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른 아침의 기차역은 한산했다.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한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우두커니 서있자 하얀 안개가 느릿하게 산모퉁이를 끼고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런 안개를 뚫고 기차가 경적소리를 내며 천천히 역에 들어오고 있었다. 하룻밤 정도의 가벼운 짐을 넣은 배낭을 한손에 쥐고, 다른 손에는 니가타시(市)행 표를 구기듯 쥐었다. 문이 열리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으슬거리는 목을 코트 깃으로 감쌌다. 곧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시속 240km/h로 나를 설국으로, 친구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줄 열차의 문이 열렸다.


박사가 사랑한 안드로이드. 03
잊혀진 그의 가을



 열린 12호 8-A의 문으로 들어선 기차는 성수기 직전의 것이라 그런지 도쿄역 이전의 오사카 역부터 달렸을 것인데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듬성듬성 자리가 빈 열차에서 내 자리를 찾고는 짐을 올리고 주저앉듯 앉았다. 등과 허리에 느껴지는 감각이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창밖에는 ‘OSAKA → TOKYO → NIGATA’ 라는 붉은 글씨가 노려보듯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목적지는 설국, 니가타였다. 그녀석도, 나도 한 번도 간적이 없는 곳. 언젠가 읽었던 소설 속에서나 보던 지명. 녀석이 왜 그곳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떠올려도 생각나는 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뿐이었다. 교과서에서 잠깐 흘려본게 다라서 기억도 가물가물한 책인데. 녀석은 그 정도로 인상 깊게 봤었던가? 생각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지러운 나와 달리 열차의 기계음은 간단하게 앞으로의 일정을 얘기해 주는 중이었다. 듣지 않는 내가 다 미안해질 만큼 경쾌한 말투로. 움직이기 시작한 기차의 창가에 몸을 기댔다. 앞으로 4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었다.
 오이카와와는 언제나 같이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무리였던 것일까.


2**
 오이카와 토오루와 처음 만난 것은 유치원 입학식 때였다. 그 전날까지 맨다리로 나무를 타 사슴벌레를 잡느라고 다 까진 무릎과 어디선가 잔뜩 긁힌 샐쭉한 얼굴의 나와는 달리 동글동글한 얼굴에 남들의 배는 커다란 눈, 가끔 나오는 애교 섞인 3인칭 때문인지 여자인지 알았던 녀석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왼쪽으로 여자는 오른쪽으로 둘씩 짝을 맞춰 줄을 서라는 선생님의 말 때문에 남자라는 걸 알게 된 것이 어린마음에는 나름 충격이었다. 너 여자 아니었어?! 양팔을 퍼덕이며 버벅이는 나를 보고 그 녀석이 한참을 웃어댔었다. 그러기도 잠시 우리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같이 초등학교 입학사진을 찍고 그녀석이 나한테 배구를 권유하고, 같이 졸업하고 또다시 중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또 열심히 배구를 하고 졸업을 하고. 그렇게 14년, 무려 14년을 찰싹 붙어살았었다. 그걸로 끝이었다면 평범하게 근처에 사는 친한 친구였겠지만 희한하게도 우리는 합격한 대학교도 마침 옆이었다. 어쩐지 나에게 합격한 대학을 묻고는 웃더니만. 거기서도 우리는 배구를 하다가 녀석은 부상으로, 나는 취업활동 때문에 끝이 났었다. 그것까지 포함하면 18년, 그리고 취업후의 것까지 생각하면 20여년을 훌쩍 넘었고 살아온 인생의 절반이 넘었다. 새삼 생각해보니 참 긴 시간이었다. 서로가 맞추지 않았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앨범에 둘이 같이 나오지 않은 사진이 드물 만큼 긴 시간.

 그리고 그랬던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결혼식에서의 헬쓱한 얼굴이 잊혀지지 않아 대충 정리가 되자마자 전화를 걸었지만 대답은 녀석이 아닌 단조로운 기계음이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잘못거신 번호이거나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오래전에 외운 번호로 건 전화가 3번이 넘게 같은 대답이 돌아오자 바로 핸드폰의 연락처를 열었다. 오십음도를 あ행부터 わ행까지 정렬한 번호 중에 오이카와를 아는 사람들에게 걸지 않은 번호가 없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모두 같았다.
 “오이카와한테 연락이 안 돼서 그러는데 혹시 지금 연락돼?”
 “네가 안 되면 우리 중에 되는 사람은 없을걸?”

