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신문 1면은 전국을 강타한 무더위에 관한 기사였다. 언제부턴가 매년 슬금슬금 오르던 여름날의 최고기온은 올해 들어 피크를 맞기도 전에 예년을 훌쩍 넘어 44〬 C에 다가가고 있었다. 자연히 머리카락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어깨소매로 닦고 신문을 넘겼다. 그 다음 면에서도 신문은 살인적인 더위 때문에 쓰러진 사람이 100명을 넘었다던가, 병원 응급실 환자가 나날이 늘어나 이제는 의사들이 쓰러져간다던가 하는 것들과 함께 지면의 남은 3분의 1은 에어컨과 같은, 그런 소식을 기뻐할만한 회사들의 광고가 함께 쓰여 있었다. 그중 오른편 가장 구석, 매머드 같은 광고에 밀려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자그마하게 적힌 것은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줄어 바다코끼리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기사였다. 멀리 북극의 이야기를 눈으로  읽어 내려가면서 오른손으로는 냉장고에서 막 꺼내 차가운 계란을 손에서 몇 번 굴리고 깨트렸다. 올리브유를 흩뿌리고 달군 프라이팬에 올라간 달걀이 빠르게 익어가며 줄어드는 동시에 기름을 내뱉었다. 기사의 막바지에서 기자는 빙하가 녹는 것이 이제는 너무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린지라 더 이상 아무도 그에 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며 한탄하고 있었다. 꽤나 설득력 있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전자레인지의 불을 높여 단숨에 반숙으로 익혀낸 계란을 그 빙하처럼 새하얀 접시위에 올려 식탁으로 옮겼다. 동시에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사람이 비척이며 부엌으로 걸어왔다.


 “이와쨩, 신문에서 그러는데 지구온난화 때문에 바다코끼리들이 죽어간데.”

 “그래? 그리고 오늘 아침은 반숙에 토스트?”

 “응, 냉장고에 마침 계란이 남았길래. 좋은 아침이야 이와쨩.”


 오늘의 최고온도는 44.7〬 C. 8월의 무더위 한복판이었다.



13층의 바다코끼리




 “이와쨩 오늘 강의는 3시면 끝나는 거지?”

 “일단 시간표는 그런데 내일 학회 때문에 교수님한테 불려갈거 같아서 넉넉잡아 한 6시쯤에 들어올 거 같아.”


 빠른 대답만큼 토스트가 빠르게 그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이와쨩은 뜨거운 것도 잘 못 먹으면서 바쁜 아침이면 꼭 뜨거운 토스트와 계란을 서둘러 먹다가 입천장을 데이고는 했다. 오늘도 지각까지 조금 아슬아슬한 아침 9시 강의 때문에 내 뒤의 시계를 곁눈질하며 세입 만에 식빵 하나크기의 토스트가 전부 입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입천장이 데였는지 토스트 옆에 같이 따라놓은 차가운 우유를 한 번에 들이켰다. 아침마다 차가운 보리차나 우유를 따라놓게 된 건 이와쨩과 같이 살게 된 이후에 생긴 버릇이었다. 애초에 일찍 일어나서 오이카와씨랑 같이 아침도 하고 얘기도 하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불만을 끝이 살짝 터진 노른자와 같이 집어넣었다. 누가 구웠는지 담백한 맛이 느껴졌다.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컵을 내려놓는 동시에 침실로 뛰어가 옷을 걸친 이와쨩은 오늘도 뒷머리를 덜 빗은 채로 빠르게 현관으로 뛰어갔다. 눈은 내가 아닌 손목의 시계에 고정되어 있었다. 남은 흰자를 토스트위에 올리고 입안에 넣으며 말했다.


 “사랑해 이와쨩. 오늘도 잘 다녀와.”

 “응.”


