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blackout)이란 전기가 부족해 갑자기 모든 전력 시스템이 정지한 상태 또는 그러한 현상 대규모 정전(停電) 사태를 가리키는 용어로, 보통 특정 지역이 모두 정전된 경우를 일컫는다. 또 전국 단위 블랙아웃(total blackout)을 막기 위해 지역별 전력을 돌아가며 차단시키는 것은 롤링 블랙아웃(rolling blackout, 순환정전)이라고 부른다. 이외에 블랙아웃은 본격적인 공격에 앞서서 선제공격으로 적의 방어체제를 무력화시키는 군사전략을 뜻하는 군사용어로도 사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블랙아웃의 반대인 화이트아웃이라고 그네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얘기했다. 테러였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외부인이 들어와서는 안 되는 장소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들어왔지만 사건은 일어났고 그 사건은 수백발의 폭죽들이 동시에 폭발해 도무지 인간으로서는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빛 테러였기 때문이다.

일주일하고 하루가 체 못되어 돌아온 직장은 회색 화약 냄새가 자욱한 곳이었다. 먼저 와 있던 부장님이 건네준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고 들어간 현장에서 보인 것은 수백발의 폭죽이 동시에 터지고 잔해였다. 온통 회색빛이 되어버린 검찰청 근처에 있는 오다바 초등학교의 옥상에는 두 시간 전의 광(光)경을 짐작케 하듯 수만 발의 폭죽의 잔해들이 재와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폭죽이 터질 때의 그 엄청난 소리에 테러인줄 헛다리짚은 검찰과 테러 진압반, 그리고 경찰들의 집합소이기도 했다. 커다랗다는 것을 넘어 거대한 오색빛깔의 폭죽들이 동시에 터지면 무지개 색이 아닌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밝은 색이라는 것을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제보영상을 다시 보아도 안 그래도 현장으로 나오기 전부터 심란해진 머리가 실소를 뱉어낼 뿐이었다. 여하튼 그런 것을 모두 제치고 이와이즈미에게 복직 후 첫 사건인 ‘오다바 초등학교 엽기 폭죽테러사건’은 겉으로 보기에는 철없는 누군가의 실없는 장난으로 보이지만 모든 수사 참여자들의 머리를 쥐어 싸게 만들었다. 그날 학교에서 수업 중이던 수많은 학생들과 교사들, 주변을 지나던 행인, 수위, 그리고 심지어 CCTV에 까지 범인의 모습이 전혀 찍혀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건 피해자 : 1명
사건 가해자 : 알 수 없음
동기 : 알 수 없음
목격자 : 0명
피해 상황 : 순식간에 일어난 오다바 초등학교 옥상의 폭죽폭발 후 화약 냄새로 불안해하는 주민들의 전화폭주, 학교의 옥상이 화약 때문에 검게 물듦. 그 이상 없음.


이와이즈미의 짧게 자른 오른손 손톱이 하얀 보고서 끝의 물음표를 두드렸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실소가 나오는 보고서였다. 사건의 개요도, 범인도, 목격자도, 심지어는 목적마저도 적혀있지 않은 보고서를 만약 누군가 부장에게 제출하기만 했어도 3시간의 설교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정말로 저 4가지 중 하나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보고서에 적힌 유일하다 할 만한 그 1명의 피해자도 폭죽이 터진 직후 급하게 학교를 나오다 발목이 삔 학생이었을 뿐이었다. 그이상의 피해는 없음, 사건 진행도 없음. 범인도 없음. 사건의 범인을 어떻게든 기소해야하는 검찰의 입장에서 이만큼 난감한 사건도 없었다.


“흐음.”


