은 지우기를 잘했다고 과거의 나를 칭찬하며 동시에 눈앞의 사랑스러운 너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다정한 손길에 기분 좋게 웃는 너를 보며 나는 또다시 행복에 잠긴다. 그렇게 둘이 붙어 또다시 오후를 사치스럽게 허비하고 웃고 떠들고 행복해하다 보면 금세 밤이 찾아온다. 늦은 저녁, 졸린 네가 꾸벅이며 나와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고 나는 그 옆에서 그런 너를 바로 본다. 실로 완벽한 하루일과였다.




3***

 이와쨩은 특히 6월부터 점점 인간다워졌다. 그리고 이제는 완전히 인간이었다. 내가 물어보는 말에 스스로 생각해서 답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가끔 보이는 새로운 습관 같은 것들이 보일 때마다 그걸 관찰하고 지켜보며 너에게 일깨워 주는 것은 새로 생긴 나의 취미 중 하나였다. 그건 하루 중 무엇보다 기쁠 때였다. 습관은, 기계가 아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음식에 관한 호불호부터 걸을 때면 오른발을 먼저 내딛는 습관, 당황하면 오른쪽 눈썹이 왼쪽 것보다 치켜 올라가는 것까지 하며 하나같이 그때 깨어나고부터 나와 만나 같이 살며 생긴 습관들. 모두 하나같이 사랑스러웠다.

 이제는 봄이 지나 만연한 여름날인 오늘도 그의 새로운 습관을 발견하고 귀엽다고 놀리며,  더 인간에 가까워진 그를 보며 기뻐하던 어느 날이었다.


 “오늘은 지난주 방영한 TV 다큐 스페셜 ?안드로이드의 진화- 편에 자문도움을 주신 사토 박사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사토 박사님. 저번 편에 대한 반응이 요즘 뜨거운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제 주변에서도 반응들이 아주 뜨겁더라고요. 다들 언제 안드로이드가 저만큼이나 진화한 거냐고 호들갑들이시던데 굉장히 재밌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습니다. 그야 우리가 늘 들고 다니는 핸드폰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필수인 컴퓨터까지 전부 인공지능이고 안드로이드니까요.”

 “확실히 이제는 우리주변에 없을 수 없는 것들이죠.”

 “네 그렇습니다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화에 나오는 인간 같은 것들은 아직 한참 멀었어요. 뭐 적어도 한 100년은 있어야 하려나요? 그러니까 AI의 세계침공이라던가 반란 같은 것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문위원으로 나온 박사의 넌스레 떠는 해설로 방청객들은 웃음바다였다. 확실히 그의 이름은 나도 많이 들어본 것이었다. 나름 인공지능 분야에서 수위를 다투는 전문가였으니까. 그리고 밑에 자막으로는 프로그램에 도움을 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이름과 관련 특허권을 가진 이들의 이름이 지나갔다.

 “저기 방금 지나간 거 너 아냐? 及川 徹. 한자 독특하니까 동일인 드물테고 너 연구실에서 일했었다며.”

 “딩동댕! 저번에도 얘기 했지? 특허로 매달 받는 돈이 우리 생활비라고.”

 “그랬지. 저번에 이사할 때 퇴직금이랑 적금에다가 몇 달 치 특허 비까지 쏟아 넣어서 산 게 이 집이라고 했으니까.”

 “은근히 아픈 부분을 찌르네 이와쨩. 그리고 집만 산 게 아니라 주변 산까지 사느라고 그렇게 비싸진 것뿐이야. 그래도 뭐, 여기 집도 좋고 주변도 좋으니까 대만족이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

만담 같이 흐물흐물한 대화 뒤에 이와쨩은 또다시 예리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저기에는 나 같은 안드로이드는 100년 뒤에나 가능한 거라는데 너는 어떻게 한 거야?”

 “사실은 이 토오루가 굉장한 사람이라 서지! ……. 농담이니까 그렇게 차갑게 쳐다보지는 말아줘 이와쨩. 으음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 굳이 말하자면 기적이려나? 그게 제일 비슷하네. 우리 사랑처럼 말이야.”

