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내 인생 최악의 영화를 본 날이었다. 도무지 극 중 행동이 이해가지 않는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을 더욱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랑하는 애인, 그리고 어딘가 을씨년스럽고도 따뜻한 바람이 부는 곳이 배경인 영화였다. 컴컴한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보면서도 그저 아 최악이구나, 라는 생각만 머리에 떠올랐다. 그 영화관에는 나와 오직 내 옆자리의 한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영화가 시작할 때는 좀 더 북적였던 것 같지만 주인공과 그 애인이 어딘가를 향해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관객들이 영화관에서 나가기 시작하더니 곧 나와 옆 사람만 남게 되었다. 그의 얼굴은 상영관의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았지만 훌쩍이는 소리는 간간이 들려왔다. 대체 이 영화의 무엇이 그를 그렇게 슬프게 한 것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영화는 그럼에도 계속됐다. 저 뒤편에서 들리는 필름 감기는 소리와 영사기 소리만을 배경으로 해서 스크린에는 또다시 다른 장면이 시작되었다. 둘은 열심히 또 열심히 살아갔다. 그러다 싸우기도 하고 다시 어딘가로 걸어가기도 하고, 나는 여전히 이 영화가 최악이라 생각하면서도 눈을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옆자리 사람의 울음소리는 이제 점점 더 커져 필름을 넘기는 상영기의 소리도 묻혀버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 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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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자리의 그의 눈물이 무릎을 적시는걸 보자 문득 주머니 속 손수건이 떠올랐다. 내가 챙길 만한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침 잘됐다는 생각에 그에게 건네 보았지만 그는 아무대답 없이 이제는 손에 얼굴을 파묻어버릴 따름이었다. 그래도 무릎에 손수건을 놓아주고 다시 얼굴을 영화로 향했다. 이제는 둘만이 나오는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번화가를 걷고 있었다. 커다란 건물사이 사이로 걸음을 옮겨 엘리베이터를 타는 둘이었다. 그때 갑자기 옆자리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려는 것일까? 발치에는 무릎에서 떨어진 마른 손수건만이 펼쳐져 있었다. 걸음을 옮기려는 그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는 무어라 말하더니 곧 오른손을 들어 내 손을 떼어냈다. 멀어지는 울음소리와 함께 그는 눈이 아프도록 녹색과 하얀색으로 반짝이는 비상문으로 나가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주워들어 손에 묻은 그의 눈물을 닦아내자 곧 엘리베이터의 도착 음과 함께 영화의 장면이 변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것은 둘이 아닌 주인공의 애인 한명 뿐이었다. 울고 있던 그였다.


 그리고 갑자기 상영관 예고 없이 밝아졌다. 최악의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까만 크레디트에 그와 내 이름이 올라갈 때쯤이야 그 영화가 내 얘기라는 것이 생각났다. 그제야 눈물이 났다. 밝아진 상영관은 여전히 어두운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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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그를 보자 문득 이 최악인 영화를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별 감흥 없는 최악의 영화지만 저렇게 한 사람이 울 정도의 영화라면, 고쳐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옆자리의 그의 눈물이 떨어지는 걸 보자 문득 주머니 속 손수건이 떠올랐다. 내가 챙길 만한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침 잘됐다는 생각에 그에게 건네 보았지만 그는 아무대답 없이 이제는 손에 얼굴을 파묻어버릴 따름이었다. 영화는 아직 중반부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서 계단을 내려와 우리는 비상구로 향했다. 그가 무어라 내게 말한 것 같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상영기가 째깍이며 필름을 돌리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비상구의 문을 열었다.

 “괜찮아. 아직 중반부니까, 같이 고쳐보자.”

 “응. 아직, 이니까.”

 나보다 머리 반개는 크면서도 어린아이같이 눈물로 범벅져 우는 그의 얼굴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손수건은 아마 떨어트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비상구 바로 앞의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우리는 그 옆의 계단으로 향했다. 아직 영화는 끝나지 않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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