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의 마지막 교시인 7교시가 끝난 2학년 3반 교실은 가벼워진 교복을 입고서 다들 무엇이 그리 기쁜지 시끌벅적했다. 수업이 끝나고야 잠에서 깨어난 나는 그 뒤에서 뭉친 어깨를 주무르며 곧 있을 수학여행을 위한 배부 프린트를 눈으로 훑었다. 날씨와 집안의 평안이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열심히 이야기하는 영 쓸모없는 미사여구가 잔뜩 적힌 부분은 접어서 깨끗이 찢어버리고 등 뒤의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남은 부분은 간결했다.

총 인원 ; 211명 (개인사유 불참 2명)

여행 일시 ; 7월 19일

여행지 ; 오사카 (자세한 일정과 여행지는 뒷면에 있습니다.)

여행 기간 ; 출발 시간 – 7월 19일 아침 8시, 도착시간 – 7월 21일 오후 6시 예정 (그날의 교통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점 양해바랍니다.)

고등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답게 적힌 것은 간결했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동의서는 진즉에 받아간지라 더 이상 안내할 것도 없는 것 같았다. 남은 뒷면을 살펴보던 중에 아침부터 흐리던  하늘이 개였는지 뜨거운 뙤약볕이 창문을 넘어 내 얼굴에 내려쬐였다. 초여름인데도 이만큼 덥다니 일주일 뒤 겪게 될 오사카의 더위와 해안지방 특유의 그 유명한 습도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대충 다 훑어 본, 이제는 절반이 되어버린 유인물을 비닐인지 가죽인지 애매한 하얀색 가방에 쑤셔 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요일인 오늘은 수업 후에 부활동이 있는 날이었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서 계속 저 앞에서 여자아이들과 신나게 떠들던 오이카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커지는 꺅꺅 소리가 시끄러웠다. 가까이 갈수록 꾹 막혀오는 숨을 참으며 그래도 양심상 왼손으로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상한 소리와 함께 오이카와는 웃는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이와쨩, 애정이 너무 과한 거 아니야? 막 이렇게 대놓고 그러고."

주변 여자아이들이 그 말에 다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쉴 새 없이 웃으며 숨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왔고, 반대로 내 숨은 막혀왔다. 그사이에서 웃고 있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얹을까 하다가 그냥 뒤를 돌아 교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7월의 열기에 눅눅해진 공기와 매미소리가 피부에 맞닿아왔다.

“왜 혼자가고 그래 이와쨩, 삐진 거야?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아직 지나가는 사람하나 없는 복도에서 오이카와가 굳은살이 박힌 나보다 조금 더 큰 오른손을 뻗어왔다.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예전처럼 내치지 않고 왼손을 뻗어 맞잡았다. 동시에 고개를 들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마치 호흡기를 단것처럼 숨이 가빠르게 폐 한가득 들어찼다. 교실에서 맞았던 햇볕보다 뜨거운 열이 맞닿은 부분부터 얼굴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갈 곳 없는 오른손을 우물쭈물하다 그대로 주머니에 찔러 넣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우리가 사귄지 10개월째 접어든 7월 12일의 오후 3시였다.



나의 작은 아쿠아리움



고백은, 그래 아마 작년의 8월말쯤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처음 맞은 인턴하이가 끝나고 당시 3학년이었던 선배들의 은퇴식도 끝난 후에 새로운 멤버들로 꾸려진 팀에 적응하는데 다들 피곤함을 느끼던 때였다.

그날 우리는 마지막으로 부실을 정리하고 체육관을 나섰다. 장마철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열대야가 한창인 8월의 저녁 9시는 해가 진지 오래였지만 아직도 낮의 열기가 느껴졌다. 숨이 막히는 더위에 우리는 별말 없이 하굣길을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오이카와가 뭐라 말을 꺼내려다 왼발을 헛디뎌 넘어져버린 것이다. 그것도 얼굴부터 아주 정면으로. 비틀거리며 고개를 든 녀석은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 이아쨩 나랑 사여줘.”

“야, 너 괜찮아?!”

“일단 대답부터 해줘!”

“아니 너 코에서 피 난다니까? 입에서도 엄청 나잖아! 혀 깨문 거야?!”

덕분에 첫 키스는 짭조름한 피맛이었다. 밤늦게 동안 느껴지던 피맛에도 어찌나 두근거리던지. 그날은 새벽까지 끝나지 않던 열대야에도 숨이 막히지 않았다. 매미소리와 풀벌레 소리와 별들이 반짝이는 소리까지 들릴 거 같았다. 내가 평생 할 리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말들이었지만 짝사랑이 이루어진 날은 그랬다. 그래 그날은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졌다.

