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게 햇빛이 창을 타고 들어오는 아침 6시가 되기 직전 평소와 같이 이와이즈미의 눈이 떠졌다. 울리기 직전의 알람을 끄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발바닥에 닿는 바닥의 느낌이 차가웠다. 사람이 한명 더 자고 있는 집이 벌레소리하나 없이 조용하다는 걸 생각하면서 조심스레 문을 열고 침실 옆의 작은방을 확인하자 곤히 자는 오이카와가 있었다. 그는 작게 고롱고롱 코고는 소리까지 내면서 녀석은 아직 아침이 온 줄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같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그는 7시 이전에 일어난 적이 없었다. 다시 소리 없이 문을 닫고 천천히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를 꺼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겉옷을 들었다. 아침 산책 겸 집 앞 마트에 재빨리 다녀올 생각이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지만 아직 아침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피부에 맞닿은 공기를 크게 들이키자 폐까지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오피스텔 입구를 빠져나와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는 마트는 여러 가지 생필품을 사기위해 퇴근 후 자주 들리는 곳이라 이와이즈미에게 무척 익숙한 곳이었다. 출발 전 냉장고를 열었을 때 구석구석 빈 칸들이 눈에 띄었다. 혼자서 하루 세끼를 먹는다 해도 3일치였던 것이 입이 하나 늘어버리니 주는 것도 빠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오늘 장을 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 식료품 코너 중 신선칸과 육류는 아직 텅 빈 체였다. 우선 당장 필요한 것만 산 후에 오이카와를 두들겨 깨워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하며 가까운 유제품 코너에서 우유를 집었다. 오이카와는 생긴 것과 달리 저지방 우유는 입에도 데지 않는 녀석이었다. 덕분에 요 며칠간은 가격도 다른 것의 두 배인 870엔짜리 훗카이도산 우유만을 먹고 있었다. 오늘도 두 팩을 바구니에 넣고서 졸린 눈을 비비며 계산대로 향했다. 저번 주까지였다면 7시까지 가볍게 아침을 먹고 출근준비를 했어야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리고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 있는 것이 이와이즈미에게는 훨씬 고역이었다. 청소도 이미 둘째 날에 했고 정리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는데 오늘은 또 무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5일째 반복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다녀왔습-”


 인형이었다. 사람크기의 인형. 하얀 털을 가지고 엄지손톱만한 검은 눈이 박힌 곰이라고 하기에는 좀 기다란 귀를 가진 인형. 눈앞에 사람크기의 인형이 서있었다. 그리고 그 인형이 갑자기 오른손을 들어 이와이즈미의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당황한 이와이즈미는 오른손에든 우유1.2L 두 팩이 든 비닐봉지를 전력으로 휘둘렀다. 머리 하단 부를 짧게 쥔 마트의 비닐봉지로 세 번 정도 후려치자 인형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요 며칠 내도록 듣던 목소리였다.


 “악! 잠깐만! 때리지 말고! 이와쨩!”

 “너, 이 미친놈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과연 인형이 하얀 손을 들어 머리를 벗자 나온 것은 아직 머리정리가 덜 된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복슬복슬한 머리를 빼앗아 그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먼저 얘기안하고 나간 건 이와쨩이라서 그냥 좀 놀래켜 주려고 한 것뿐인데 주먹부터 나가고! 너무 폭력적이잖아. 검사 맞아?”

 “너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는 않은데. 그리고 남에 집에서 그러고 있다는 게 잘못이라고는 생각 안하냐?”

 “남이라니 너무하네. 동거인이잖아! 친구! 그리고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이! 그리고 어물쩍 넘어가지 말라구, 이와쨩. 외출을 할 경우에는 꼭 말을 할 것. 이라고 정한 건 이와쨩이잖아. 그래서 나도 이러고 기다린 건데!”


 안 어울리는 하얀 곰인지 토끼인지 모를 것을 입고 열심히 자신이 화가 난 것을 표시하는 오이카와를 보고 있자니 흥분한 것도 바보같이 느껴졌다.


 “근데 왜 하필이면 그 인형탈인건데?”

 “아 이거 말이야?”


 그 말을 듣고 뭐가 그리 신나는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조잘거리던 오이카와는 설명하던 중 갑자기 인형탈의 가슴팍 부분을 꾹 눌렀다.


 “쨘-! 이것 때문이지롱.”


 오이카와가 누른 가슴 팍 심장이 있을 법한 위치에서 저절로 가슴뚜껑이 열리더니 마치 자명종 시계처럼 분홍색 하트, 그러니까 예상컨대 아마도 심장인 것이 툭 튀어나왔다. 실소가 났다. 촌극이었다. 하얀 인형탈을 입은 잠재적 범죄자가 인형의 심장이 튀어나오는 이상한 장치를 검사에게 자랑하고 있다. 그것도 아침식사도 전인 6시 반에 제대로 씻지도 않은 그 검사의 집에서.