 오전부터 오후까지 스트레이트로 이어지는 이와쨩과 달리 오늘의 내 시간표는 달랑 오후수업 하나만 있는 시간낭비 시간표였다. 도보 30분, 총 왕복시간 1시간을 걸어서 1시간 반짜리 수업을 들으러 가야하는 이유를 생각하며 베란다 쪽 창문을 열어 급히 지하철역으로 뛰어가는 이와쨩을 턱을 괴고 바라봤다. 13층의 높이에서 태양빛에 눈을 찡그리며 바라보다 어딘가 이상한 점을 찾았다.


 “저 티셔츠 내껀데.”


 어쩐지 나가던 중에 보니 품이 좀 크더라니. 뭐 아무렴 어때. 귀를 울리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머릿속에는 오전 중에 해야 하는 일들과 언제쯤 집에서 나서야 하는지, 그리고 녹아가는 빙하위에서 울고 있는 바다코끼리가 떠올랐다.




 체육 지도자와 체육인재를 키우기 위해 신설했다는 대학교의 교양은 학생들을 그렇게 만들기 전에 죽이고 있었다. 눈만 움직여 강의실을 훑어봐도 이미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꾸벅였다. 어차피 대학 배구리그 오프시즌에 간간히 들으며 출석점수만 쌓으면 되는 강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리그의 오프시즌인 학생들인지라 교수도 딱히 학생들의 반응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저 간간히 헛기침을 콜록 이며 인쇄물을 읽어 내려갈 뿐이었다. 나도 지루함에 몸을 비스듬히 창에 기대고는 핸드폰을 꺼냈다. 볼에 닿는 감촉은 시리지만 창밖에서는 더위가 한창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제일 먼저 메시지를 눌러보지만 답신이 없는 내 문자뿐이었다. 지금쯤 한창 전공수업 중이겠지. 그래서 못 보는 거겠지. 비록 내가 집을 나선 후에 한번, 수업 시작 전에 한번, 그리고 수업 중에 한 번 보냈지만 핸드폰 한번 못 들여다볼 정도로 바빠서 못 보는 거겠지. 그럼 그럼. 훌륭한 자기 합리화. 10점 중에 10점이에요. 그런 내 생각에 응답하듯 에어컨의 바람이 더 힘차게 내 쪽으로 불어왔다.


 “이정도면 녹던 빙하도 다시 얼어붙을 정도네.”


 옆 학생에게도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며 다시 핸드폰을 들고 검색엔진에 바다코끼리를 검색했다. 오늘 신문에 기사로 났던 것처럼 뉴스 면에 들어가자 관련 기사가 주르륵 나왔다.


 ‘기후변화로 삶의 터전을 잃은 바다코끼리.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평소 빙하 위가 주 서식지인 그들이 북극이 아닌 알래스카까지 모여 들게 된 이유는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북극의 빙하가 줄어 미국 알래스카의 포인트 레이 해변까지 오게 된 것. 세계야생동물기구(WWF·The World Wildlife Fund)는 "북극은 지구상의 어느 곳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온난화를 겪고 있다" 며 "(바다코끼리가 몰려든 모습처럼)극단적인 이벤트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상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속 바다코끼리 두 쌍이 멀거니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죽어간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들은 자신들이 죽어간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머리위에서 부는 바람이 다시 한 번 내 옆을 스쳤다. 오늘 아침의 구석의 작은 기사도 그렇고 핸드폰 속의 기사도 지구온난화의 잘못으로 바다코끼리가 죽어간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신문과 스마트폰도 지구오염의 대표적 주범이라고 누가 말했던 것 같은데. 또다시 교수가 헛기침을 했다. 더위에 지친건지 추위에 지친건지 콜록 이는 그의 뒤의 새하얀 화이트보드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교수가 든 마커에 따라 이곳저곳 줄어드는 하얀 빙하도. 다시 그 빙하도 얼릴 듯 한 바람이 불었다. 이와쨩의 티셔츠를 입었지만 추위가 느껴졌다. 여전히 사랑한다는 메시지의 답장은 없었다.





