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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심원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판사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럼 피의자는 일어나서 마지막 변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곧 검은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 하나가 법정 앞에 섰다. 배심원들을 뒤로하고서 그는 울먹이며 말을 잇는다.
 “여러분, 저는 제가 하는 일에 만족하며 살고 있던 정말 평범한 시민입니다. 그런 제가 검사님이 말씀하신 범죄들을 저지른 범죄자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네요. 저는 이때까지 제가 했던 일에 그 어떤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배심원 분들과 판사님은 제가 검사님이 얘기 하는 것처럼 사악한 범죄자로 보이나요? 저는 갑자기 일터에서 끌려나와 자백을 강요당했을 뿐입니다.”
 남자의 마지막 말은 울음에 뭉개져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그 울음에 마음 아파하는 가운데 판사의 오른쪽 편에 앉은 한명만이 책상을 치며 분노했다.
 “거짓말입니다!”
 의자가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는 검사석에서 벌떡 일어나 피의자를 삿대질하며 외쳤다.
 “다 저 자식한테 속고 있는 거라고요!”
 법정은 소란스러워지고 결국 그는 법정경찰들의 제지를 받고 다시 제자리에 앉혀졌다. 그리고 반대편의 변호사가 일어났다.
 “자 배심원분들은 선량한 시민의 생사여부를 쥐신 겁니다. 무고한 한명의 시민을 모두의 품으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판사봉이 내리쳐지고 배심원들은 눈물을 훔치며 그에게 무죄선고를 내렸다. 결국 그날의 피의자는 훌쩍이는 얼굴로 웃으며, 고맙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수갑이 풀리고 포승줄이 풀렸다.
 사건의 끝이었다.

 모두가 웃는 와중에 한 사람만이 분노했다. 법정에서 퇴장하는 피의자는 검사를 스쳐지나가며 작게 속삭였다.
 “검사씨는 나 못 잡는 다니까 그러네?”


*2
 10월의 어느 날 벌어진 사건은 굉장히 단순하고 황당한 일이었다. 도쿄시내의 한복판에 있는 평범한 유치원에서 한 무더기의 금이 나온 것이다. 그것도 원아들의 외부 활동 중 하나인 모래놀이 중에, 누가 흘렸다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일반적인 성인 남성이 양손으로 들 수도 없는 총 100kg의 금이. 시세로 따지면 약 4억4,850만5천엔이었다. 그 즉시 유치원은 패닉에 빠졌다. 그 중 유일하게 정신을 차린 교사 한명이 다급하게 112를 눌렀고, 발견 13분만에 출동한 경찰은 당시 원아들과 같이 있었으며, 유치원의 담당자이기도 한 원장 오이카와 토오루(29세)를 사정청취를 위해 조사실로 데려왔다. 거기까지는 운 없이 어느 범죄에 말려든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조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칙. 딸깍.
 ‘저는 늘 제 일을 사랑하고 있어요. 이 일에 자부심도 가지고 있죠. 유치원 밑에서 금이 발견됐고 최초 발견자가 저와 아이들이니 당연히 제가 의심을 받겠지만 저는 정말로 그러지 않았어요. 제가 왜 금을 유치원 밑에 묻었겠어요?’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내가 듣기에는 명확한 자백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완벽한 위장이었다.
 “젠장!”
 녹음기 옆에 펼쳐진 진술서는 붉은색과 푸른색이 가득했다.
 ‘늘 일을 사랑했다’, ‘일에 대한 자부심’에서는 범죄라는 붉은 글씨와 유치원이라는 푸른 글씨가, ‘발견자가 나라서’에는 애초에 범인이라서 라는 붉은 글씨와 유치원 교사라는 푸른 글씨가, ‘왜 금을 유치원 밑에 묻었겠느냐’는 되물음에는 쉽게 발견될 곳에 묻으면 이득이 되지 않음 이라는 붉은 글씨가 뚫릴 듯이 적혀 있었다. 피고인의 모든 말들은 양면이었다. 애매하게 말을 흐린 것도 아닌 주어와 목적어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 진술들이 가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꺼림찍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어서 파고들어간 그의 주변은 과연 수상쩍었다. 눈빛도, 조사한 주변도, 진술할 때의 행동도 그랬다. 하지만 그런 녀석을 무리하게 기소한 덕분에 나는 지금 직장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이가 갈렸다. 책상에 쌓인 자료들을 가방에 전부 쑤셔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짜증나는 놈 덕분에 얻은 7일간의 정직(停職) 이었다.