 “비유도 이상한 걸 들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리는 이와쨩을 놀리자 퍽이나 재밌는 반응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 비유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상하지만 그때 그건 정말 기적이었으니까.




4****

 “나, 내년 5월에 결혼해.”

 내 마음도 고백하지 못하고 뒤에서 혹은 옆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체육관에서, 언제나 너를 바라보기를 20여년. 아슬아슬하게 이어져가던 나의 사랑은 너의 결혼소식과 함께 끝나버렸다.


 잔뜩 들떠 붉게 상기된 얼굴로 네가 전하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종이 울렸다. 너를 처음 만났을 적과 같은 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내 사랑은 끝났구나. 너는 다른 사람을 사랑해버리는구나.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너의 입으로 들으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뭐야 이와쨩 오이카와씨보다 못생겼으면서 먼저 가는 거야?”

 “참나 결혼이랑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너도 참 그걸로 꾸준히 놀리네. 벌써 20년도 넘었잖아.”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의 말대로 20년도 넘게 좋아한 나는, 그렇게 웃는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내가 많이 좋아했어, 이와쨩.”

겨우 내뱉은 20자가 채 되지 못한 말은 내 20년 짝사랑의 처음이자 마지막 고백이었다. 얼굴을 쳐다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서 올려다 본 얼굴은 평소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너 어디 가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말하냐? 부끄럽게. 당연히 나도 뭐, 제일 친하고 오랫동안 안 친구니까 좋아하지. 결혼한다고 너랑 안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그랬구나. 나에겐 소중했던, 고백하지 못해 애닳고 아팠던 시간들이 너에게는 다른 의미였구나.

 “에이 이제 신혼이면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놀러가지는 못하잖아. 이와쨩이랑은 이제 끝나는 거라고? 오이카와씨, 너무 슬프네.”


 그렇게 커피숍에서 마주보고 주고받은 실없는 농담들이 끝나자 밖은 벌써 달이 머리위에 뜬 밤이었다. 머릿속에서 댕- 댕- 거리는 그 종소리는 전신으로 퍼져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자리를 옮겨 술도 한잔 걸친 후 행복해 보이는 이와쨩을 오늘도 옆에서 지켜보며 집에 어서 들어가라고 손을 좌우로 열심히 흔들며 작별인사를 보냈다. 그에게서 뒤를 돌아, 집으로 향하는 길을 머릿속으로 억지로 떠올리며 다리를 움직였다. 생각보다 끝났다는 감각은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단지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아주 중요한걸. 허탈함과 같이 캐럴과 눈이 내리는 거리를 걸어가던 중 떠올랐다.

 

 사랑을 잃었다면, 사랑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것을 깨달은 순간 집으로 향하던 진로를 급하게 바꿔서 택시를 잡았다. 캐럴이 흐르는 거리를 뒤로하고 나는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했다.

 “AI브레인 본사로 가주세요.”

 라디오를 틀지 않은 택시 안에서 맑은 종소리만이 가득 울려 퍼졌다.




5*****

 “만든다고 해도 안드로이드일 뿐이잖아. 영혼이 없는, 그냥 기계일 뿐이라고.”

 하루 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 사람과 같은 안드로이드를 만들겠다는 가망 없는 일에 매달리는 내 모습에 연구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했다.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었다.

 “타인의 영혼은 결국 타인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야. 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보고 늘 함께 했던 사람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영혼’을 만드는걸. 그렇다면 그건 가장 완벽한 안드로이드이자 인간인 ‘그’가 될 거야. 안 그래?”