 이와쨩과 내가 같이 사는 집 벽면에도 하얀 화이트보드가 걸려있다. 강의실의 대형 보드와 비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 두 사람의 삼일분의 일정과 서로에게 할 말이 적히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그런 보드의 꼭대기에 날짜와 夏(여름 하)가 쓰여 있고, 중앙에는 기다란 선을 긋고서 각자의 일을 써놓고 3년간 살았다. 첫 1년 동안은 낯선 도시에서 적응을 한다고 이렇게 저렇게 서로 필사적이었던 것 같은데, 곧 도쿄에 적응한 우리는 같은 화이트보드에 적지만 점점 서로 알 수 없는 것들만 쓰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내 쪽이 텅텅, 이와쨩쪽이 한가득 이었다. 대학교 3학년, 프로 배구선수를 지망하는 대학배구선수인 나에게 있어 오프시즌에 적을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 오늘 집안일은 전부 내차지네. 심심한데.”


 무더위에 흐르는 땀방울이 옷을 적셨다. 최고온도 44.7도가 무색하지 않게 방에 발을 들일 때부터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주황색 직사광선이 방안에 가득 들어차 발바닥부터 녹이는 것 같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이와쨩 쪽의 화이트보드를 봐도 학회라느니 천문관측 동아리라느니 영 모르겠는 것들뿐이었다. 전에는 그래도 끈질기게 물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포기해버렸다. 모르는걸 어떻게. 그리고 가시광선보고 주황색이라고 한 걸 들으면 이와쨩은 분명 대폭소라도 해버릴 것이다. 저번에도 그랬었지. 빛이 어떻게 주황색이냐며 바닥을 구르던 애인에게 체육과라 미안하다며 화를 냈었다. 그때 웃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들었었던가? 아무렴 어떤가. 강의가 끝난 뒤 단골 DVD 렌탈점에서 빌려온 비디오를 플레이어에 넣어놓고 집안일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 핸드폰의 알람이 울렸다. 예상하는 답변일 것 같지만 그래도 약간 기대를 하며 화면을 켰다.


‘응’ - 3時15分


 사랑한다는 말에 답변이 ‘응’이 고작인 애인이라. 곱씹으며 빨래바구니를 들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언가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왜 계속 바다코끼리를 찾았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바다코끼리였기 때문이었다. 사랑이 식어서 죽을지도 모르는 바다코끼리. 우리는 권태기였다.




 “나왔어.”


이와쨩은 평소처럼 돌아왔다. 아침에 얘기한 6시에 조금 못 미치는 시간이었다.


 “이와쨩 오늘은 뭐했어?”

 “뭐 평소처럼 강의 듣고 동아리 일정 정리하고, 교수한테 불려가서 심부름하고 그렇지.”

 “아니 그렇게 대충 말하지 말고 자세하게 말이야. 그리고 오늘 점심은 어땠다던가, 강의에 어떤 게 재밌었다던가 그런 거 있잖아.”

 “오늘 강의에서 들은 건데 해가 진후에 동쪽하늘이 어두워지는 건 단순히 해가 져서가 아니라 지구의 그림자가 대기에 투영돼서 그런 거래.”

 “그거 처음 발견한 사람은 로망이 없는 사람일 것 같네.”

 “그래도 멋지지 않아? 지구의 그림자라니.”

 “아 나도 교양시간에 배운 거 있어!”

 “점심시간 직후라 늘 잔다는 그 수업?”

 “에이에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잖아.”

 “그래서 뭘 들었는데?”

 “요즘 바다코끼리들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북극이 아니라 알래스카에서 모여 산데.”

 “...그거 강의 안 듣고 핸드폰으로 찾아본 거지?”


 서로 얘기하는 게 어긋나는 대화가 계속됐다. 내가 생각하는 이 어두운 생각이 잘은 모르지만 네가 얘기한 지구의 그림자처럼 너의 그림자일까 하고 묻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네가 늘어난다는 사실이 이토록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다. 대화를 억지로 마무리하고 정리해놨던 반찬을 꺼냈다. 한여름의 풍등소리가 창 너머로 들려왔다.




 “이와쨩 이번 여름에 시간돼?”

