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냉장고에 있던 가지를 길게 반으로 가른 뒤 1cm 간격으로 자른다. 같이 볶아줄 피망은 꼭지와 씨를 칼과 손을 이용해 제거한 뒤 가지와 똑같이 가로 세로 1cm 크기로 썰어준다. 가지와 피망을 볶을 팬을 달구기 위해 불 위에 올려놓은 틈에 미리 간장과 소금, 후추로 양념해두었던 닭고기를 꺼내 밀가루를 묻힌다. 그리고 달궈진 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가지 피망 순으로 넣고 3분정도 가볍게 볶아준다. 그 옆에는 튀김용 팬에 마찬가지로 튀김용 기름을 붓고 작게 뭉친 밀가루를 떨어트려 보며 180도 정도로 가열한다. 한입크기의 닭고기들을 퐁당이는 소리와 함께 기름에 담구고 튀겨지는 틈에 다 익은 가지와 피망을 볶는 팬에 불을 끄고 그 상태로 간장과 볶다가 취향에 맞춰서 라유를 같이 볶는다. 완성된 가지피망볶음을 그릇에 옮겨 닮고 아슬아슬하게 익은 닭고기를 더 익어 질겨지기 전에 불투명한 기름종이를 깐 큰 그릇에 옮겨 닮아준다. 마지막으로 밥솥에서 어제 먹던 오곡밥을 두 그릇 퍼내고 냉장고 맨 밑 야채 칸에 있던 레몬을 꺼내 반으로 잘라 김이 올라오는 가라아게 위에 뿌렸다. 두 자루의 수저를 그 옆에 놓자 평소보다 1인분 많은 아침상이 완성되었다.
음식들로 채워진 식탁을 보고 오이카와는,


 “오곡밥에 가지, 피망, 가라아게라니 확실히 엄청 노인네 취향이네 이와쨩.”
 “그럼 굶어.”


 그런 말을 해놓고는 냉큼 자리에 앉아 아침 일찍 이와이즈미의 손에 머리가 뜯겼던 일은 없었다는 듯이 정돈된 머리로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차례로 가라아게, 피망, 가지, 밥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더니 나오는 말이 가관이었다.


 “예상대로 맛있네, 이와쨩. 혼자 오래 살아서 그런가? 그래도 나는 아침은 빵이 좋은데 점심 저녁에만 밥으로 하는 건 어때? 응?”
 “헛소리 하지 마. 집주인이 나고 밥하는 것도 난데 왜 네 취향을 반영해줘야 하는 건데?”
 “그러니까 말이야, 이제 같이 살 거잖아? 이왕이면 동거인의 취향도 좀 반영해 달라 이거지. 아, 그리고 머스터드소스 좀 꺼내줘. 나 튀김에는 꼭 머스터드 찍어 먹거든.”
 “머스터드소스? 집에 없을 텐데.”

 “냉장고 오른쪽 세 번째 칸에 있으니까 좀 꺼내줘.”


 다시 젓가락을 움직여 가지를 라유에 푹 찍은 녀석이 말했다. 하지만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아도 머스터드를 샀던 기억은 나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고 과연 문 쪽의 세 번째 선반에는 노란색 머스터드 통이 구석에  있었다. 손에서 소스 통이 날아가 오이카와의 손으로 향하는 것보다 빨리 이와이즈미의 머리가 돌아갔다. 집주인마저 잊어버린 것을 어떻게 오늘 처음 집에 들어온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아까 전 말했던 ‘혼자 오래 살았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가.


 “밥 다 먹고 나면 몇 가지 물어 볼 거니까.”
 “이건 그냥 감으로 찍은 것뿐인데 말이야. 하지만 그럴 줄 알았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이 가라아게랑 라유소스 생각보다 엄청 잘 어울리는 거 같아. 맛있는데?”