 ‘아니 이와이즈미! 내가 시작할 때도 분명 말했지. 증거불충분에 죄다 있는거라고는 죄다 심증뿐이라고. 설득력 없는 간접증거로 기소해봤자 이렇게 될게 뻔하다고! 그래 마음이야 알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일 벌리는 거랑은 다르잖아. 후……. 됐고, 정직기간동안 쉬면서 머리 좀 식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부장님께 몇 번이고 들어 환청처럼 귀에 울리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양손을 들어 주머니를 뒤적여 열쇠를 찾았다. 오른손에는 종류별로 한 캔씩 사버린 맥주들이, 왼손의 가방에는 이젠 신물이 날것같은 녀석에 관한 상세한 자료들이 들어있었다. 뭐 부장님 말씀처럼 죄다 애매한것들 뿐이지만. 한숨과 함께 양손에 짐을 내려놓는 수고를 해서야 겨우 찾은 열쇠는 구멍에 끼워 넣는 수고까지는 필요하지 않았다. 두꺼운 문틈이 자연스레 열렸기 때문이었다. 오늘 집을 나서 출근을 할 때에 분명 제대로 닫았던 문이었다. 그랬던 문은 아무 저항 없이 길을 열었다. 거실의 불이 밝게 켜져 있었다.


 “쯧.”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짐을 던지고서 재빨리 양손에 든 3단봉을 크게 휘둘렀다. 타격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봉의 끝인 거실의 쇼파에는 이제는 정말 신물이 나는 녀석이 있었다. 눈이 찌푸려졌다.
 “안녕 검사씨 이틀만이네!”


*3
 “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범죄자 놈아.”
 3단봉을 손에 놓지 않은 체로 녀석이 멋대로 앉아있는 갈색 가죽쇼파 맞은편의 탁자에 걸터앉아 녀석을 보자 더 가관이었다.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한 주제에 쇼파의 옆에 놓인 것은 아마 옆 마트에서 산 것 같은 식료품들이었다. 그리고 그 손에든 접이식 과도로 사과를 깎고 있었다.
 “내가 범죄자라니 무슨 소리야, 재판에서 죄 없는 시민 괴롭힌 죄로 상부한테 왕창 깨지고 부장검사한테는 정직처분 받고 오는 길인 이와이즈미 하지메 검사님!”
 “아니. 나는 절대로 네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얼굴에 박박 긁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웃음을 띄우고 되물었다.
 “너는 너 혼자 그런일을 할 수 없다고 부정했었지만 요즘은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네가 일으킨 ‘바보 같은 일’에 어울릴 사람정도는 구할 수 있었겠지. 실제로 조사해보니 범죄라고 알면서도 스릴이나 쾌감 때문에 그런 일에 참가하는 놈들이 차고 넘쳤어. 그리고 네가 한 변론대로 ‘오이카와 토오루’가 유치원에서 종일반 아이들을 돌보면서 저녁 늦게까지 유치원 일에 몰두하기만 하는 사람이라면 지하에서 나온 금들이 묻힐 때 가만히 있었을리 없잖아. 총 1t의 어마어마한 양의 금이다. 사전작업부터 시작해서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흔적 없이 할 수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자 산소가 부족해 머리 한쪽이 당겨오는 기분이 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눈앞의 갈색눈을 노려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네 증언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자백이 되기도 해. 결정적으로 네가 범인 같아. 엄청 수상하거든. 감이지만.”
 “심증뿐이잖아.”
 “그렇지만 확증이지. 다른 가능성도 없어.”
 “하지만 그건 검사씨 생각이지! 판사랑 배심원들,  그리고 다른 검사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확실히 얄미운 녀석의 말 대로였다. 달리 반격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녀석을 노려보며 팔걸이를 툭툭 치고 있을 때 녀석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알고 있기는 했지만, 원래 그렇게 직감으로 몰아붙이는 스타일인가? 직장에서 왕따 당할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 거 보면 인망도 있나봐. 역시 검사씨! 아니 지금은 정직중이니까 검사씨는 좀 그런가?”
 히죽이는 얼굴이 짜증났다. 녀석은 빙글거리는 웃음을 감추지 않고 다 깎은 사과를 부엌에서 꺼내온 접시에 올렸다. 양쪽의 작은 귀가 뾰족하게 동그란 눈까지 만든 토끼모양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내 집의 찬장에 있던 포크를 들어 토끼가 된 사과를 찍었다. 정확히 머리 부분을 찍고는 한입에 넣었다. 소리 없는 조용한 소화였다.
 “정직 기간 동안은 검사가 아니니까 따로 부를 호칭이 필요하겠네. 岩泉 一인데 간센(がんせん)이라고 안 읽고 이와이즈미라고 읽는 거 보면 이와테 현 출신인거 엄청 티내는 거 같아서 좋네. 뭐 어쨌든 아직 이름으로 부를만한 사이는 아니고 그렇다고 성만 딱딱하게 부르는 건 싫으니까, 이와이즈미짱...은 너무 길고. 좀 줄여서 이와쨩은 어때?”
 저 범죄자새끼가 뭐라는 거야. 녀석은 입속에서 몇 번 이름을 굴려보더니 외쳤다.
 “입에 딱 달라붙네. 그러니까 이제부터 이와짱.”
 “꼭 말하는게 내 뒷조사는 전부 했고 이제는 내 집에서 살겠다는 말투다?”
 “아, 옷이랑 다른 물건들은 나중에 택배로 올거니까 걱정마!”
 “얼버무리지 마, 그리고 그런건 애초에 집주인한테 물어보고 결정해!”