 “...이거 자랑하려고 현관에서 기다린 거냐?”

 “당연하지! 좋아하는 사람한테 재밌는걸 보여줘서 깜짝 놀라게 하고 싶은 건 당연하잖아?”

 “아 그러셔.”


 이쪽이 멋대로 외출했다고 거짓말로 되갚다니 확실한 앙갚음이었다. 웃을 기분도 들지 않아 이와이즈미는 들고 있던 인형머리를 녀석에게 내던지듯 안겨주고 부엌으로 향했다. 봉지 안을 살펴보자 다행히 우유가 터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요즘 우유는 튼튼하게 나와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거실의 불을 켰다. 아슬아슬하게 해가 집 근처 강에 위치한 관람차에 걸려 특이한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어느새 따라 들어온 오이카와는 그 큰 인형 옷을 벗어서 심장까지 잘 넣어주더니 팔을 걷어붙이고 찬장에서 식빵을 꺼냈다.


 “관람차라도 보면서 앉아있어 금방 되니까.”


 그리고는 금방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범해 보이는 사근사근한 28살의 청년으로 돌아가 동요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토스터기의 선을 꽂는 것이었다. 이와이즈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더 이상 일일이 의아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적당히 맞춰주며 오늘은 또 무얼 캐물어야할까 생각할 뿐이었다.


 “식료품 다 떨어져서 밥 먹고 장보러 가야해. 두 명 분이라서 나 혼자 사오기는 무리니까 너도 준비해라.”

 “오케이. 이와쨩, 토스트에는 케챱 듬뿍 맞지?”

 “알고 있으면서 일일이 묻지 말라니까 그러네.”

 “알았어.”


 등 너머에서 키득거리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뉴스를 틀었다. 날이 맑다던가 근처 강의 백조들이 많이 번식해 관광객이 늘었다던가 하는 평화롭고 몰라도 좋을 시답잖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오이카와와 함께한 6일째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주말보다 한적한 평일 오전의 마트를 휘저어 필요한 식료품을 카트 하나가 가득 찰 분량만큼 사자 건장한 성인남성 두 명이서 들기에도 약간 버거운 양이 되었다. 각자 커다란 장바구니 하나씩을 들고 낑낑거리며 걸어가는 꼴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이와쨩, 도대체 고기는 왜 이렇게 많이 산거야?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까지 전부 사버리다니 하루에 몇 번이나 고기를 먹는 거야? 혹시 이와쨩은 육식동물이에요? 응?”

 “그러는 너야말로 빵은 왜 이렇게 많이 산건데? 그것도 다 같은 우유빵이라니 지겹지도 않냐? 무겁지야 않지만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해서 들기 불편하잖아.”

 “쓸데없이 새로 나온 시리얼 같은걸 산 이와쨩 쪽이 더 너무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 공간이라면 이게 훨씬 더 많이 차지한다고? 거기다 봐, 모서리가 뾰족해서 다리에 부딪힐 때마다 아파!”


 이와이즈미는 제 머리보다 반개 정도 더 큰 오이카와를 흘기더니 가까운 정강이를 걷어찼다. 악! 아파! 맞은 다리를 들고 우는 소리를 하는 녀석을 보자 그제야 속이 좀 시원했다.


 “이거 아침 것 복수지?”

 “그럴 리가 있냐. 이미 아침에 하나씩 해서 남은 거 없잖아?”


 뻔뻔한 표정으로 올라가려는 입 꼬리를 막지 못한 체 시치미를 뚝 떼는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보고 오이카와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는 고개를 돌려 두 개 빚졌다는 둥 무어라 궁시렁 거렸다. 그 꼴이 또 보기 싫어서 한 대 더 칠 요량으로 다가가니 벌써 눈치를 챘는지 짐을 들쳐 메고 공원으로 도망가 버렸다. 똑같이 달려 도착한 공원에서 오이카와는 근처 벤치에 짐을 내려놓고는 뒤를 돌아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평일이라 사람이 없는 어린이용 미끄럼틀 위로 뛰어 올랐다.


 “메-롱 이와쨩 못 올라오지?”

 “못 올라가는 게 아니라 안 올라가는 거지. 28살이나 먹고 미끄럼틀에 올라가다니 안 부끄럽냐?”