 볶은 야채기름과 같이 둥둥 떠다니는 라유에 심란한 이와이즈미의 얼굴과 태평한 오이카와의 얼굴이 같이 비쳐졌다. 아침 해가 창밖의 붉은 관람차에 걸렸을 무렵이었다.




 해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꼭대기에 걸려 안 그래도 일조권이 좋은 거실에 햇볕이 가득 들어찬 낮11시에 집에 있어 본 것은 이곳에 이사하고 처음이었다. 세어보면 근 5년만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날 정직의 이유와 함께 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심란했다. 주방을 등진 곳에 있는 다갈색 소파에 등을 기대고 반쯤 누워 있자니 다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이와쨩은 커피에 설탕 두 개 넣지?”
 “다 알면서 묻지 말고 자리에나 앉아.”


 그가 마주본 소파 사이의 작은 탁자에 내려놓은 것은 설탕이 완전히 녹아 약간 다갈색을 띈 커피였다. 거기다 어디서 찾았는지 작은 비스킷까지 같이였다. 건너편을 보자 오이카와는 이미 과자를 전부 비우고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냥 간단하게 물을 거니까 똑바로 대답이나 해라.”
 “그런 것 치고는 준비한 게 많은데?”
 “기본 작업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대답하며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턱짓으로 가리킨 소파 옆의 서류철 더미를 오른쪽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합법적으로 조사한 것도 있지만 80%쯤은 홀로 조사한 작은 산 정도로 보이는 3덩이의 서류더미들이었다. 한 번에 다 쌓아놓으면 서류만 해도 한 2m쯤 될 만한 양이었다. 실제 사건을 생각하면 적고 무고 판결을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이 많은 양이었다. 그렇지만 이 서류속의 자료들로는 눈앞에 앉아있는 오이카와 토오루가 범인이라고 확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증거물’은 달랐다. 법원에서 바라는 연관성을 입증하지 못해 결국 재판의 증거물로는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가 범인이라고 믿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이 자료들이 쓸데없는 것은 아니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다. 제 발로 이곳에 온 이상 시간을 헛되게 쓸 생각은 없었다.


 “일단은 그냥 확인 작업부터 시작할거니까 똑바로 앉아.”

 “설마 그 자료들 전부 확인하려는 건 아니지?”
 “그럴 건데?”
 “그거 전부 문답형식으로 물으려면 며칠정도 걸릴 거라고 생각해?”
 “협조만 잘 한다면 10일이면 끝나지 않을까?”


 오이카와는 서류더미와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한손에 컵을 든 채로 굳어버렸다. 말이 10일이지 자잘한 것까지 하면 족히 한 달은 채울 양이라는 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수사의 기본은 기선제압이라고 했다. 비록 어제는 완전히 당했지만 오늘은 검사인 자신이 당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과거 인적사항이 담긴 제1 서류철을 펼치던 순간이었다.


 띵-동, 띵—동
 “한마음 이사센터에서 왔습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이삿짐센터? 혹시 모르는 마음에 현관문 옆에 놓은 야구 방망이와 함께 문을 열자 그 앞에는 정말 노란색 작업복을 입은 이삿짐센터 직원이 커다란 파란색 플라스틱 박스를 안고 서있었다.


 “무거우니까 비켜주세요!”
 “여기 1407호인데요?”
 “네, 1407호. 미나토구 12번지 사립유치원에서 오에도 오피스텔 1407호로 짐 옮겨달라고 하셨잖아요. 11시에 와달라고 한 걸 십분 늦었다고 이렇게 물어보시면 안되죠.”


 퉁명스러운 직원은 다시 뒤돌아 현관 밖으로 나가 같은 크기의 박스들을 차곡차곡 집안으로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문을 좀 늦게 열었죠?”


 천연덕스러운 얼굴의 오이카와가 어느새 현관복도로 나와 웃고 있었다.


 “전부 한곳에 쌓아주시면 돼요. 대금은 선불로 전부 드렸죠?”