 생각해보면 결혼소식을 전할 때쯤부터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녀석한테 연락했을 때 받지 않은 전화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답변이 돌아오지 않은 메시지는 기억에 없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다시 한 번 모두에게 전화를 돌려봐도 돌아오는 답변은 똑같았다. 그러다 마지막 희망으로 지갑을 뒤져 녀석에게 받았던 회사명함을 꺼냈다. ADDA 연구소. 인공지능 네트워크 개발부서의 오이카와 연구원. 그리고 밑에 작은 글씨로 쓰여진 회사번호. 초조함으로 다리가 떨렸다. 신호음이 끊기고 연결된 직원에게 오이카와의 이름과 부서를 말하자 돌아온 답변은,
 “네에 오이카와 연구원 말씀이시죠? 그 분이라면 세 달 전에 이미 퇴사하셨는데요. 여보세요? 전화중이신가요?”


3***
 빠득빠득 갈리는 잇소리가 골에 울렸다. 턱이 아플만큼 힘을 준 악관절이 아려왔다. 경찰서에는 실종신고를 내기위해 가봤었지만 다 큰 어른이, 그것도 멀쩡히 사회생활 하던 사람이 갑자기 모두에게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는 정도로 받아주지는 않았다. 그저 가끔 있는 일이라는 상투적인 답변이 돌아오는 것 밖에는.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눈에 힘을 주며 평소에 밟지 않던 세자릿수의 속력으로 녀석이 살던 동네로 향했다. 대충 보이는 대로변에 차를 세우고는 빨리 녀석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도착한 곳에서 나를 반긴 것은 실종된 친구가 아닌 전소(全燒)해버려 겨우 모양만을 알아볼 수 있는 집터, 그리고 타다 남은 재 뿐 이었다. 마치 사람처럼 서있는 대들보와 타다 남은 옷가지 같아 보이는 무언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러는 동시에 그 모습은 겨울에 보았던 오이카와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결혼소식을 처음 전했을 때의 겨울. ‘좋아했어’ 평소와 다름없는 농담과 첫눈과 함께 흔들리던 손. 그리고 지금은 떨어지는 낙엽과 재, 손을 흔드는 타다 남은 친구와의 추억.

그렇게 오이카와 토오루는 완벽하게 증발해버렸다.
..
...라고 생각했다.
 “자네 이사 가지 않았던가? 기운 없어 보이더니만 이제 건강해졌나봐.”


4****
 “그 청년, 작년 겨울에는 거의 집에 안 들어왔거든. 그런데 2월, 아니 3월부턴가? 그때부터는 반대로 외출도 안하고 집에만 틀어박혔지.”
 “무슨 일이 있냐고 해도 자택근무로 바뀌었다는 말 밖에 안하지 뭐야. 회사기밀이라고만 하던데.”
 “응? 빚쟁이 같은 건 없었어. 평소에 입고 다니던 옷도 깔끔하고 인사도 잘하고, 아무 문제없어 보였는걸.”
 “언제부터였지? 같이 사는 사람이 생겼거든. 청년이 아니었어? 뭐 확실히 더 젊어 보이기는 했지만. 아니, 어려 보였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불렀더라... 아니 사실 둘이 같이 나오는 일은 잘 없었거든. 가끔 장보러 나오는 것 말고는”
 “그래 기억났다! 아마 하지메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그쪽은 사촌형이라던가, 그런 건가?”
 “하도 무표정하고 반응도 없길래 우울증 같은 걸로 요양 중인가 했지 뭐야.”
 “맞아 정말 청년이랑 꼭 닮았었다니까 그러네. 그 사람 말고는 저 집에 같이 있던 사람은 없었어.”
 “어디로 갔는지야 우리도 모르지. 평일 낮에 이사가버렸거든. 다들 깜짝 놀랐지 뭐야. 이사 간 게 놀랐냐고? 아니 그걸로 놀란 건 아니고 그 다음이 문제였지.”
 “맞아 그때였거든. 타는 냄새 때문에 가봤더니만 그렇게 큰 불은 50평생 살면서 처음이었다니까. 그래도 참 다행인 게 이사를 가자마자 불이 나서 아무도 안 다쳤다는 거지. 번지지는 않았어. 희한하게 그 집만 타버렸거든.”
 “어디로 이사했는지는 얘기를 안 해서... 지금 실종상태라고? 정말? 그럴 청년으로는 안보였는데... 그래도 정 걱정된다면 저기 사거리 건너편에 이삿짐센터 보이지? 저기로 가봐. 이사할 때 저기서 했다더라고.”
 “그나저나 영락없이 그때 같이 이사 간 그 사람인줄 알았는데 아니라니 의외네. 혹시 친척 중에 한명 아닌가?”