그 대답에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어차피 현대의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하다 생각했기에 모두 어깨만 으쓱일 뿐 제지하지 않았던 것이었을 거다. 아마 술에 취해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내가 정말 작정하고 그 일에 달려들자 점점 나를 피하더니 한 달이 조금 지나자 누구도 내 연구실 근처로 오지 않았다. 잘됐다 생각하며 나는 연구실 문을 걸어 잠갔다. 다른 이들에게 인간 같은 안드로이드를 만든다고 했지 ‘이와쨩’을 만든다고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이와쨩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쉬운 부분은 그 어느 것도 없었다. 처음 겉의 모양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속의 영혼을 만드는 것까지, 그 모두 지금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겉껍데기부터가 난관이었다. 현재의 그의 모습은 기억 속에 가장 깊이 박힌 그의 모습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재’의 모습을 포기하고 다른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전체적인 신체 사이즈, 촉감, 느낌, 생김새, 키, 몸무게 등. 모두 내가 가장 사랑한 그의 모습으로.

 우울해하기를 하루, 기뻐하기를 이틀, 절망하기를 일주일,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를 한 달, 전부 부숴버리고 뛰어내리고 싶기를 두 달. 그리고 내 주변의 모두가 내 행동에 질려 손을 놓고 포기한 세 달째가 되었을 때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그가 눈을 뜬 것이다.


 “...오루, 토오루!”

 “응?”

 “일어나, 거실에서 자면 감기 걸려.”

TV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넘어간 지 오래인지 늦은 저녁시간에 하는 취재 프로그램으로 넘어가 있었다. 멍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며 길게 기지개를 켰다.

 “미안 깜빡하고 잠들었었나봐. 벌써 어두워졌네?”

 “너 그 자리에 앉아서 3시간 넘게 잤어. 좋은 꿈 꿨나봐? 실실 웃던데.”

 “으음 안 좋은 꿈이었는데 결말이 좋았어.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잖아? 분명 길몽일거야 이거!”

 “쓸데없는 걸 꿨나보네. 길몽은 무슨, 개꿈일거다 바보 토오루. 어서 씻고 오기나 해.”

 “네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건 분명 좋은 꿈이었다. 다시 한 번 기억 해봐도 끝이 정말 좋았던 꿈.

 “마지막에 들었던 건 역시 녹음 해놨어야 하는데.”

중얼거리는 내 대답에 이와쨩이 되물었다.

 “뭘 녹음해?”

 “아니야 지금이 더 좋으니까 문제없어!”

 “실없기는.”

귀엽게 눈을 흘기며 자리를 정리하는 이와쨩을 보며 나는 다시 그때의 기억을 회상했다. 꿈에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은,


 ‘좋은 아침입니다, 박사님.’


역시, 그건 기적이었다.




6******

 행복한 여름이 계속되던 날이었다. 그날은 우리 둘이 만든 ‘하루 종일 영화보기의 날’로 명칭이 거창해서 그렇지 사실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영화 두어 편을 거실의 커다란 TV로 틀고 소파 앞에 이불들을 여러 겹 쌓아올리고는 거기서 뒹굴 거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 그날도 시작은 그랬다. 유명 애니메이션인 인어공주를 보던 중 느닷없는 이와쨩의 질문만 아니었다면 다른 날과 같았을 것이다.

 “토오루 저기 마지막 부분에 붉은 머리 공주 말이야.”

 “애리얼 말하는 거야? 인어공주?”

 “응. 아무리 봐도 이상해서 말이야.”

 “어디가 이상한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브스토리잖아.”

 “그건 모르겠고 전개가 이상한 거 같아서. 공주는 왕자의 뭘 보고 사랑에 빠진 거지?”

 “잘생긴 점이라던가, 운명적인 만남? 그런 게 아닐까?”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와쨩 지금 무슨 질문을 하려는 거지?

 “왕자랑은 기껏해야 하루밖에 알지 못한 사이인데 그런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이유를 모르겠어.”

 “...사랑해서가 아닐까?”

 “그럼 왜 사랑에 빠진 건데?”

그는 머뭇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그 질문 후에 우리사이에 말이 없어졌다. 마지막 맥없는 해피엔딩이 끝난 후 스텝 롤이 올라가며 컴컴해진 방안에서 이와쨩이 내게 물었다. 아니, 나에게 물었다기 보다는 자신에게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왜 토오루를 사랑하는 거지?”

안드로이드는 그가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상대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을 하기에는 잘못된 상대였다. 의심이라는 회로가 깜빡였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였기 때문이다.

 “잠시만 기다려 이와쨩.”