 오늘도 저버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번뜩거렸다. 곧 짐을 다 쌓아올린 직원이 수고하십쇼, 라는 말과 함께 문을 닫고 나가버리자 집은 아무소리도 없이 조용해졌다. 한숨이 나왔다.


 “진짜 여기서 살려고?”
 “그럼 가짜로 살겠어?”


 입가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며 오이카와는 짐들을 하나하나 열었다. 어차피 굴러들어온 녀석을 감시할 생각이긴 했었지만 이렇게 나올 줄은 이와이즈미도 예상하지 못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나오는 녀석에게 물러날 성미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럼 오늘 짐정리 겸 대청소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다는 얼굴인 녀석이 얄미워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리고 집세도 내. 여기서 살 거라며. 공짜로 얹혀살 생각은 아니지?”


 그제야 바로 맞받아치지 못하는 녀석을 보며 조금 기분이 풀린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에 집의 배치도를 떠올리자 지금 당장 쓰지 않는 방은 침실 맞은편의 작은 방과 욕실 옆의 창고가 떠올랐다. 창고에 쌓인 안 쓰는 물건들과 5년 묵은 먼지들을 생각하면 답은 하나였다. 오른손을 들어 침실 건너편을 가리켰다.


 “이제부터 네 방은 저기 구석방이다. 그리고 방 크기랑 공동으로 쓰는 부분을 생각해서 집세 는 35%. 불만은 안 들어.”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상자를 열어 짐을 확인했다.
 “아 거기 짐들은 전부 옷이야. 1번부터 5번 상자까지가 옷이고 6번 상자가 잡동사니, 7번 상자가 신발, 그리고 8번 상자가 모자랑 시계. 그리고 나 잠은 침실에서 자는 거 아니었어?”
 “남에 집에 멋대로 들어온 주제에 침실까지 차지하려고?”


 손에 잡힌 두꺼운 서류철로 녀석의 뒤통수를 탕 소리가 나게 한 대 치고 양손으로 옷이 가득 든 파란색 상자를 들었다. 해는 아직도 중천에 떠 밝은 체였다.




 “이와쨩, 나 이제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겠어….”
 “네놈이 그렇게 짐을 많이 들고 온 게 문제였잖아. 도대체 뭔 놈의 옷이 그렇게 많은 건데?”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문제는 그 많은 짐들이었다. 상자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종류의 옷들의 산을 보며 이와이즈미는 질렸다는 얼굴로 원래 침실에서 쓰던 기다란 행거를 들고 왔지만 옷의 양은 그것으로도 역부족이라 둘은 끙끙대며 창고에 있던 플라스틱 서랍장까지 꺼내야했다. 거기서 끝이면 좋으련만 그 다음 열린 상자들도 문제였다. 저 많은 구두들은 다 어디에 둘 것이며 자잘한 물건들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결국 한 시간에 걸친 이와이즈미의 무력이 포함된 회의 끝에 구두는 현관 복도 끝에 쌓기로 약속하고 잡동사니들은 거실 끝, 빈 곳에 상자채로 놓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정리를 대충 끝내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저녁식사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냥 시켜먹기로 하자.”
 “찬성. 완전 찬성이야. 근처에 피자 체인점 있으니까 거기서 주문하자. 파인애플 안 들어간 피자면 뭐든 괜찮지?”


 좀 전 정리시간에 이와이즈미의 주먹에 맞은 오른쪽 뺨을 문지르며 전화기를 들며 오이카와가 말했다. 건성으로 끄덕이며 이제 어떻게 말하지도 않은 자신의 취향을 저렇게 잘 알고 있을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핸드폰 너머의 상대에게 전하는 주문소리를 들으며 이와이즈미는 배달까지 적어도 30분은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몸 상태를 생각하면 아마 어떻게 몸을 움직여 저녁을 먹는다 해도 곧 포만감에 쓰러지듯 잠들어 버릴 것이라는 것도 생각했다.