 정신없이 흘러오는 정보들은 이해가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날아오는 알 수 없는 답변들을 급히 수첩에 갈겨쓰고는 이삿짐센터로 달려갔다. 그리고 동시에 다시 녀석의 옛 직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직장에서는 오이카와가 세달 전에 퇴사했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웃은 그가 퇴사가 아닌 ‘자택근무’로 전환했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아귀가 맞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나를 닮았다는 ‘청년’의 이야기는 뒤편으로 던져놓고서 우선 이삿짐센터의 문을 열었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5*****
 “아뇨 네 괜찮습니다. 지금 점심시간이기도 하고. 오이카와 연구원에 대해 물어보러 오신 거죠?”
 “요즘 좀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미친것 같았어요. 뭐랄까 프랑켄슈타인처럼? 아뇨 정말요.”
 “뭘 만든다더라... 기억나? 아, 그랬지. 사람을 만든다던데.”
 “헤어진 여자 친구 같은 건 없었어요? 아니면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언제부터였지? 첫눈 오던 날이었어요. 갑자기 사복차림으로 연구실에 돌아온 거예요, 원래는 반차 썼던 날인데.”
 “어... 아마 작년이었지 싶은데.”
 “갑자기 봄부터 멀쩡해 졌길래 이제 포기했나 했죠. 인간 같은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거야 이쪽 공부하는 사람이면 다들 해보는 생각이기도 하고, 그냥 다들 학생 때 한번쯤 해보는 생각을 좀 늦게 하는구나 했죠.”
 “그러다가 갑자기 그만뒀어요. 봄이었는데, 다들 출근하고 보니까 이미 연구실까지 싹 청소해놓고 사표를 썼더라고요.”
 “아뇨 정말 싹 청소해버려서, 남은 건 하나도 없었어요.”
 “딱히 어디로 스카웃 된 건 아닐 거예요. 뭐 연구원이라서 왕왕 있는 일이긴 하지만 얘기하지 않을 일도 아니고.”
 “성공했을 리는 없죠. 무슨 영화도 아니고! 저번에 TV에서 안드로이드-인공지능 특집방송 보셨어요? 혹시 시간되면 보세요. 자세하게 설명했거든요. 물론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얘기였지만.”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성공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특허비도 있고 퇴직금도 있으니까 딱히 돈 문제는 없을 거예요.”
 “지금 실종이라고요? 아뇨 겨울에 잠시 그랬던 것 빼고는 멀쩡하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아무 문제없었는데.”
 “아뇨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얼마 없어서, 저야말로 죄송하네요. 만나러 가시는 건가요? 네 그럼 안부 전해주세요.”
 
 이제 수첩은 복잡하다 못해 글씨가 적히지 않은 부분을 찾기 어려워졌다. 거칠게 앞머리를 넘기며 자리에 앉아 흰 A4용지를 꺼내 다시 정리를 시작했다. 가까스로 물어물어 찾아간 이삿짐센터에서 돈을 찔러주고 들은 이사한 주소와 오이카와의 이름에 각각 동그라미를 치고 검은 선으로 이었다. 그리고 그가 같이 있었다는 청년을 잇고, 겨울 내도록 몰두했다는 ‘사람 같은 안드로이드’도 이었다. 이웃에게 들은 이야기, 불이 난 집, 이사, 실종, 겨울, 직장동료들에게 들은 이야기, 프랑켄슈타인, 퇴사... 오이카와의 이름을 주위로 얽힐 리 없는 것들이 빙 두르고 줄을 이었다. 마치 꽃이 핀 것처럼. 지나치게 꽃잎이 많은 꽃처럼. 내가 아는 오이카와 토오루와 상관없는 이야기들이 꽃잎을 만들고 줄기를 만들어냈다. 완성된 종이를 들여다보아도 이게 정말 오이카와 토오루인지 의심스러웠다.
 나와 20여년 넘게 친구였던 오이카와 토오루? 가벼워 보여도 속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정말 속 깊숙한 이야기 까지 할 수 있었던 친구? 가장 먼저 결혼 이야기를 전했던 친구? 뻑뻑해진 눈을 양손으로 눌렀다. 눈을 깜빡여도 그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너는 도대체 누구였어 오이카와?