 “얼마나?”

 “뭐 적어도 삼일 연속으로? 우리 이번 여름에는 같이 아무대도 못 갔잖아.”


이와쨩의 시선이 뒤의 화이트보드와 달력을 향했다. 빽빽한 글씨들 속에 나는 없었다.

 “안 될 거 같은데. 이번 달은 학회로 계속 바쁘고 말부터 다음 달 초까지는 천체관측 때문에 저녁부터 나가야 할 것 같아. 그래도 다음 달 중순부터는 어떻게 될 것 같은데, 그때 주변 공원으로 캠핑이라도 갈래?”

 “다음 달은 내가 시즌이라서 못 움직여. 그럼 올해는 아무대도 못가는 건가?”


 소파에 앉아있는 이와쨩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허벅지에 머리를 기댔다. 반바지라 볼에 바로 뜨끈한 살이 맞닿는 게 느껴졌다. 이와쨩의 얼굴은 읽고 있는 잡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너 밥 먹고 그렇게 바로 누우면 소된다.”

 “매일 운동하니까 괜찮네요. 이렇게 누워도 고등학교 때보다 키도 더 컸거든? 아, 물론 오이카와씨는 이와쨩이 소가 돼도 사랑할거지만!”


 실없는 고백을 해봐도 잡지너머에서는 그저 그래?, 라는 소리만이 넘어왔다. 더 이상 물어봐도 답도 안 해줄 것 같아 리모컨을 들고 비디오 플레이어의 전원을 켰다. 텔레비전의 화면은 이와쨩이 오기 전까지 보던 부분부터 자동 재생되기 시작했다. 화면 속에서 멀쩡하던 빙하덩어리 하나가 큰 소리와 함께 부셔져 바다코끼리 한 마리가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나레이션은 건조한 목소리로 방금 떨어진 한 마리의 사형선고를 내렸다. 주변의 가장 커다란 빙하가 깨졌기 때문에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 호흡을 하지 못해 죽는다고. 습관적으로 에어컨의 온도를 내렸다.


 “무슨 다큐멘터리야?”

 “위기의 바다코끼리들.”

 “무슨 드라마 제목 같네.”


 그리고는 곧 다시 시선을 과학 잡지에 박고 반응이 없었다. 이와쨩은 나에게 식은 걸까? 고개를 허벅지에 비비며 죽어가는 바다코끼리를 바라봤다.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바다의 색은 시원해 보이는, 아마 예전의 강의에서 들었었던 세룰리언 블루(cerulean blue)였다. 그림물감 같은 녹색을 푼 하늘색의 바다에 바다코끼리는 꼬르륵 잠겨버렸다.


 “이와쨩”

 “응?”

 “할래?”

 “뭘”

 “섹스.”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피고 마주보자 정면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서 눈이 마주쳤다.


 “내가 내일 아침 일찍부터 학회 때문에 나서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했지.”

 “그러면 내가 뭐라고 대답할거 같은데?”

 “예상은 되지만 물어보는 거야. 할래?”

 “예상대로 안 해. 아니, 못해. 내일 꾸벅꾸벅 졸면서 교수님 졸졸 따라다니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 이제 시간도 늦었으니까 그냥 자자. 너도 내일 운동 나가야 하잖아.”


 이와쨩이 손을 뻗어 에어컨의 리모컨을 들어 전원을 내렸다. 창밖에서는 미야기의 여름과 달리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 이와쨩이 지나간다. 고개를 돌려보자 매미소리가 울리는 여름의 학교였다. 짧은 교복상의와 체육복을 입은걸 보면 고등학교 때일까? 막 내 앞을 지나던 이와쨩이 나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그러면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지만 딱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 꿈이구나. 그리고 쳐다본 그의 손에는 선택과목 변경서가 들려있었다. 기억해보면 이와쨩은 2학년 말, 선택과목을 생물에서 지구과학으로 바꿨었다. 그리고 3학년 중반에 올라가서는 비어있던 진학할시 원하는 과도 채워졌었다. 그때의 이와쨩이 내 앞에 서있었다. 다시 한 번 묻고 싶었다.