거실의 불을 켜지 않고 나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섰다. 그는 미동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고쳐줄게.”


 나는 그날 이와쨩에게서 의심이라는 기능을 삭제했다. 생각해보니 필요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의심은 필요 없다. 원래 사랑은 이유 없는 것이라고 하니까. 내가 처음 이와쨩에게 반했을 때처럼.

 “사랑해 이와쨩.”

 “나도 사랑해 토오루.”

우리는 마주보고 웃었다. 이제 우리 사랑에 이유는 없었고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7*******

 “이와쨩 치-즈”

찰칵. 매미소리에 묻힐 것 같은 셔터음과 함께 시원한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여왔다. 이와쨩은 정원의 구석에 있는 수도에 고무호스를 끼워 화초들에게 물을 주는 중이었다. 넓게 흩뿌려지는 물방울들과 함께 옅은 무지개가 그의 발밑에 걸렸다. 차가운 물이라 그런지 8월 한낮의 더위도 조금은 덜한 느낌이었다.

 “사진 찍을 때마다 인상 쓰는 버릇은 여전하네, 이와쨩.”

 “시끄러 맨날 찍어대는 네가 더 이상한 거야. 토오루.”

투덜거리며 입을 삐죽이는 그를 계속 놀리며 사진을 찍어대자 머리위에서 차가운 물이 떨어져 내렸다. 깜짝 놀라 펄쩍 뛰는 내 모습을 보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또다시 셔터를 눌렀다. 매미소리와 셔터음, 그리고 잘게 물 떨어지는 소리가 정원을 가득 채웠다.


 2층 서재의 컴퓨터로 바로 인상한 사진들과 앨범을 가지고 거실로 내려오자 젖은 머리의 물기를 한손으로 털어내는 이와쨩이 보였다. 맑았던 날은 갑작스레 흐려지더니 어느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장맛비 인가봐. 뉴스에서는 내일부터라던데 하루 일찍 와버렸네.”

 “8월 중순이니까 딱 장마철이라 그런 걸 거야. 물기 제대로 다 털어내. 감기 걸린다?”

건성으로 대답하며 그는 한사람 분만큼 열린 창가에서 발을 내밀고 웅덩이에 발을 찰박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장맛비는 처음이지 이와쨩. 이것도 찍어 놔야지. 또다시 셔터음이 울렸지만 그의 눈은 오로지 비를 쏟아내는 하늘에만 꽂혀있었다. 그가 처음 깨어났을 때부터 보여주는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앨범을 열고 오늘 낮에 찍은 사진들을 꽂아 넣었다. 매일매일 50장이 족히 넘는 것들을 찍다 보니 어느새 서재에 대부분은 전공서적들과 논문들이 아닌 앨범들이 줄지어 늘어서게 되었다. 기쁜 일이었다. 어차피 더 이상 회사에 다닐 일도 없을 것이고 예전의 생활들과도 멀어져버렸으니까. 가장 잘 나온 사진을 그날의 날짜가 쓰여진 페이지의 가장 앞부분에 꽂고는 다른 사진들도 차곡차곡 정리해간다. 한여름의 중심에 밀짚모자를 쓰고 서있는 사진과 늘여진 무지개의 옆에 앉아있는 사진을 양손에 들고서 어느 것이 오늘의 베스트 샷인지 고민하고 있자 이와쨩이 다가왔다.

 “뭐하는 거야?”

여름 특유의 끈적임이 느껴지는 손으로 내 손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어느 쪽이 더 잘나왔나 하는 고민. 아무리 봐도 둘 다 좋은 거 같아서 엄청 힘들어.”

 주저리주저리 내가 늘여놓는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그는 갑자기 카메라를 들더니 나를 찍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그래 이와쨩?”

 “내 기분 좀 느껴보라고. 너 하루 종일 나한테 이러거든?”

미간에 힘을 주고 코웃음을 치며 계속해서 셔터를 누르던 이와쨩은 찍던 카메라를 내게 내밀었다.

 “자 이걸로 해. 맨날 내 사진만 거기다 넣지 말고.”