6******
 덜컹이는 기차에서 선잠에서 깨어났다. 그를 수소문했던 꿈을 꿨다. 뒷맛이 씁쓸하면서 왼쪽 후두부 밑이 아렸다. 속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네 번 접은 A4지를 꺼내 펼쳤다. 몇 가지가 더 추가되어 이제는 이파리가 돋아난 것처럼 보였다. 어차피 닳도록 읽은 것이었다. 가벼운 한숨과 함께 암호문으로 가득한 보물지도보다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접어 갈무리해 넣었다.
 기계음과 덜컹이는 소리가 생각의 사이를 가르고 부스러기를 만들어낸다. 이제는 눈을 감아도 그려지는 것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무언가 가운데 큰 것이 빈 느낌이었다.

 열차 끝의 전광판에 곧 도착한다는 신호가 떴다. 의미모를 그림과 신변잡기도 이제 끝일 것이다. 갑자기 그때의 생각이 났다. 한창 원서를 쓸 때, 오이카와는 정말 의외의 진로를 선택했었다. 운동이나 몸에 관련된 전공을 선택할거라는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었다.
 “컴퓨터 공학?”
 “응.”
 “여기가면 뭐 배우는 건데?”
 “이와쨩이 좋아하는 괴수영화에 나오는 로봇으로 된 사람 같은걸 만드는 거야.”
 “장난치지 말고.”
 “진짜라니까 그러네?”
사실은 진짜 이유를 묻고 싶었다. 갑자기 왜 그쪽으로 관심이 간 거냐고, 뭔가 하고 싶은 일이라도 있는 거냐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없이 진로표를 보고 있자 넌지시 녀석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이와쨩.”
 “왜?”
 “으응 아냐.”
 “실없기는.”
 “...이와쨩은 변하지 말아줘.”
흘러가는 듯 한 소리. 속삭이듯이 작게, 녀석은 내 얼굴도 보지 않고 속삭였다.
 “못 들었는데, 뭐라고 했냐?”
 “이와쨩은 오늘도 못생겼다고 했지. 어떻게 이렇게 감자같이 생겼을까?”
 곧 평소와 같은 만담 같은 대화가 오고가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때 사실 들었지만 못들은 척 했었다. 그리고 다시 오이카와의 새까맣게 타버린 집이 생각났다. 타버린 것들을 뒤적이다 우연히 고교졸업 앨범과 배구부의 유니폼을 발견했었다. 끝은 이미 다 타버려 손을 대면 바스러질 것 같은 그으름. 변하지 말아달라던 녀석이 이런 것을 태워버렸다? 나는 순간 녀석이 자살해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흐르고 쌓인 것들이 재와 같이 머릿속에 쌓였다. 눈꺼풀을 탁 소리 나게 덮었다 힘을 주고 떴다. 준비를 해야 했다. 곧 설국이었으니까.


7*******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그 책에서 유일하게 선명히 기억나는 구절이었다. 나와 연관을 지어보자면 아내의 이름인 세츠미(美雪)가 생각나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그 전이라면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곳은 눈의 고장답게 이른 날의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눈이라니. 원래 이 시기에 눈이 오나?”
핸드폰 화면에는 10月27日이라는 글씨가 깜빡였다. 메시지 함에는 아내에게 온 문자가 몇 통 쌓여있었다.
 ‘잘 도착 했어? -12시7분’
 ‘나는 동창회 끝나면 내일 들어갈 테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잘 갔다 와. ?1시 42분’
 ‘니가타 시에 벌써 첫눈이 왔다고 뉴스가 나왔는데 괜찮겠어? -2시 8분’
부랴부랴 마지막 문자에 익숙지 않은 자판으로 글자를 입력하고 첫눈사진을 찍어 같이 전송했다. 아내에게는 그저 갑자기 연락이 끊긴 친구를 보러 간다- 정도로만 말을 해놓고 나오기를 잘했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거기다 마침 그녀도 마침 동창회에서 1박 2일로 오사카에 여행을 간다니 걱정도 끼치지 않게 되어 다행이었다. 어차피 곧 만날 친구 놈에게 이 이상한 일들을 실컷 물어보고 타박하고 좀 두드려준 다음에 그래도 다행이라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다그치면 끝날 일일 테니까.
 이른 눈 덕분에 한껏 강하게 느껴지는 한기에 역 안의 편의점에서 급하게 큰 사이즈의 남색 장갑을 샀다. 얼추 맞춰 끼우고는 역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이제 다 끝나가고 있었다.
 “니가타시 츄오구 이시즈에리노 마을 타치우리니시마치 66번지로 부탁합니다.”