 ‘그럼 대학교에 올라가면 배구는 그만두는 거야?’

 ‘그만두는 건 아니야. 하지만 직업으로 선수를 선택하지는 않을 거야.’

 ‘왜?’

 ‘다 쏟아 냈으니까. 배구는 지금도 엄청 좋아하고 나중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배구에는 전부 쏟아 부었으니까,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아도 만족해.’


 이와쨩의 입에서 나온 답은 4년 만에 들어도 시원했다. 투명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애초에 처음부터 직업으로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 뭐, 이제 괜찮아.’


 뒤돌아 웃는 모습이 눈부셨다. 이제 괜찮아, 라는 대답의 뒤에는 어떤 날이 있었을까. 분명 초등학교 때부터 한결같이 같은 길을 걸었던 것 같은데 너는 어느새 나와는 다른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네가 사랑스러우면서도 두려웠다. 언젠가 나한테도 그러지 않을까? 그때의 내 머리를 스쳤던 생각은 4년 후의 내 머리에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 물리천문학부 지망인거야? 그때는 분명 바다가 좋다고 했었잖아. 나는 다른 걸 쓴다고 해도 해양이나 그런 걸 줄 알았는데.’

 ‘심해의 끝은 우주라고들 하잖아.’

알쏭달쏭한 답을 내놓고 이와쨩은 다시 웃었다.

 ‘너는 체육학과지? 1학년 때랑 그대로네. 그럼 나 먼저 내러간다.’


 손에서 팔랑팔랑 흔들리는 종이를 보며 이와쨩은 나를 놔두고 복도를 걸어갔다. 지금 분명 꿈 밖에서는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을 상대지만 꿈에서도 외로웠다. 떠진 눈을 이와쨩의 숨소리를 들으며 억지로 눈을 감았다. 여름이 떨어져간다. 발보다 밑인 저 밑바닥으로 떨어져 다시는 올라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물이 났다. 미지근했다.





 뭉친 어깨를 돌리며 옆을 보자 있는 것은 빈 침대였다. 핸드폰을 보니 아침 8시를 막 지난 시간이었다. 창문언저리에 걸어놓은 풍등소리만 요란했다. 크게 기지개를 펴고 살짝 부어오른 눈을 마사지하며 부엌의 냉장고로 걸어가 얼음 팩을 꺼내 눈가에 댔다. 오늘 아침은 혼자 먹어야 했다. 어제 꿈을 꾼 것 같지만 드문드문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 옛날에 이와쨩을 아주아주 사랑했을 때의 기억이었던 것 같았다. 물론 지금도 사랑하고 있었다. 같이 사는 게 좋았다. 이해하지 못할 얘기라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듣는 게 좋았다. 같이 하는 섹스도 좋았다. 시한 놀이도 같이 하는 것이라면 좋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한데.”


 유일하게 대답해주는 매미소리와 함께 아침을 준비했다.




 이와쨩은 교수님의 심부름꾼으로 학회에 불려 가버려서 내가 깨기도 전에 교토로 떠났다. 한여름의 교토라면 분명 푹푹 찌는 무더위의 한복판이겠지. 신문을 들춰보자 어제보다 더 올라간 최고기온이 적혀있었다. 교토하면 생각나는 것은 3학년 1학기 즈음 수학여행으로 갔던 전통거리의 무더위와 언젠가 보았던 역사교과서에 나왔던 교토 의정서뿐이었다. 아마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기후변화 협약에 따라 맺은 의정서였는데. 1997년 12월, 우리가 태어나고 2년 뒤에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기후 변화 협약 제 3차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그것은 아마도 급격히 시작되어버린 지구온난화를 막고 저 멀리 북극에 사는 바다코끼리들을 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정서의 실효성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아마도 선생님이 그랬었다.