책에서 읽은 누군가가 사랑을 하는 순간은 꽃밭에 서 시원한 남풍을 맞으며 종소리를 듣는 기분이라고 했지만 막 10개월에 접어든 연애에 한창인 나로서 표현하자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최악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어느 정도의 최악이냐면 끊임없이 파도가 치고 눅눅한 바람만이 불어와 제대로 숨쉬기도 힘든 해안가에 겨우 서있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최악이 아닌 이유는 그곳에서 오이카와와 같이 손을 잡고 서있기 때문이었다. 바람과 파도에도 손을 놓지 않고 웃으며 바라보는 웃는 얼굴이 있으니 아마 천국 같은 최악이지 않을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애매모호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확실한 게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해왔는데 녀석에게 쓸데없는 것이 옮은 것 같았다. 이런걸 생각한다는 것부터 이미 쓸데없지만.


사귀고 난 후에 최악보다 조금 나은 기분이 된 나와는 별개로 우리의 일상은 딱히 변하지 않았다. 해가 완전히 뜬 오전 6시에 일어나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재빨리 교복으로 갈아입고서 아침밥을 먹는다. 그리고 먼저 다 먹은 쪽이 상대방 집의 벨을 누르고 현관문 너머로 서두르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린다. 그리고 뒤늦게 나온 사람은 핀잔을 듣지만 아무렇지 않게 장난을 주고받으며 같이 부실로 향한다. 7시가 조금 안되어 도착한 부실에서 열심히 투닥거리며 옷을 갈아입고 아침운동을 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면 수업이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느리게 흘러가는 지겨운 수업시간을 이겨내면 드디어 부활동 시간이 찾아왔다. 4시간정도 이어지는 운동을 끝내고 나면 부원들과 다 같이 그날의 뒷정리를 마치고 오이카와와 같이 하굣길을 걸었다. 그리고 어쩌다 같이 저녁도 먹고 또 어쩌다 같이 자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가 다시 아침 6시부터 시작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침을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뺀다고 해도 적어도 15시간이상을 같이 보내는 것이었다. 24분의 15. 그러니까 대략 하루의 3분의 2정도를. 사귀기 시작하고 처음 계절이 바뀔 때 쯤 녀석의 방에서 같이 숙제를 하다 알게 된 사실이었다. 숙제는 하루 동안 가장 오래 같이 보내는 사람을 써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무언의 합의하에 각자의 부모님 성함을 써내었다. 그날은 녀석의 방에서 이불을 깔고 같이 잔 날이었지만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옆에서 들리는 익숙한 숨소리에 맞춰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풀벌레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던 새벽이었다. 다음날 아침 아직 잠에서 덜 깬 듯한 오이카와에게 그대로 이야기하자 뒷머리가 까치집이 된 녀석은 내 눈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었다.

“이와쨩 혹시 인어 아니야? 인어는 원래 물에서 사니까 육지에서는 숨을 못 쉬어서 숨이 막힐 거 아냐. 그런데 이렇게 못생긴 인어가 있나? 감자를 닮은 인어라니 획기적인 발견이야. 특종 프로그램에 제보해야겠다!”

꼭 뒤에 쓸데없는 한마디가 덧붙는 녀석이었다. 그때부터 가끔 숨쉬기 힘들다 투덜거리면 오이카와는 못생긴 인어가 어쩌다 물위로 올라왔냐고 놀려댔다. 뭐, 내 대답은 주먹이었지만 가끔은 오이카와 말이 혹시 정말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쓸데없는 부분도 녀석한테 옮아버린 것이다. 깊게 한숨을 쉬고 다시 호흡이 편치 않기 시작한 목을 부여잡고 침대에 누웠다. 천천히 머릿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얼굴을 그리며 잠에 들었다. 쿠소카와가 1명, 쿠소카와가 2명, 쿠소카와가 3명…….

그날은 어렴풋이 기억하기에 편안한 밤이었던 것 같았다.