 “내 사진이 넣고 싶었으면 그냥 그렇게 말해주면 될 텐데 이와쨩 솔직하지 못하네.”

 “시끄럽고 어서 일어나서 사진이나 인화하러 가자고. 그리고 어차피 내 사진이야 다른 앨범 안에도 많잖아.”

쑥스러워하는 티를 내기 싫어서 고개를 획 돌린 이와쨩을 보며 이제는 진짜 인간이라는 걸 확인한다. 앨범 속 수백 장의 사진보다 그 다음날, 다음날 더욱 인간이 되어가는 이와쨩을 생각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얼굴이 붉어지는 이와쨩, 쑥스러워하는 이와쨩, 기뻐하는 이와쨩, 그 무엇 하나 놓칠 수 없으니까.


 “안 올라와?”

 “토오루씨 금방 갈게!”

그와 만난 이후 나도 조금 변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기쁜 일이었다.




8********

 “자 이와쨩 오늘은 어제도 말했다시피 9월 1일이니까 대청소 날이야! 이와쨩이 1층 내가 2층을 청소할게 1층은 금방 끝날 테니까 다 하면 정원도 부탁해.”

 “2층은 무거운 것도 많은데 정말 너 혼자로 괜찮은 거야?”

 “토오루씨는 그 정도 힘은 있으니까 괜찮아. 그럼 나는 바로 올라갈 테니까 환기부터 부탁해.”

이사 온 첫날 여러 가지를 정하면서 매달 첫날은 대청소의 날로 정했었다. 어차피 주로 쓰는 건 거실과 부엌, 침실정도라 청소할건 그리 만치 않았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냥 둘이 창문을 열고 자주 쓰는 곳만 쓸고 닦고 했었다. 하지만 앞의 두 달과 달리 이번 대청소에서 1층과 2층을 나눈 것은 필요 없는 짐들을 버리기 위해서였다. 계단을 올라 2층 가장 끝 방의 작은 문을 열었다. 이사 온 이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아서 인지 먼지들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곳에 쌓인 박스들 중 가장 깨끗한 것을 열자 두 달 전 참석한 결혼식의 앨범이 나왔다. 참가 기념품들은 손대지 않고서 문가에 걸터앉아 앨범을 열자 그날의 사진이 나왔다. 이미 이와쨩을 만든 후였지만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느껴진 건 절망이었다. 잠깐 만나지 않은 3달간 달라진 그의 모습, 달라진 분위기, 달라진 옆 사람.

 “너는 여태껏 뭐한다고 얼굴 한번 안 비췄어?”

 “미안 회사에서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너무 바빠서. 늘 야근해야 했거든.”

오기 전 그렇게 다짐을 하고 왔는데도 그의 앞에 서자 손이 떨렸다. 그의 옆에 서 있는 사람에게 눈을 돌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그에게서 눈을 때지 않았다. 집에 있는 이와쨩 보다 머리가 짧아 졌네. 키가 조금 더 큰 거 같아. 눈에 띄게 달라진 점들이 나를 찔렀다.

 “너는 아직 인사 못했지? 이 사람은 다카하시 세츠미(雪美). 오늘 나랑 결혼 할 사람이야. 이쪽은 오이카와 토오루. 전에도 얘기 했지?”

 “안녕하세요, 오이카와씨. 얘기 많이 들었어요. 20년 넘게 친구시라고 했죠? 하지메씨가 하는 친구 얘기 대부분은 오이카와씨라서 많이 기대했어요. 오늘 결혼식에 와주셔서 감사해요.”

 식의 시작 전부터 행복해 보이던 두 사람은 식의 마지막 순서인 단체 사진을 찍을 때까지도 행복해보였다. 나는 손에 하얀 실크로 된 청첩장을 쥐고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더 이상 카드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구겨진 청첩장을 옷 속에 거칠게 쑤셔 넣고는 재빨리 인사를 건넸다.

 “그럼 나 갈게! 형수님이랑 행복해야한다?”

 “그래 몸도 안 좋아 보이는데 어서 들어가. 다음에 보자.”