 “훌륭한 혼잣말이네. 이게 다 이와쨩이 없어서 그래.”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왼손으로 닦아내며 에어컨 리모컨으로 평소보다 온도를 2도 낮춘 18도에 맞췄다. 어제 저녁에 먹고 남은 반찬들을 대충 집어 입으로 넣으면서 오늘도 신문을 팔랑팔랑 넘겼다. 오늘은 바다코끼리에 관한 기사가 없었다. 기자의 말대로 금방 잊혀져버린 모양이었다. 지구온난화로 위기에 처한 바다코끼리들을 생각하면서 에어컨 바람을 맞고 있다니, 모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일이 더 급했다. 어제는 기초운동도 휴일이었지만 오늘은 학교로 가 오전 내도록 뛰어야했다. 내 하얀색 티셔츠와 이와쨩의 파란 티셔츠를 들고 고민하다 오늘은 내 옷을 입기로 했다. 신문을 접어 문 한켠에 쌓았다. 그리고 바로 현관문을 열기 전에 핸드폰으로 빠르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도 같은 문자였다. 답장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자 곧바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주황색 육상용 트랙 위를 숨 가쁘게 뛴 지 30분 째였다. 실내라고는 하지만 딱히 냉방이 되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굵은 땀방울이 전신을 타고 흘러내렸다. 계속해서 더위가 사방에서 지속되자 어떻게 몸을 움직여 뛰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다리와 팔을 반대로 휘저으며 흰 선만 보며 뛰고 있자 트랙 밖의 동료들이 불러 세웠다.


 “오이카와, 마시면서 해. 오늘 같은 날씨에 계속 그러면 탈수증 걸린다?”


 손에서 넘겨받은 건 평소에 마시던 스포츠 드링크였다. 아무 대꾸도 없이 입구를 열어 마시고 있자 몇몇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그런데 오늘은 눈이 왜 그렇게 부었데. 애인이랑 싸우기라도 했냐?”

 “싸우기는 무슨. 얼마나 사이가 좋은데.”

 “아이고 그러세요. 오늘도 사이좋네. 그래서 그 애인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냐?”

 “교토. 새로운 운석이 어쩌고 하면서 학회 따라간데.”

 “애인이 별이랑 바람나서 삐친 거야?”


 대답 대신 음료수의 밑동을 세게 우그러뜨려 동료의 얼굴에 뿌려줬다. 갑자기 당한 봉변에도 그는 웃으면서 정곡이었냐고 대꾸했다. 나는 대답 없이 땀을 닦던 수건을 내려놓고 다시 트랙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을 그에게 물었다.


 “바다코끼리가 지구가 뜨거워지는 바람에 죽어간다는데, 그게 누구 탓일까?”

 “뭐어, 일단 걔네 탓은 아니지 않으려나. 별 수 있어? 지구가 멋대로 더워진다는데 걔네가 차갑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건 왜?”

 “그렇단 말이지. 땡큐, 다음에 밥 살게.”


 실없는 말에도 똑바로 대꾸해주는 그는 좋은 동료였다. 다시 트랙의 시작점에 서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트랙의 처음은 똑바로 하나의 흰 선으로 이어져 있다, 중간쯤이면 어김없이 두 개, 세 개로 갈라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다시 하나의 결승점으로 이어져서 시작점과 다시 이어졌다. 전력으로 달려 시작점에서 결승점까지 향했다. 갈라졌던 발밑의 트랙도, 이곳으로 오자 다시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무더위가 급하게 숨을 들이 마시는 것과 동시에 들어와 뼛속까지 녹여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괜찮았다. 녹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문자의 답장이 이제는 괜찮은 것 같았다. 다시 시작점에서 자세를 잡았고, 결승점으로 뛰어나갔다.




 문 너머로 13층입니다 라는 엘리베이터의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힘들었어...”


 비척비척 문을 열고 들어온 이와쨩은 그대로 소파에 앉아있던 나를 향해 쓰러졌다. 손에 닿은 볼이 따끈했다. 조금 힘을 줘 주무르자 말없이 가만히 얼굴을 내밀었다. 내민 볼에 입술을 비볐다.