8********
아직은 눈이 쌓이기 시작한 초중반이라 그런지 걸음이 질척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 때도 아니고, 지금의 체력으로 나무로 둘러싸인 경사가 있는 오솔길을 올라가자니 이 날씨에도 땀이 날 지경이었다. 택시는 아깝게도 오솔길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밖에 올라 올 수 없었다.
 “여기로 주욱 올라가면 아마 집이 나올 거요.”
 “아마라구요?”
 “그야 주소야 알지만 저기에 집이라고는 한 체 밖에 없는데다가 차도 못 올라가는 외진 곳이니까 알 길이 있나. 그럼 올라가슈.”
황당한 대답 후에 곧 택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과연 길의 너비는 차가 올라갈 만한 것이 못되긴 했다. 그리고 열심히 걸어 올라간 지 20분 째, 아직도 길의 끝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이카와 녀석 무슨 죄라도 지었나? 그렇지 않고서야,”
헉헉이는 숨 때문에 말을 계속 이을 수도 없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체력이 예전만 못했다. 정말 녀석은 무슨 큰 범죄라도 저지른 것이 아니고서야 이런 외진 곳에서 일가친척에다가 주변 사람 모두와 연락을 끊고 들어갈 리가 없었다. 늘 사람이 적당히 많은 곳을 좋아하던 녀석이었다. 일단 얼굴을 보면 그것부터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15분정도 더 힘겹게 오르자 드디어 끝이 보였다. 나온 것은 고즈막히 쌓인 눈 속에서 홀로 서있는 이층짜리 저택이었다. 한 가족이 살법한, 오이카와 녀석 혼자 살기에는 아무리 봐도 넓어 보이는 집. 아릿한 손끝을 접었다 펴며 숨을 골랐다. 심호흡 후에 문을 열려는 순간 문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한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문 옆에 짐을 내려놓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내가 보였다. 그 옆에는 오이카와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문 밖에 서 있었다. 그렇다면 저기 있는 것은 누구인가? 그들 너머로 보이는 벽에는 무수히 많은 사진들이 메우고 있었다. 내가 아닌 나와 오이카와의 사진. 저들은 누구지? 민소매를 입은 나와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오이카와. 뜨거운 햇빛이 있는 사진 옆에는 한가득 쌓인 낙엽과 함께인 내가 있었다. 사진은, 여름부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사랑해 하지메쨩.”

 그게 내가 들은 오이카와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조용히 그 자리에서 그대로 뒷걸음 쳐 내리막길의 시작에서부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체 뛰어갔다. 바닥이 질퍽였다. 새하얀 눈은 어느새 질퍽한 진흙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가 더 이상 자신이 아는 오이카와가 아니게 되었듯이. 그는 박사였다. 옛 동료들의 말대로 너무 사랑해버려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버린 박사일 뿐이었다.

 도착한 기차역에서 도쿄로 향하는 제일 빠른 표를 샀다. 무인 판매기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승강장에 내려가기 까지 기다리는 의자에 앉아 그제야 신발과 다리에 묻은 진흙이 보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꺼낸 여행용 티슈로, 마치 결벽증 환자처럼 닦아냈다. 그리고 닦아도 이미 스며들어버린 얼룩을 보자 다시 그가 생각났다. 그의 사랑은, 자신이 보기엔 진흙이었다. 닦아도 흔적이 남아버리는 새하얀 눈에서 변해버린 진흙. 얼룩을 닦아내던 손이 떨렸다. 열차의 도착 음이 대기실에 울렸다. 머리는 멈추고 반대로 몸은 저절로 움직였다. 짐을 놔두고 와버려 양손이 비어버린 데다가 한쪽 손의 장갑이 없었다. 그런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서 역사 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에스컬레이터를 비틀거리며 타고 내려가자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속 240km/h의 열차를 보자 떠올랐다. 설국의 결말이, 결국은 주인공이 자신을 사랑하는 이의 애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음을.