3달 전 내리던 눈들은 벚꽃 잎으로 변해 우리사이에 하늘하늘 떨어졌다. 이제 그와 보는 것도 정말 마지막이겠지. 내가 오늘 하루 종일 그를 ‘이와쨩’이라 부르지 않은 걸, 그는 눈치 챘을까.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는 일이였다. 나는 급하게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이와쨩을 보러,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를 만나러.


 집에 들어와 우울한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와쨩을 끌어안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이와쨩은 영혼이 뭐라고 생각해?”

맞닿은 온기에 매달린 필사적인 질문이었다. TV에 나오는 시시한 드라마는 눈에 들어오지 않은지 오래였다.

 “영혼은 생명체가 가진 거니까, 저번에 네가 얘기했던 것처럼 이게 좋다 이게 싫다 느끼는 ‘자의’이지 않을까.”

 “이와쨩은 확실히 느끼고 있어?”

 “응, 나는 네가 좋아. 오이카와가 좋아. 확실히 느끼고 있어. 자의로.”

 “이제 정말 진짜 이와쨩이구나.”

 “틀려.”

순간 가슴이 철렁였다. 그가 부정하면, 더 이상 이와쨩은 이 세상에 없게 된다. 떨리는 손을 누르고 있자 다시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원래 진짜 이와쨩이였어. 네가 처음 깨어났을 때 그랬잖아?”

당연하다는 얼굴. 당연하다는 대답.

 “맞아. 응, 그랬지. 정말 기뻐.”

 “기뻐?”

 “응. 죽을 만큼 기뻐.”

아, 그래. 이쪽이 진짜인거다. 따뜻한 그를 껴안고 나는 한참을 더 붙어있었다. 아마 그날은 하루 종일 그러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이사를 마음먹었다. 어느 곳으로 갈지 정하지는 못했던 것이 그날 확실해 졌다. 세츠미(雪美), 아름다운 눈. 니가타 시는 겨울이면 아름다운 설국이 되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어쩌면 그녀의 이름에 나는 이곳을 골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설국으로 유명한 곳이니까.


 “뭐 지금은 다 상관없지만.”

가벼운 스트레칭과 함께 방에 있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더 이상 미련은 없었다.

 “이와쨩-! 라이터 좀 꺼내서 정원 옆 장작 패는 곳으로 와줄래? 태울게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이와쨩을 보며 쌓아올린 박스에 앨범을 다시 넣고 들어 올렸다. 오늘은 바비큐를 먹기에 딱 좋을 것 같았다.




9*********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에 힘입어 9월 내도록 나는 이와쨩과 함께 독서 삼매경이었다. 책에 밑줄을 치며 읽던 이와쨩은 갑자기 내 어깨를 흔들었다.

 “이해안가는 거라도 있어?”

이와쨩이 내민 것은 고전소설 이었다. 한자의 어려움을 떠나서 고어들이 많아 확실히 일반적으로 읽기 어렵지. 한자를 하나하나 때 설명해주자 곧 그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그스름하니 귀여운 뒤통수를 바라보며 습관적인 말이 나왔다.

 “이와쨩 사랑해.”

 “나도 사랑해 토오루.”

 맑은 얼굴로 나를 마주보고 웃어주는 이와쨩. 고개를 숙여 내가 읽던 책의 한 구절을 읽었다.


 ‘사랑에 형태는 없다. 모양도 없고, 색 또한 없다. 단지 그것을 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뿐이다.’


그래, 그러니 이 안드로이드는 내 사랑의 형태다. 명백히 내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내 사랑. 읽던 책을 내려놓고 그에게 다가가 양팔을 벌려 꼭 끌어안았다. 이와쨩도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줬다. 두근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이제 내 사랑이 멈출 일은 없을 것이다. 그의 톱니바퀴가, 심장이 뛰는 한은. 고개를 들어 그에게 입을 맞추고 맞닿은 곳에 숨을 불어 넣었다. 따뜻한 숨이 입술 사이에 오갔다.

그러니 평생 내가 내뱉은 숨만 들이마시며 살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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