 “우리 못생긴 이와쨩, 오늘도 수고했어. 교수님 심부름한다고 힘들었지?”

 “응. 그래도 이번에는 제대로 에어컨이 빵빵한 곳이라 다행이었어. 저번에는 제대로 냉방도 되지 않는 곳이라 다들 자료 옮긴다고 개고생을 했었으니까.”

 “이번 달은 행사도 더 없다고 했으니까 오늘은 푹 쉬어.”


 계속해서 양손으로 볼을 주무르고 있자 이제는 한 바퀴 돌아 소파에 완전히 드러누운 이와쨩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오늘은 안 묻네.”

 “응?”

 “요 며칠 계속 적어도 하루에 3번씩은 사랑한다고 말 못해서 안달이었잖아. 오늘은 웬일로 1번만 말하나 싶어서.”

 “눈치 채고 있었어? 그럼 응이라는 대답 말고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주지.”


 볼을 죽 잡아 벌려본다. 더욱 못생긴 감자같이 되어버린 이와쨩을 보면서 어처구니없게 웃자 그는 도리어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당연한 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대답이 그랬던 거야?”

 “응이니까 응이지. 달리 할 말도 없고. 나는 그냥 네가 그 말을 하는 게 중요한 건줄 알았는데 내 대답이 중요했던 거야?”


 대답에 성질이나 눈을 세모로 만들고 고개를 돌려 보고 있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물었다.


 “이와쨩한테 사랑은 뭐야?”

 “바다. 너는?”

 “녹아가는 빙하?”

 “무슨 뜻이야?”

 “이와쨩이야말로 무슨 뜻인데?”

 “심해의 끝은 우주라고들 하잖아.”

 “이해안가. 혹시 전에 그런 말 한적 있었나?”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머리 뒤가 간지러웠다. 그래도 이와쨩은 이 이상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는 빙하는 무슨 뜻인데?”

 “말 안 해줄래.”


 심통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버리자 아 그래? 라며 이와쨩은 소파 한구석에 던져놨던 가방을 뒤적여 무언가를 꺼냈다.


 “받아.”

 “웬 거야?”


 이와쨩이 내게 건넨 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비디오였다. 확실히 초등학교를 다녔을 적에 함께 본적이 있는 것이었다.


 “네가 어제 아침부터 바다코끼리 바다코끼리 아주 노래를 부르길래 오면서 빌려왔다. 옛날에 봤을 때 여기서 바다코끼리가 나왔던 것 같아서.”

 “기억해줬구나! 우와아 오이카와씨 너무 기뻐! 정말로! 그런데 궁금하지는 않은 거야?”

 “뭐가?”

 “빙하 말이야.”

 “아무렴 어때. 어쨌든 너는 나랑 사귀고 있고 헤어질 생각인 것도 아닌데 사랑이 이렇고 저렇고 무슨 상관이야. 아니면 뭐 헤어지려고 생각했던 적이라도 있어?”

 “그건 아닌데.”

 “그럼 됐어. 나 씻고 올게. 비디오나 보자.”


 터덜터덜 자리에서 일어난 이와쨩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욕실로 향했다. 나도 다른 말없이 다큐멘터리 DVD를 꺼내 막 받은 비디오로 바꿔 넣었다. 옛날에 들었던 필름 감기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동시에 샤워소리도 들려왔다. 이와쨩이 궁금하지 않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왜냐면 나에게 빙하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면 아마 나는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했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도 된다. 아니 몰라야 한다. 오래 사귀다보니 누가 얼마나 더 좋아하냐는건 시답잖은 소리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들키는 건 싫었다. 이건 아마 마지막 자존심일 것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자존심은 빙하가 다 녹을 때까지 너는 몰랐으면 한다. 그때까지는 한여름의 무더위 같이 질척한 이 사랑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오늘 밤도 후끈했다. 창 너머로 이른 밤의 열대야가 느껴졌다.