날짜가 하루하루 더해져가고, 수학여행이 다가올수록 곳곳에서 들뜬 분위기가 느껴졌다.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들도 꽤 기대하고 계신 것 같은 눈치였다. 기껏해봤자 2박3일의 짧은 여행이 그렇게까지 기대되는 이유는 역시 부모님의 간섭 없이 친구들끼리만 가는 여행이기 때문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도 오이카와와 부모님 없이 이렇게 긴 시간동안 타지방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오이카와의 반질반질 동그란 뒤통수가 보였다. 슬쩍 보이는 옆얼굴은 무어가 그리 진지한지 열심히 종이에 무언가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늘 나에게 무드가 없다고 투덜거리는 녀석답게 나와 반대로 수학여행을 굉장히 기대하는 걸까? 목에 붙인 파스 밑을 긁적이며 괜스레 두근거리지도 않는 내가 미안해졌다. 오히려 네가 그렇게 기대하는 수학여행이 다가올수록 숨 쉬는 게 힘들다고 하면 분명 엄청 실망하려나. 딴 생각에 빠져있다 선생님의 교탁 두드리는 소리에 다시 앞을 쳐다봤다. 하얀 분필로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 내려가는 일정은 간단했다. 첫 번째 날은 오사카로 이동해서 숙소 옆의 도톤보리강의 에비스바시다리에서 구경, 둘째 날은 잘 모르겠는 고성과 옛날 박물관들을 둘러보고 마지막 대망의 셋째 날은 그 유명한 가이유칸 아쿠아리움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그나마 기대되는 것은 마지막 날의 아쿠아리움이려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선생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그리고 다들 알겠지만 수학여행이 끝난 다음에는 각 조별로 보고서 써내는 거 알지? 한 조당 최소 2명부터 4명까지만 이니까 보고서 쓰는데 게으름 피울 생각 하지 말고!”

곳곳에서 낮은 소리의 야유와 탄성이 쏟아 나왔다. 그래도 선생님은 웃는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삼일간의 주의사항만 턱턱 써내려갔다. 부 일지도 자주 깜빡하는 오이카와였으니 아마 이번 보고서도 쓰게 될 사람은 나일 것이다. 그리고 내 머릿속은 이미 대충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를 붙여 넣어 짜깁기 할 생각뿐이었다. 분명 이번 여행은 내게 별로 좋은 삼일이 되지 못할 것 같았다. 감이지만. 빨리 시간이 가기를 바라면서 멍하니 책상을 두드렸다. 말없는 나 대신에 매미소리만 시끄러웠다.


“이와쨩, 이와쨩, 가방에 뭐 가져왔어?”

“너 어제 나랑 같이 짐 쌌잖아.”

“재미없기는! 물론 알고는 있지만 가면서 얘기하는 것도 재밌잖아.”

“이미 한 벌 입고 있으니까 티셔츠 두벌이랑 바지 하나, 속옷이랑 용돈 그리고 비상약이랑 간식으로 가져온 과자 하나. 끝.”

“옷은 내가 골라준거 그대로 들고 온 거 맞지? 이와쨩은 밝은 색 보다는 어두운 색이 더 어울리니까 그대로 입어야해? 저번처럼 이상한 그림 그려진 옷 말고!”

“귀 아프니까 작게 얘기해. 다들 자는 거 안보이냐?”

“다들 자서 심심해서 괜히 그러는구나? 걱정 마 오이카와씨는 절대 안잘 거니까!”

라고 떠들어대던 녀석은 말을 꺼낸 지 10분 만에 곯아떨어져 버렸다. 늘 큰 행사 전날에는 긴장해서 제대로 못자는 녀석이니까 분명 어제도 우리 집에서 돌아간 뒤로 밤늦게까지 수학여행지 정보라도 찾아보고 있었겠지. 그것도 다 봤다면 배구영상을 봤다던가. 뒤로 크게 젖혀져 입이 벌어질락 말락한 녀석의 고개를 기울여 내 어깨에 기대주었다. 멍청하게 자는 얼굴도 이상할정도로 낯간지러워서 손을 들어 코를 약하게 꼬집었다. 손끝에서 따뜻한 날숨이 느껴졌다. 

갑자기 숨이 막힌다고 생각한 그날부터 며칠간은 왜 숨이 안 쉬어지는지에 대한 고민이었고, 그 이후부터는 어떡하면 숨을 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 연속이었다. 심호흡, 단전호흡을 넘어서 호흡곤란이 온다면 한다던 봉투호흡법부터 라마즈 호흡법까지 여러 가지를 시도했었지만 하나도 먹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기를 한 달, 우연찮게 알게 된 것이 331호흡법(순전히 내 작명이다) 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천천히 3번씩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고 오이카와의 얼굴을 한번 떠올린다. 대체로 한번만 하면 되지만 그래도 힘들다면 두 번 세 번 반복하면 이 호흡곤란이 해결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여러 번 시도해본 결과 웃는 얼굴이던 짜증나게 의기양양한 얼굴이던 상관없는 것 같았다. 지금 이렇게, 코를 꼬집어서 만들어진 못생긴 얼굴이라도 상관없이. 치료법이라고 해야 하는지 대처법이라고 해야 하는지 하는것을 알고 나니 원인도 간단하게 떠올라버렸다. 원래 반대여야 하는 거 아닌가? 마지막으로 세게 녀석의 코를 집고 다시 손을 놓았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쳐다봤다. 두꺼운 구름에서 떨어트리기 시작한 빗줄기 때문에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 밑으로 오사카가 가까워져서인지 아직 푸른 은행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차라리 둘만 온 여행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는 말을 삼키며 녀석을 흔들었다.