 “주문이 많아서 오려면 적어도 50분은 걸린데 이와쨩.”
 “그럼 그동안 간단한 것만 물어본다.”


 왼쪽 팔을 뻗어 책상에 올려놓았던 서류더미를 붙잡았다. 기껏해야 0.5kg정도일 것이 지금의 몸으로는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다. 검사가 되고나서 고등학교 때 만큼 운동을 하지 못해 체력이 많이 줄었다고 투덜거리며 그 사이에 꽂혀있던 붉은 펜을 딸깍이며 첫 페이지를 꺼냈다.


 “이름은 오이카와 토오루(及川 徹) 맞지?”
 “네, 이를 급, 내 천(及川)에 관통하다 철(徹)을 써서 오이카와 토오루 맞습니다.”
 “94년 7월 20일 출생.”
 “거기다 정확히 오후 6시 10분 14초 출생이야.”
 “사건발생 1년 5개월 전부터 유치원에 근무한건?”
 “그것도 맞아. 위치야 뭐, 이와쨩도 알 테고.”
 “이번 범행도 네가 저지른 게 맞고?”
 “에이 그건 아니지. 그리고 이번‘도’라니 내가 꼭 전에도 그랬다는 것처럼 들리잖아.”


은근슬쩍 물어본 넘기듯 물어본 질문에도 오이카와는 피곤에 절은 오른손을 좌우로 흔들며 구렁이 담 넘듯 대답했다.


 “그러냐.”


 예상했던 대답에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몇 가지를 더 묻고 이와이즈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허리를 편 자세로 앉았다. 기본 인적사항은 틀린 부분이 없었다. 어깨를 가볍게 돌리며 다음에 할 말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너 아침은 빵으로 먹고 싶다고 했지?”
“해주게?”


 소파에서 튀어 오르듯 벌떡 앉은 녀석이 정말이냐는 눈빛을 보냈다.


 “대신에 아침은 네가 차려.”
 “알겠어. 집에 식빵 있으니까 내일은 토스트로 해볼게.”


 생글생글 웃으며 여전히 찌릿한 오른뺨을 비비는 오이카와는 아무리 뜯어봐도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와이즈미가 입을 삐죽였다.


 “정말 내 집에 들어와 살 생각이면 간단한 수칙정도는 지켜. 첫 번째로는 아침은 네가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식사는 기본적으로 일식.”
 “응응.”
 “두 번째로 외출을 할 경우에는 꼭 말을 할 것. 그리고 집에 타인을 들이지 말 것. 물건도 마찬가지. 뭐, 기본적인 건 이정도고 나머지는 문제가 생길 때 말하면 되겠지.”
 “이와쨩 받아들이는 거 빠르네. 나는 당연히 눈뜨자마자 내쫓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동거수칙도 정하고.”
 “너 나가라 한다고 나갈 거냐?”


 입을 삐죽이는 동시에 탁자를 손으로 쳐가며 짜증을 내자 오이카와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박수를 치며 뒤로 넘어갈 듯 웃어댔다. 그때 오른쪽에다가 왼쪽 얼굴도 한 대 칠걸. 아쉬운 생각을 하며 이와이즈미는 마지막 수칙을 꺼냈다.


 “그리고 거짓말 하지 말 것. 이게 마지막 수칙. 이의 있어?”


 오이카와는 턱을 괴며 생각하는 시늉을 하더니 곧바로 대답했다.


 “이의 없음. 자 그럼 이제 피자 먹을 준비할까?”
 “무슨 소리야. 거짓말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는데 바로 다시 물어봐야지. 어서 앉아.”


 싫다는 얼굴을 하는 오이카와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이제 반대로 비웃으며 사건서류철을 꺼냈다. 14개까지 있다고 하자 질렸다는 얼굴을 다시 한 번 크게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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