 오늘의 신문 1면은 그저께와 같이 전국을 강타한 무더위에 관한 것이었다. 8월의 끝을 향해 가는 날이지만 기세가 꺾이지 않고 더더욱 치솟는 최고기온은 어느새 45°C를 넘어서고 있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불 앞에 서서 기름에 튀김을 하고 있자 씻고 나온 이와쨩이 다가와 밥을 그릇에 담고 수저를 꺼냈다. 오늘은 둘 다 아무 일도 없는 토요일이었다. 신문의 다음 면에는 연이은 살인적인 더위에 쓰러진 사람이 전국적으로 근 200명을 넘었다던가 하는 기사와 함께 그런 소식을 여전히 기뻐하는 에어컨과 선풍기의 광고가 있었다. 그 신문의 세 번째 장, 오른편 가장 구석에 자그마하게 적힌 것은 바다코끼리와 관련된 후속기사였다.


 ‘…바다코끼리는 누구를 탓해야 하는 것일까? 빙하가 녹아내리는 건 그들의 탓이 아니다. 가장 통념적인 이론에 따르면 원인은 지구온난화라고 하며, 또 한편 미국의 보수진영에서는 빙하기와 같이 그저 다가오는 지구의 자연스러운 변화라고도 한다. 그 어떤 것이 이유든 바다코끼리에게는 대처할 방법이 없다. 그들이 그것에 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눈치 좋게  가까운 빙하를 옮겨 다니는 수밖에 없다…….’


 기자가 한탄한 것과 달리 다행히도 꽤 많은 사람들이 기사에 관심을 가져주었는지 후속기사가 다음 주에 준비되었다는 말로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노랗게 둥실 떠오르는 튀김을 재빨리 하얀 그릇에 옮겨 닮고서 굴러다니던 펜을 들어 신문에 바다코끼리의 앞에 한 쌍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오늘 같이 먹는 아침의 메뉴는 이와쨩이 좋아하는 마트에서 파는 공룡모양 튀김과 내가 좋아하는 달짝지근한 계란말이였다. 신문을 식탁에서 치우고 우리는 마주보고 앉아 수저를 들었다.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서 젓가락으로 튀김을 들고 기뻐하는 이와쨩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늘 생각했던 건데 그 튀김 고질라 닮아서 좋아하는 거야?”

 “응.”


 이제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는 열심히 부정하던 걸 별것 아닌 양 끄덕였다.


 “고질라 좋아하면서 닮은걸 먹는 거야? 응?”


 그 말에 정말 잠시 동안 굳은 얼굴로 튀김을 쳐다보던 이와쨩은 왼손으로 주먹을 쥐어 나를 때리는 시늉을 하더니 입에 튀김을 넣고 우적우적 소리가 들릴 만큼 씹어 삼켰다. 그 모습이 더 웃겨서 나는 입을 막을 새도 없이 웃음을 터트려버렸다.



 맴맴 매미가 우는 소리와 빙하가 녹는 소리가 들리는 여름. 이와쨩은 덥다며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켰다. 나는 우리 사랑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건 부서지는 순간에도 역시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끝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빙하가 녹을 때를.


 “죽기 전까지만 녹지 않으면 되니까 말이야.”

 “요즘 어디 안 좋냐? 그저께부터 왜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려?”

 “내가 바다코끼리1, 이와쨩이 바다코끼리2인걸로 하자. 그리고 이집은 최후의 보루, 마지막 남은 빙하라는 걸로.”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이와쨩,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여행계획이나 짤래?”

 “이번에는 아무대도 못가잖아.”

 “꼭 올해 갈 필요 있나. 내년이나 내후년에 가도 되는 거잖아. 내년 여름에는 오키나와로 가고 내후년에는 졸업시즌이니까 하와이라도 갈까?”

 “하와이를 가려면 그 다음해에 가야지. 나 논문 쓴다고 바쁠 때거든?”

 “그럼 오키나와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 여행책자나 사올까?”


 빙하가 녹기까지 앞으로 ---년. 여전히 여름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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