그렇게 모두가 기대하던 수학여행 날에 일주일 전부터 조용하던 일기예보와 달리 갑작스레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전날보다 더 시끄러워진 빗소리에 일어난 아침, 갑자기 들어온 선생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오늘의 일정은 취소라는 내용이었다. 꿉꿉한 습기로 뒷목에 들러붙는 짧은 머리를 손으로 털어냈다. 주변에서는 야유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들 그럼 일정이 어떻게 변하냐며 오사카 성은 결국 못 가게 되는 거냐고 따지는 소리따위를 내뱉을 때 나는 지금 샤워중인 오이카와의 생각을 하며 가방 속을 뒤져 들고 온 다이어리라기보다는 일정표에 가까운 것을 꺼냈다.

“비 때문에 강 주변이 넘쳐서 문제인거지 우리 숙소 쪽은 문제없으니까 저녁때까지 숙소 근처에서 자유여행인걸로 했다. 오사카성은 아쉽지만 날이 그런걸 어쩌겠냐. 그렇게들 열 올리지 말고 아침 먹고 주변이라도 둘러보면서 쉬어.”

자유여행(사실은 숙소주변 한정이라 그렇지도 않다.)이라는 말에 흥분한 아이들은 하나 둘 옷을 갈아입고 삼삼오오 떠나갔다. 오이카와는 비가오는 날 움직이는걸 싫어했다. 그러면 오늘은 같이 아무도 없을 숙소에서 게임이나 하면서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나에게 같이 가자고 말을 건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오이카와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다들 수긍하면서 정말 사귀기라도 하냐는 농담을 던졌다.

“친구라기에는 지나친데 혹시 둘이 진짜 사귀는 거 아니야?”

“응”

“농담도 잘하네. 너 오이카와랑 너무 붙어 다니더니 옮은 거 아냐?”

웃음소리와 함께 나가는 친구들의 뒷말에 무언으로 긍정했다. 홀로 빈 방안의 커다란 창가에 앉아 밖을 보자 ‘비가 온다’ 기보다 ‘쏟아진다’ 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눈앞의 창문을 열어 잔비와 같이 날아오는 바람을 맞고 있자 머리에서 물을 떨어트리며 오이카와가 들어왔다.

“이와쨩 오이카와씨 기다린 거야?”

“뭐어 그렇지.”

“그런 이와쨩을 위해 특별히 막과자를 사왔어! 기쁘지?”

“그거 방금 나가던 애들이랑 같이 맞은편에 들러서 사온거지?”

“...어떻게 알았어?”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뜬 얼굴을 나에게 가까이 오는 녀석을 밀어내지 않으며 뭐라고 궁시렁 거리는 녀석이 입에 넣어주는 콘소메맛 과자를 우적이며 다이어리의 달력부분을 계속 내려다보았다. 내 대꾸가 없어 심심한지 오이카와는 혼자 오늘 비가 내려서 어쨌다던가 다들 나가는 것 같던데 우리는 어떻게 할 건지 라던가 쫑알쫑알 떠들기 시작했다. 그저 내가 가끔씩 대답하는 맞장구 소리에도 할 말이 어찌나 많은지 적당한 대답만 계속해서 해준다면 하루 종일이고 떠들 기세였다. 오늘은 나름대로 열심히 고안한 331호흡을 하지 않아도 편안했다. 그래 해류였다. 오이카와가 들어오면서 따뜻하고도 편안한 바다 속 한복판에 있는 것 같았다.

“나 정말 인어인걸까.”

흘리듯 묻는 내 목소리에 오이카와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와쨩 고질라를 너무 많이 봐서 이제 자기도 바다 속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것보다 지금 뭐보는 거야? 일정표?”

내 손에서 다이어리를 가져가는 걸 가만히 놔두었다. 오이카와는 정작 뒤의 일기장은 텅 비었지만 몇 장 안 되는 달력부분에만 군데군데 형광펜으로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있는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이거 무슨 표시야? 시합 날짜는 따로 적어놨으니까 아니고... 일, 이주 간격이면 연습 표시? 그것도 아니면 혹시 내가 너무 좋았던 날 인거 아냐?”

“반은 정답.”

이제 오이카와의 눈은 커질 대로 커져 동공이 500엔 동전 만해졌다.

“나머지 절반에 대한 힌트는 고무.”