 놀리는 말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오이카와는 어린아이같이 웃으며 기껏해야 자기 머리께 높이에 있는 미끄럼틀을 타고 모래사장으로 내려왔다. 평범하지만 테가 나는 밝은 회색의 단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어린이용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성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유머감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쫓아가던 것도 멈추고 오이카와가 짐을 내려놓은 벤치에 똑같이 앉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서 힘을 뺀 고개를 가볍게 돌리고 있자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오전인 것 같았다.


 “이와쨩 이것 봐!”


 고개를 돌려 보자 이번에 그는 미끄럼틀 옆의 정글짐의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라도 된다는 냥 말을 건네오는 그에 화답해 이와이즈미도 손을 흔들었다. 오이카와는 마치 원래 그곳에 있었던 냥 구는 것에 무척 능숙한 인간이었다. 유치원에서의 평판도 그러하다고 서류와 조사원들이 말했었다. 오이카와는 아직 입을 열지 않았지만 자신이 추측하는 그가 저질렀을 지난 범죄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약간 보이는 것도 같았다. 긴 한숨이 달궈지기 시작한 공기를 들이켜고 빠르게 내뱉었다. 이 일을 시작하고 직감이 틀렸다 생각한 적은 없었다. 틀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리고 저번의 그 일에서도 틀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꼭 오이카와와 함께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번만큼은 자신이 틀리지 않았을까? 하는. 이게 다 저 녀석이 입을 열지 않아서였다. 제대로 말하는 게 없는데 어떻게 직감이 맞는지 확인한다는 말인가. 이와이즈미는 흔들던 손으로 머리를 거칠게 털어냈다. 다시 한 번 숨을 들이쉬는데 머리에 지는 그림자에 고개를 들자 오이카와가 눈앞에 서있었다.


 “다 놀았으니까 집에 가자 이와짱.”

 “짐은 전부 네가 들어 쿠소야.”


 일어나면서 오른쪽 다리를 들어 방금 전 찼던 부분을 다시 한 번 걷어찼다. 이번에는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와쨩 여기 카페오레. 우유가 맛있어서 이번에는 평소보다 좀 더 넣어봤어.”

 “아 땡큐.”


 평소보다 옅은 갈색 빛의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자 확실히 우유가 맛있어서 그런지 이전 것보다 맛있게 느껴졌다. 마침 목이 탔는데 잘됐다고 생각하고 이와이즈미는 말을 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네가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범죄는 큰 것만 꼽자면 국제은행 역 강도사건이랑 코토쿠 기업 엽기 협박사건, 신주쿠 블랙아웃 사건, 그리고 이번 유치원 금괴사건이라고 생각하는데.”

 “용케 죄다 미제 사건이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전부 내 관할구역에서 일어난 네가 할법한 일이거든. 게다가 네 덕분에 야근도 실컷 했고.”

 “오이카와씨 덕분이라니. 그건 아니지.”


 샐샐 웃으며 녀석은 교묘히 모사꾼 같은 혓바닥을 놀렸다. 마치 옆에서 우연히 들린 소문에 재미있어하는 제 3자 같은 태도였다.


 “오이카와씨가 직접 저질렀다니, 그렇지 않으니까 거짓말 한적 없네요. 그리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거 아냐? 그런 이야기는 친구나 연인한테만 할 수 있는 속 깊은 이야기잖아. 이와쨩 말대로라면 우리는 그냥 남인데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어.”


 그치? 되물어 오는 오이카와의 얼굴이 짜증나 서류철을 뒤로 휙 던져버렸다. 종이들이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해 줄 녀석도 없는데 있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

 “하지만 이와쨩이 나랑 우선 친구라고 인정해 준다면 서로 하나씩 묻는 걸로는 할 수 있어.”

마지막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일부러 눈을 게슴츠레 뜨고 조금 전 오이카와가 한 말을 다시 말했다.

 “친구한테는 속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다며? 왜 서로 하나씩인데?”

 “에이 아무리 친구라도 전부 얘기하기는 부끄럽잖아. 그 정도는 연인이 되고 난 후지! 어때?”

 “그럼 친구인걸로.”


심드렁한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오이카와는 반쯤 남아있던 이와이즈미의 카페오레마저 한 번에 비워버렸다. 그러면서도 곧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지금은 친구니까 녹음기 전원부터 내려줘. 어차피 지금 내가 하는 말 그대로 녹음한다고 해도 한번 무죄판결 나온 재판은 못 뒤집는 거 알잖아."

눈치가 빠른 녀석이었다. 투덜거리면서 내 안주머니에 들어있던 녹음기의 전원을 내렸다.

 “이와쨩은 사람을 쏜 적 있어?”


눈을 빛내며 녀석이 물은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딱히 숨길 일은 아니었다. 답은 흔쾌히 나왔다.