9*********
 열차가 니가타를 지나 다카사키역에 다다르자 곧 눈은 멎어들었다. 그리고 나도 손을 입에서 뗄 수 있었다. 입을 크게 벌려 가을 끝의 공기를 들이쉬었다. 가을공기가 폐를 지나 뇌까지 흐르자 겨우 그 겨울 속에서 빠져 나온 느낌이었다. 도쿄까지 남은 3시간이 빠르게 지나기를 빌었다.
 그리고 불현 듯 ‘그’가 집과 물건들을 모두 태운 이유를 깨달았다. 이제까지는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나두고 간 짐들이 우연한 사고로 인해 우연히 재밖에 남지 않은 것이었다고. 우연히 나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녀석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가버린 것이다. 도망이 아닌 명백히 존재하는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이제 2시간 남은 기차는 최고속도로 집으로 향했다. 줄어들어가는 예정 시간을 보며 남은 한쪽 손의 장갑도 벗어 중앙의 쓰레기 통으로 던져 넣었다. 혼자 괴로워하는 ‘오이카와’였다면,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대체품을 멋대로 만들어 놓았다. 뒤가 보이는 차가 아닌 기차를 타기를 잘했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제는 옆의 풍경이 아닌 앞의 좌석을 보며 눈을 감았다.

 집에 돌아와 10시간의 숙면 후에 한 일은 창고에 넣어놓은 삽을 찾는 일이었다. 두꺼운 패딩점퍼의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고서 꽤 커다란 상자와 함께 집 밖으로 나왔다. 상자와 삽을 구석자리에 놔두고는 끌로 한가득 모은 낙엽에 불을 붙였다. 가을의 끝에 남은 버석한 낙엽들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잘도 타올랐다. 잘 타도록 부지깽이로 몇 번 휘저어 주고는 상자를 가져와 그 중앙에 던져 넣었다. 테이프로 꽁꽁 둘러싸버린 상자는 낙엽보다 더 검은 연기를 뱉어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저 20년의 우정이 재가 되는걸 지켜 볼 따름이었다. 잦아들기 시작한 낙엽들을 다시 한 번 부지깽이로 휘젓고는 삽으로 옆에 깊은 구덩이를 팠다. 곧 흐르는 땀에 등이 젖어갔지만 손끝만은 아릴만큼 시렸다. 곧 깊어진 곳에 삽으로 타다 남은 잿더미 체로 쓸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흙으로 덮었다. 켭켭히, 아무도 파보지 않을 만큼. 한숨을 쉬어도 아직 입김은 나지 않았다.
 ‘그’를 묻고, 그렇게 나의 가을은 끝났다.


10*********
 “어땠어? 그때 그 잘생긴 소꿉친구 말이야, 울 것 같은 얼굴이어서 걱정이었는데.”
 “...그랬나?”
이제는 묻어버린 친우의 얼굴을 떠올려보아도 그려지지 않았다. 더 이상 그는 자신의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찾은 거야, 그 친구는?”
동창회에서의 여행의 짐을 끄르는 아내의 시선은 따뜻했다. 그때 목격한 그의 사랑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자신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 때문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 당신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
 “뭐야 갑자기 안 하던 말을 다 하고. 나 없는 사이에 친구 찾으러 간다더니 바람이라도 핀 거야?”
 “그럴 리가 있나. 진심이라니까 그러네.”
불퉁한 내 대답에도 아내는 웃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려주었다. 역시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한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그럼 이번 겨울에 가기로 한 여행은 어디로 갈까? 이왕 겨울이니까 니가타나 삿포로로 갈까?”
 “아니.”
최대한 가볍게 얘기하려 애쓰며 상자를 기억 속에서 지워냈다.
 “밑으로 가자. 오키나와라던가. 따뜻한 곳으로.”
 “당신 북쪽도 가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었어? 갑자기 웬 남쪽?”
 “이제 겨울은 싫어서.”
저 멀리 나를 잊어버린 겨울 속 그를 생각하며 말했다.




 웹연재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영어제목인 the fall of the forgotten man 의 fall은 가을이라는 뜻도 있지만 떨어지다, 낙하하다 는 의미도 있기에 써봤습니다. 자신의 안드로이드와 행복한 오이카와를 본 진짜 이와이즈미는 저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하네요.


다음 편인 [겨울편]과 [그 다음 봄 편]은 다가올 2월의 급좌온리에 회지로 나오게 됩니다.

한달에 한편인 늦은 연재속도였지만 봐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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