입 속에서 느껴지는 어릴 적 단맛을 우물거리기를 5초, 곧 오랜만에 듣는 괴상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킬킬거리며 그 꼴을 보고 웃고 있자 500엔 두 개 크기의 눈을 떨며 말했다.

“우와 우와 이와쨩 성격 변했어. 예전에는 뽀뽀만 해도 얼굴 빨개졌으면서 이제는 이런 파렴치한걸 막 일기에 막,”

오늘은 바보처럼 어버버 거리며 말을 더듬는 오이카와를 보았다. 많이 귀여웠습니다. 싫다고해도 제가 평생 데리고 살게요. 라고 일기에 써도 되지 않을까. 잔뜩 당황하기만 하던 오이카와는 곧 핸드폰을 꺼내들어 그 달력을 찍기 시작했다.

“야 찍기는 왜 찍어. 누구 보여주려고?”

“나중에 다시 보려고 찍는 거지.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딴소리는 무슨.”

혀끝에서 콘소메 맛이 사라지고 다시 부드러운 해류가 느껴졌다. 역시 나는 질투가 심한 사람인게 아닐까. 둘만이 있는 방안에서 해류가 굽이쳤다. 오늘 비가 쏟아져서 다행이다.


“가이유칸 아쿠아리움을 한자로 풀면 바다에서(海) 즐겁게(遊) 노는 곳(館)이라는 뜻입니다. 오사카 미나토구 뎀포잔에 위치해 있는 어트랙션 뎀포잔 하버빌리지의 중심이며 오사카를 대표하는 관광지중 하나인 USJ에 여객선을 타고 바로 갈수도 있어서 평일에도 관광객이 꽤 많죠. 건물의 3층부터 8층까지가 수족관이며, 성인기준으로 전부 둘러보는데 1시간 40분정도 소요됩니다. 학생 여러분들 나이면 길을 잃을 걱정도 없는 크기죠? 그래도 관람 매너와 시간은 준수해주시기 바랍니다.”

푸른색 회사 제복을 입은 안내원은 사근사근 우리의 3시간 30분짜리 일정을 얘기해주고 있었다. 어제의 폭우와 달리 오늘은 약간 구름이 끼어 회색일 뿐 해가 옅게 보이는 날씨였다. 선생님들은 이미 어제부터 지쳐버리셨는지 저 멀리 해파리 수조 뒤로 가버린지 오래였다. 그리고 학생들 중에서도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는 건 소수였다. 오이카와도 금세 혼자 손장난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아쿠아리움 특유의 파란 그늘이 져 평소보다 깊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각자 구경한 다음에 2층 앞에 있는 광장에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그 이후에 바로 아쿠아리움 옆의 하버빌리지 투어를 시작할거니까 제때 모여주세요. 그럼 이만 해산입니다. 즐겁게 관람해주세요.”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서 시선을 끄는 눈앞의 커다란 상어수조로 향할 때 나와 오이카와는 눈을 마주치고는 슬금슬금 무리와 멀어졌다. 상어수조를 지나 몇 개를 더 지나면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대서양관과 북극관의 시작이었다. 아쿠아리움 특유의 습기와 푸른 그림자가 이어지는 수조를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띄어진 각자의 수조에서 즐거운 듯 헤엄치고 있는 것들을 보자 아쿠아리움의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라면 그 이름 앞에 각(各 각기 각)자를 붙였을 것 같았다. 각자의 바다에서 즐겁게 노는 곳. 그게 최선이지 않을까? 옆에서 잡아오는 오른손은 꼭 잡으며 생각들을 헤치고 저 끝에 어슴푸레 보이는 어두운 푸른 수조를 향해갔다. 오이카와와 같이 산소가 가득한 수조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왼쪽 수조에 있는건 황제펭귄. 지구상에 생존하는 모든 펭귄들 중에서 가장 키가 크고 체중이 많이 나가는 펭귄이다. 주로 차가운 바다에서 살며 포유류답게 폐로 호흡을 한다.”

“어, 그리고 그 옆의 수조에 있는 건 피라냐. 현지에서 피라냐 또는 피라니아라고 불리는 이 물고기로 남아메리카에 사는 육식성 민물고기이며 일본에서는 관상용으로도 길러진다. 아메리카와 같은 따뜻한 수온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 호흡은 아가미를 통해 한다.”

“계단 옆에 있는 저 붉은 수조에 있는건 플레코. 메기과의 민물고기이며 몸길이가 30~100cm까지 자란다. 자신보다 작은 동물은 뭐든 잡아먹으며 4개의 수염으로 먹이나 천적을 감지한다. 낮에는 바위나 돌 틈에 있지만, 밤에는 먹이를 찾아 활발하게 움직인다. 영상 20도 이상, 0도 이하에서는 쉽게 죽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평소에 아가미로 호흡하지만 산소가 부족해도 어느 정도는 생존한다.”