 “임무 차 몇 번 있어.”

 “다행이네.”

 “왜?”

 “원래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간단하거든. 자 이와쨩 나한테 바로 하나 물었으니까 이번에도 내 차례지?”


아차. 이와이즈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함부로 말을 한 것이 실수였다. 그리고 그가 한 대답도 이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수확이 없었다. 가볍게 한숨이 나왔다.


 “그래 이번엔 또 뭐?”

 “서류를 조작한 이유가 뭐야?”


 눈이 웃고 있지 않았다. 오이카와녀석이 그걸 어떻게 아는 것일까. 이미 종결처리가 나서 자료도 동결된 것이었다. 다리에 촘촘한 구멍이 나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무슨, 서류?”

 “지금 이와쨩이 생각하는 그 서류. 3쵸메 의대생 아내살인사건에 혈흔흔적 서류 말이야. 왜 그랬어?”


응? 보채는 물음이 아니었다. 다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눈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몇 초가 지났을까 먼저 시선을 돌린 건 이와이즈미였다.


 “친구니까, 말 못해.”

 “나도 마찬가지야 이와쨩.”


 오이카와가 턱을 괴고 웃었다. 입에서 달짝지근한 카페오레 맛이 느껴졌다. 옅은 피 맛이 섞이는 것 같았다.


 “그럼 우리 게임이나 할까! 오이카와씨가 직접 만든 게임인데 어때?”


 오이카와가 거실 구석에 놔두었던 잡동사니 박스위에 놔두었던 아침의 인형을 내리고 뒤적이더니 간단한 지도모양의 처음 보는 보드게임이 나왔다. 하지만 이와이즈미의 머릿속으로는 별로 전해지지 못했다. 머리에는 다시 한 번 그때의 판결이 떠올랐다. 그때 사건의 범인은 유죄였다. 그 글자가 눈앞에 가득 차 오이카와가 꺼낸 보드게임의 주사위가 십면체라는 것도 보지 못한 체였다.




 도쿄지구 소속 타카시 부장검사는 그날도 평소 업무인 서류처리를 하던 중이었다. 뻐근한 어깨를 돌리면서 머리로는 오늘 남은 서류가 얼마일까 생각했다. 자료열람 신청서는 오전 중에 다 처리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인사와 징계관련 서류들뿐이었다. 오랜만의 정시퇴근을 바라며 다시 빠르게 사인을 하던 중 불현듯 고집이 쇠심줄 같은 젊은 후배가 생각났다. 하필 岩이라는 글자를 서류에서 발견한 탓이었다. 달력을 보자 내일이면 그 후배의 근신처분도 끝나 복귀를 하는 날이었다. 이와이즈미를 생각하면 머리한 구석이 아파왔다. 그가 검사로서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사건을 물고 늘어지는 고집이 위에서는 좋게만 보이는 건 아닌 것 같았지만 그 덕에 2년 전 도쿄지구의 재난이었던 ‘3쵸메 의대생 아내살인사건’을 해결했기 때문에 그는 그 후배를 까다롭지만 좋은 후배이자 검사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범인지목의 이유로 감과 심적 증거를 들었다. 물론 저번도 그랬던 것이 더 파보니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나와 범인이 자백을 했었지만 이번 것은 상황이 나빴다. 괜히 의기소침해지지 말아야 할 텐데. 일부러 기분이 상할까 근신동안 안부전화는 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괜히 손이 전화기의 다이얼로 움직였다. 아무 일 없는 평화로운 날이었다. 그런데 그 평화를 벼락처럼 날아온 날카로운 목소리가 깨트렸다.


 “타카시 검사님!”


 평소에 소리를 높일 줄 모르던 후배검사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녀가 평소의 서류처리 중이던 책상에 펼친 사건의 상황은 충분히 그럴만한 것이었다. 타카시 부장검사는 들고 있던 수화기의 다이얼을 재빨리 눌렀다. 전화를 받을 사람은 이전과 같았다. 내용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와이즈미! 대형 사건이다, 근신은 어차피 오늘 정오에 끝이니까 얼른 복귀해!”



 “나 나간다!”


 이와이즈미는 수화기 너머의 다급한 목소리가 체 끊기기도 전에 옷장에 걸려있던 정장 윗도리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오이카와는 그런 이와이즈미의 모습을 그저 평균보다 긴 하얀 손을 흔들며 배웅할 뿐이었다. 집주인이 나가 조용해진 집에서 동거인도 곧 외출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다듬고 진한 초콜릿색의 트렌치코트의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다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럼 나도 외출해야겠네.”


 집주인과 동거인이 나간 집은 곧 조용해졌다. 커다란 인형만이 남아 집구석을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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