 깔깔거리는 뻔뻔한 놈을 보면서도 한쪽 머리로는 증거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했다. 아직 녀석한테 내보이지 않은 카드도 있었다. 그리고 이유보다는 녀석이 진짜 범인이라는 증거쪽이 더 끌리는건 사실이었다. 이제 녀석은 사과 하나를 다 먹고는 다시 하나를 찍어 나에게 내밀었다.
 “뭐, 이와쨩한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잖아? 같이 살아보면 내가 범인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을테고. 내가 입으로 얘기해봤자 믿지도 않을 거니까. 그러니까 같이 살아보고 믿어줬으면 해서 말이야. 성경의 말대로 보이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아도 그렇게 믿는 것이야 말로 믿음이라잖아.”
 “사이비냐?”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사이비는 아닌데.”
 “그래서, 뭘 믿어 달라는 건데?”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믿는다잖아. 내가 범인이 아니라고 했는데도 이와쨩은 내가 범인이라고 믿고 있고. 그러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같이 살면서 제대로 알게 되면 제대로 이해 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야.”
 내키지 않았다. 녀석은 자신의 패를 다 보였다는 듯 굴었지만 사실이 아니었고 그에 비해 내가 손에 쥔 패는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은 순간이었다.
 “아, 내 걱정은 하지 마. 유치원은 정리 했거든!”
 “‘아이들을 사랑’하는 착한 시민이라더니?”
 “이와쨩의 정직 기념으로 같이 정직이야. 좋지?”
퍽이나.
 “그나저나 집이 참 좋네. 창밖으로 보기에도 학교나 공원같은 것들도 보이고. 그럼 난 안쪽방을 쓰면 되나?”
 “아니 네 방은 여기.”
 “거실?”
 “아니. 땅바닥.”
 “...일단 이불부터 사와야겠네.”
 녀석이 한숨을 내쉬며 쇼파에 완전히 기댔다.



*4
 “야, 아침 먹어.”
 “아야아아아야야아야! 잠깐잠깐 오이카와씨 머리! 머리뜯겨! 일단 손, 좀 아야야야아악!”
 “위급상황에서도 이렇게 말하는걸 보면 본명이 오이카와인건 맞는거 같은데.”
 “내가 분명 말했잖아?! 본명이라고! 겨우 그런거 때문에 오이카와씨 머리를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잡고 흔든거야? 응? 이와쨩 손 봐, 머리카락이 잔뜩 뽑혔잖아!”
 “네 말을 어떻게 믿어. 그리고 너한테 인정이 왜 필요해?”
 자다 일어나 핵폭탄을 맞은 녀석은 훌쩍이며 일어나 손으로 머리를 빗질했다. 얼굴은 참 멀쩡히 생긴 놈인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말을 걸어왔다.
 “무슨 생각해?”
 “얼굴 멀쩡하고 사지 멀쩡한 놈이 왜 이러고 살까, 하는 생각.”
 “의외로 범죄자들 잡아보면 멀쩡하지 않아?”
 “절반정도는. 나머지는 뭐 약에 절었거나 술에 절었거나 그렇지. 너는 어느쪽인데?”
 “아니 나는 애초에 범죄자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얼굴로 살살 거리며 마찬가지로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을 하는 녀석을 노려봤다. 어디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저 범죄자 놈의 능글거리는 얼굴을 벗겨버릴 수 있을까. 서로 눈치만 보며 거실을 서성거리다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났다. 동시에 생각해보니 어제 먹은게 토끼사과 몇 조각이 다였다.
 “...일단 밥부터 먹고 시작하자.”
동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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