“여기가 6층에서 제일 유명한 곳인데 통 유리로 된 수조래. 저기, 방금 지나간 건 나비가오리. 매가오리목에 속하는 가오리의 하나이며 골격이 질기고 탄력 있는 연골로 되어 있다. 전 세계의 온대 바다에서 발견되며, 27도 즈음의 수온에서 가장 활발하다. 가슴지느러미 아래의 아가미구멍으로 호흡한다.”

눈앞의 수조에서 여유롭게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보며 설명하는 나와 가만히 듣는 오이카와가 계속되었다. 내 손에 들린 가이유칸 가이드 책자에서 하나하나 설명이 나올 때마다 그저 오이카와는 응응 하는 소리와 함께 맞장구를 치며 잡힌 왼손을 앞뒤로 흔들었다. 평일의 오전 10시라 그런지 아니면 비인기관의 구석이어서 그런지 관람객은 잘 보이지 않았다. 왔다고 해도 가끔 훑어보고 지나가는 수준이었다. 옅던 푸른색이 점점 짙어졌다. 오이카와도 더 다가왔다. 다시 한 번 크게 숨을 들이쉬고 투명한 유리창 너머의 것을 설명했다. 이번에는 차가운 수온에서만 산다는 해마였다.

“이와쨩은 어릴 때부터 그런 거 잘 아네. 고질라가 바다에서 나와서 그런가?”

“그거랑은 별로 상관없지 않나? 그러는 너는 옛날에 그 뭐더라, 숟가락 뒤집어쓴 것 같은 외계인 좋아했었잖아.”

이렇게 말이야. 손으로 그때의 캐릭터를 흉내 내자 오이카와가 숨소리 넘어가게 웃어버렸다. 그게 괘씸해서 허벅지를 가볍게 걷어찼다.

“방금 그레이씨랑 엄청 닮았었어. 특히 눈 말이야 눈! 그러고 보니까 옛날부터 같은 캐릭터를 좋아해 본적은 없네. 음 취향이 달라서 그런가?”

“그래?”

“이번 것도 그렇잖아. 내가보기에는 전부 비슷하게 생긴 물고기들인데 사는 곳도 다르고 숨 쉬는 법도 다른데 이와쨩은 옛날부터 대충 생긴 것만 보고 책에서 찾아서 줄줄 외고. 신기하네.”
그리고 동시에 우리 눈앞에서 기다란 앨귈리드 뱀장어가 지나갔다. 그 몸체와 생활에 걸맞게 기다랗고 조금 따뜻하게 설정된 수조였다. 바닥에 가득 차 있는 진흙 같은 것들에 몸을 비비며 다시 한 번 유유자적하게 홀로 움직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우리는 한 번도 같은 것을 좋아했던 적이 없었다. 배구는 논외로 치고서라도(물론 배구에서도 좋아하는 포지션은 달랐지만) 정말로 같았던 적이 없었다. 꼭 서로 다른 수조 속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비유하자면 나는 영상 오이카와도, 오이카와 기후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물고기. 그리고 그건 나만이 그런것이고 오이카와는 어느새 다른 수조로 옮겨 갈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닐까. 달싹이는 입을 닫고 오이카와의 얼굴을 곁눈질하며 우리는 다시 가이드북을 쥐고 있는 반대 손으로 손을 잡고 천천히 아쿠아리움을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눈앞에는 많은 수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서양관을 지나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가이유칸의 중심 수조인 태평양관이 시작되었다. 책자에서도 가장 끝부분의 대미를 장식하는 관이었다. 5층부터 3층까지, 총 34m를 차지하는 초대형관은 유명세 때문인지 이미 5층은 사람이 가득 차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쿠아리움이 아니라 사람관에 들어온 것 같다고 중얼거리자 옆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명한 고래상어도 보고 싶기는 했지만 이래서야 숨 쉬는 것도 무리였다. 눈짓으로 내려가자고 전하자 오이카와도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바다보다는 우주에 있는 미지의 외계인 그레이씨가 더 좋다고 하는 오이카와였다. 나선형 계단을 두층 높이만큼 내려오자 수조의 밑바닥 부분이 보였다. 분명 수조의 꼭대기는 밝은 인공 빛에서 부드럽게 출렁이는 것으로 시작됐는데 이만큼 내려오자 짙은 청색에다가 위의 커다란 물고기들에게서 생긴 그림자가 져 어두운 심해 같아보였다. 우리 얼굴이 비쳐보일 정도였다.

“34m 밖에 안 되는데도 이렇게 어둡구나. 꼭 우주 같네.”