부장이 급하게 근신 이었던 자신까지 급하게 불러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런 작은 단서도 없는 사건은 결국에는 사람을 얼마나 갈아 넣느냐로 해결이 될지도 모를 문제였기 때문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었겠지. 뻐근한 고개를 들어 칸막이 너머의 책상을 보자 불이난 전화기들을 붙잡고 여기저기 사정을 설명하고 있는 부장이 보였다. 내가 저 꼴 안 난게 다행이야. 이와이즈미는 저번 달의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워내며 오른손을 들어 비닐도 뜯지 않은 담뱃갑을 손안에 굴렸다. 제조일이 이미 3년이나 지난 하얀색 담뱃갑은 겉의 비닐이 닳아버릴 것 같은 모양새였지만 여전히 손에서 굴리고 있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결국 그날 이와이즈미는 축하 인사도 듣지 못한 체 다시 해결할 실마리도 없는 사건에 파묻혔다. 물론 복직을 축하하는 파티나 회식은 당연히 기대하지도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오히려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그런 인사를 들어도 일주일 전의 사건이 생각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시 사건에 파묻혀 그 일주일이 없었던 일인 것처럼 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모두가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에 똑같은 말을 쓰고 눈치를 보며 부장에게 제출할 때쯤 시계의 시침이 6시를 지나갔다. 모두가 하나 둘 자리를 뜰 때까지도 부장만은 여전히 불이날 것 같은 전화기를 붙들고 시뻘게진 얼굴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와이즈미도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뜬 사람 중의 하나였지만.


오피스텔의 1층 문을 지날 때 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입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천천히 올라가는 숫자를 보자 바싹 말라오기 시작했다. 숫자는 점점 더해져 10, 11, 그리고 어느새 13 그리고 14가 되어버렸다. 이제 바짝 마르다 못해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혀로 입술을 쓸어봤자 말라버린 혀로는 입술도 적시지 못했다. 이제는 현관 앞이었다. 눈앞에 1407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4년 가까이 산 집이었지만 그 안에 있을 녀석과 얼굴을 맞대는 게 꺼려졌다. 오늘 사건에 정신이 팔려 ‘그 사건’이 어디에서 새어나갔는지도 조사하지 못한 체였다. 주도권을 저쪽이 잡고 있는 상황은 무엇보다 가장 위험했다. 얼굴을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이쪽도 다 알고 있는 체를 해야 할까. 라며 고민하고 있는 이와이즈미에게는 현관문틈새에서 새어나오는 음악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고민 끝에 현관문을 열자 그제야 커다란 음악소리가 이와이즈미를 덮쳤다. 그리고 청소기 소리일 소음도. 아마 드럼소리일 쿵쾅거리는 소리와 크게 소리치는 듯 한 가수의 목소리가 소음과 기묘하게 어우러져 귀를 찔렀다. 멍하니 있다 정신이 들자 머릿속에서 이 곡이 무슨 곡인지 떠올려냈지만 그런 것보다 중요한 것은 대체 이 음악을 누가 왜 틀었느냐였다.


“왔어?”


그리고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오이카와는 반가운 낯으로 이와이즈미를 반겼다. 오늘 낮까지만 해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태도였다. 창고 구석에 있던 회색 진공청소기를 한손으로 휘휘 돌리고 있는 그는 이 소리들 속에서도 퍽이나 자연스러웠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이상했지만 지금은 터질 것 같은 고막이 먼저였다.


“무슨 노래를 이렇게 크게 튼 거야?”

“노래 말이야? ‘Another one bites the dust’라는 노래야. 가사도 좋지?”

“그게 아니라! 내말은 이걸 왜 이렇게 크게 틀었느냐고!”

작아질 줄 알았던 소리는 오히려 점점 커지는 것 같아, 이와이즈미는 이제 양 손으로 귀를 막고 오이카와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이 거대한 소리를 줄여줄 마음은 전혀 없는 듯 했다.

“기관총을 마구 갈기는 노래라 좋아서 말이야. 쓰러지는 게 누군지 모르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러면서 오이카와는 다시 흥얼거리며 청소기를 쥐고서 거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새로 생긴 동거인은 오늘 하루 종일 자신에게 배려 따위는 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결국 이와이즈미는 직접 오디오에 다가가 눈을 질끈 감고 직접 끄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볼룸버튼이나 음소거 버튼에 손을 대어도 소리는 도무지 줄지 않았다. 한숨이 나왔다. 오른손을 정장 안주머니에 넣어 여전히 비닐도 뜯지 않은 담뱃갑을 쥐었다. 감촉은 여전했다.


“너 나랑 이야기 좀 해.”


소음 속에서 들리지도 않을 말을 오이카와는 어떻게 잡아냈는지 그제야 녀석은 뒤를 돌아보며 바지주머니에서 오디오의 리모컨을 꺼냈다. 소리는 그제야 줄어들어 음악이라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다시 한숨이 나왔다. 오늘 하루에만 몇 번의 한숨을 쉬는 건지 모르겠다고 이와이즈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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