“우주라기보다는 심해 같은데.”

“으음 그치만 수조 밑바닥이고 심해 끝인 거 같으니까 우주 같지 않아?”

그치? 밝게 웃는 오이카와의 얼굴 옆의 수조에 가끔 들어오는 빛에 바닥의 모래가 반짝였다. 그 말을 들으니 손에 닿는 차가운 수조가 정말 아무도 없는 우리 둘만의 우주같이 느껴졌다. 겨우겨우 가끔 들어오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호흡하던 밝은 수조에 갑자기 어두운 물이 들이닥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갑작스레 들이닥치고, 나는 그 속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얌전히 갇혀 그대로 얌전히 익사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분명 입한번 뻐끔하지 못하고 꼬로록 익사해버릴 것이다. 그래서 두려웠다. 너는 아무 죄책감도 없이 나를 뒤덮고, 언젠가 나를 떠나버리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떡하지? 나 혼자만 이렇게 좋아해서 어떡하지? 눈앞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지나갔다. 어두운 저 수조에서 마치 홀로 잠겨가는 것 같았다.

“물고기는 물에서 사는 게 두렵지 않을까? 잠겨 죽을지도 모르잖아.”

수조에서 물고기는 사라지고 우리의 얼굴만 비쳐보였다. 관광객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그림자만 그 속에 있었다.

“애초에 물고기는 물에 잠겨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데. 물에서 사는 게 얘네들한테는 당연한 거잖아? 저기 봐, 저기 물고기들도 잘 수영하고 있고. 아니 애초에 수영이라는 말은 물고기한테 틀린 건가? 사람이 산소를 마시면서 사는걸 잘 걷고 있다고 하지는 않으니까.”

그럼 뭐라고 해야 하지, 잘 살고 있다? 이상한 길로 빠지기 시작한 오이카와를 수조에 비친 모습으로만 보다 한마디를 던졌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표시하기 시작한 이후로 계속 하던 생각이었다.

“나 너 많이 좋아해. 아마, 조금 많이.”

“...여기서 갑자기 그러기야? 물론 나도 많이 좋아하기는 하는데. 아니 사랑하는 거지.”

얼굴이 다시 붉어진 녀석을 내버려두고 출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금세 자기 세상에서 빠져나와 투정을 부리며 나를 뒤따라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궁시렁거리면서도 어릴 때의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너를 사랑한다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익사가 있었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겠지. 이미 너는 내가 가진 모든 가치보다 우선순위가 되었다는 것도 모르지 않을까. 알려주기는 싫었다. 잘난 척 하는 짜증나는 얼굴은 보기 싫으니까. 후우- 숨을 내뱉으면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숨이다. 가볍게 기포를 만들며 빠져나가고 너의 옆에서 너의 말을 들으며 다시 아쿠아리움의 공기를 들이쉬었다. 이제는 잠겨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곳은 모두가 느긋한 인공의 아쿠아리움. 대서양관은 깊이 9m, 길이 34m, 수량 5,400톤의 대형 수조이다. 그에 비해 내 수조는 오이카와가 내 옆에 있을 수 있는 깊이 1.82m, 길이 50cm 폭의 작은 수조였다. 익사하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이건 이와쨩 선물!”

“애도 아니고 웬 기념품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 오이카와가 건넨 것을 넘겨받았다. 손가락 두 마디만한 플라스틱 구 속에 마찬가지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어가 투명한 물과 인공적인 푸른색 기름층 위에 올려진 키홀더였다. 강하게 위아래로 흔들자 금세 인어가 기름 밑으로 빠져버렸다. 그 속에서 뒤집힌 인어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이게 선물이냐는 얼굴로 쳐다보자 오이카와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아니 전에도 그랬고 요즘 이와쨩이 인어 같다고 하길래.”

“그래서 이게 나다? 여기 꼬로록 잠긴 게?”

“그야 이와쨩이 세게 흔들어서 그렇지 평소에는 바다위에 떠있는 거라고 그거! 거기다 얼굴이 묘하게 감자같은게 이와쨩이랑 닮지 않았어?”

장난으로 나에게 준게 역력한 표정인 오이카와는 왼손으로는 아마 진짜 선물일 것 같은 황제펭귄 인형이 들려있었다.

“그래.”

“응?”

“이걸로 됐다고. 얼른 부모님 선물이나 마저 사자.”

“장난이었는데 정말 그걸로 괜찮아?”

확신 없는 얼굴로 갸우뚱 거리는 녀석의 볼을 진심으로 한번 꼬집고 캐릭터코너로 움직였다. 이어지는 걱정스런 소리를 들으며 한손으로 키홀더를 돌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걸 멈추지 않고 말했다.

“너 생각보다 센스 좋네.”

“정말?”

“당연히 뻥이지 쿠소카와.”

손안에 인어는 쉴 새 없이 푸른 기름에 묻히고 있었다.



파일의 이름만 저장되어있는 흰 창에 깜빡이는 검은 선을 바라봤다. 내 숨소리처럼 규칙적으로 깜빡이는 것을 보다가 손을 키보드 위에 올리고 빠르게 글을 쳤다. 바다는 깊어지면 심해가 되었고 우주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파도도 치지 않았습니다. 뒤에서 오이카와의 작은 숨소리를 들으며 다시 깜빡이는 커서 너머로 남은 말들을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그와 단 둘이 있게 되자 숨이 쉬어졌습니다. 잠겨죽을 수 없을 만큼 얕았던 것이 아니라 이미 잠겨있어서 몰랐었지만 이제 괜찮습니다. 그와 있다면 모든 곳은 나의 행복한 작은 아쿠아리움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짧은 보고서를 보다 닫힘 버튼을 눌렀다.

나의 아쿠아리움을 저장할까요?

아니요 버튼을 누르고 다시 새로운 창을 열었다. 밖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에 맞추어 경쾌한 키보드 소리가 복사한 가이유칸에 대한 정보를 새로운 보고서에 옮겼다. 길이인지 깊이인지 여하튼 지금도 헷갈리지만 아주아주 깊은 수조에서 본 바다는 생각보다 평화롭다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제출한 보고서 개중에 괜찮은 것은 상도 준다고 했던 것 같았지만 문맥도 이상한 이 보고서로 수상은 무리겠지. 이번에는 저장버튼을 누르고 종료를 누르자 빠르게 점멸하는 화면을 바라보다 이제 켜진 불이 없어 내 얼굴도 비추지 않는 화면을 덮고 이부자리에 누워있는 오이카와의 옆을 비집고 들어가 누웠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3번 반복하고 다시 오이카와의 얼굴을 한번 본다. 바다 속 매미소리와 오이카와의 소리와 내 숨소리만 가득한 이곳은 나의 아쿠아리움이었다.


매미소리는 8월에 들어서 더 커졌다. 어릴 때 매미채를 휘두르며 들었던 것보다 더 커진 것 같았다. 시원하던 교무실에서 나와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목뒤로 흐르기 시작한 뜨끈한 땀을 닦으며 후덥지근한 공기가 들러붙은 팔을 긁었다.

“이와쨩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쿠소카와는 하나도 안하고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적은 보고서를 내고 오는 길이지.”

“미안하다니까 그러네. 이번 학기부터 내가 주장이라 바쁜걸 어떡해?”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는 얼굴로 귀여운 척 애교 있는 미소를 짓는 오이카와가 짜증나 땀을 닦은 손을 녀석의 셔츠에 마구 비벼댔다. 펄쩍 뛰어오르며 아이스크림도 사줬는데 왜 그러느냐는 녀석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교실로 들어섰다. 오늘부터 여름방학이었다. 자리에서 백팩을 어깨에 들쳐 메고 부실로 가려는데 오이카와의 말이 날아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와쨩은 왜 내가 선물해준 키홀더는 안 달고 다니는 거야? 가방에 달면 좋잖아.”

“시끄럽고 어서 부실로 가자고 바보주장.”

“혹시 잃어버리고 그런 거 아니지? 사준지 한 달도 안됐는데!”

“어디 잘 넣고 있으니까 걱정 말라니까 그러네.”

가방 안주머니에 들어있는 키홀더가 걸음걸이에 따라 다시 출렁거렸다. 인어는 처음 몇 번은 뒤섞인 기름 때문에 바다에 잠겼다가 올라왔다가를 반복하다 요즘은 완전히 가라앉아 버린 상태였다. 아마 기름이 중간에 들러붙어버린 바람에 그런 것 같았다. 같은걸 다시 주문할까 하다가 그냥 그대로 넣어 다니고 있었다. 잠겨도 뭐 어때, 싶었다. 혼자 고개를 끄떡이며 납득하고 있자 오이카와가 쫑알거리며 치근덕거렸다. 대답해주기는 싫어서 손을 들어 녀석의 손을 잡아주자 조용해졌다. 여름 볕보다 뜨거운 손이었다. 남은 오른손을 편하게 주머니에 찔러 넣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오늘도 달력에 동그라미 표시를 할까 생각했다. 매미가 울고 땀이 흘렀다.

오늘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전 마지막 7교시가 끝난 날. 인어가 바다에 잠긴지 한 달이 막 넘은 날이었고 우리가 사귄지 11개월째 접어든 8월 12일의 오후 3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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