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먹고 싶어’ 진다면 어떡할 건가요?”


오후 6시, TV의 골든타임 방송의 아나운서의 입에서 영 평범치 않은 질문이 던져졌다. 그녀의 얼굴은 아무런 근심걱정도 없다는 듯 티끌 하나 없이 입 꼬리를 당겨 올린 웃는 낯이었다. 그 옆에 앉아있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자도, 그리고 그 맞은편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있는 젊은 남자도 하나같이 똑같은 표정이었다. 말과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기분 나쁜 위화감을 줄 뿐이라는 걸 그들은 모르는 것 같았다. 여자의 말에 다른 두 명도 농담 같은 말로 대답했다.

“너무 로맨틱하지 않나요? 처음 알게 된 ‘케이크’가 연인이라니.”

“스즈키씨 사랑한다고는 했지만 사귄다고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고요?”

“이것 참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나요? 제가 너무 앞서가 버렸네요! 아하하”

방청객 석에서 들리는 것 같은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화면너머로 전해졌다. 남자는 실수가 부끄러운지 정수리의 빈 부분을 손으로 긁적이며 말을 돌렸다.

“그래도 두 분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어차피 이왕 먹게 될 ‘케이크’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좋다, 라고 말이에요.”

여전히 부끄러운지 점점 머리가 헝클어지는 나이든 남자는 단어사이에 숨 쉴 틈도 없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포크가 되는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나라에서도 포크가 케이크를 먹는 걸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 거잖아요? 요즘은 포크도 케이크도 모두 포크가 케이크를 먹고 싶은데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말이에요. 그죠? 그렇죠?”

다시 한 번 청중석에서 웃음소리가 울렸다. 남자는 계속해서 동의를 구하는 곤란한 얼굴로 옆 사람들과 카메라를 바라봤다. 간신히 중앙의 아나운서가 그의 말에 맞춰 웃어주자 고개를 돌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죠. 스즈키 씨가 말씀하신대로 ‘포크’가 ‘케이크’를 먹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이왕 먹힐 거 사랑하는 사람에게 먹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자, 시청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희 프로그램은 다음 이 시간에도 이 주제에 대해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전문가도 함께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볼 예정이니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물론 저번 설문조사의 결과에서도 그랬듯이 99%의 시민 여러분께서는 같은 의견이시겠지만요. 그리고 혹시 오늘 나눈 이야기처럼 로맨틱한 경험을 하신 적 있으신 분께서는 저희 프로그램 앞으로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아무리 ‘케이크’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먹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TV판매 점 앞에서 멈춰있던 다리를 움직여 아나운서의 마지막말에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대로 손에 쥔 케이크 상자를 강하게 움켜쥐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은 점점 빨라져 소리도 곧 따라오지 못하게 되었다. 99%의 대답은 듣고 싶지 않았다.




첫 번째 케이크

; 딸기 쇼트케이크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었다. 별로 예전 학창시절에 선생들이 떠들기 좋아하던 정신론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 명확한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먹고 싶은 인간과 먹히는 인간,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인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케이크가 먹고 싶은 인간과 포크에게 먹히는 인간, 그리고 포크도 케이크도 아닌 인간이 있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중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었고 포크와 케이크라 불리는 인간은 채 1%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분명 100% 아무것도 아닌 인간들만이 가득하던 곳에 갑자기 나타난 1%의, 당시로 말하자면 ‘사람을 먹은’ 사람들은 엄연한 중범죄 자이자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었다. 당연하게도 처음 그들은 엄격한 재판을 받고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엄격히 통제되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처음 한두 명은 그랬다. 하지만 그 수는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평범한 인생을 살다가 갑자기 사람을 먹게 된 이들이 법정에 서 증언하는 이유는 모두 같았다.

‘그들에게서 너무 달콤한 향기가 났다. 마치 갓 구운 케이크처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한입 깨물자 이때까지 먹었던 그 어떤 생크림보다 부드러운 맛이 느껴졌고 정신을 차리고 보자 나는 케이크를 전부 먹어치운 후였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무엇보다 맛있는 케이크였으니까.’

각자가 하는 맛의 묘사는 달라도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그들이 먹은 건 인간이었지만 맛은 케이크였다는 것.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것을 먹는 것 보다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맛을 경험했다는 것이었다.

분명 단순히 정신병자의 소행이었던 엽기범죄는 어느새 모두가 부러워하는 특별한 일로 변모해 있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대다수의 아무것도 아닌 인간은 모두 포크를 부러워했고 케이크들은 뭐,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맛있다는데,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까지 채 10년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이 짧은 역사의 우스우면서도 웃을 수 없는 점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부러움을 사게 된 먹고 싶은 인간과 먹히는 인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레 아무것도 아닌 인간들뿐이었던 사회에 스며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있었던 일 인양 법도 그에 맞춰 자연스레 바뀌고 인권과 비슷한 ‘식사권’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평범한 일이 되어 옆집의 모씨가 글쎄 포크여서 옆옆집의 누구 씨를 그 집 정원에서 먹어버렸다지 뭐에요? 세상에 굉장해라. 무슨 맛이었을까요? 따위의 말을 나누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상 참 말세야. 오이카와는 중얼거리며 포장한 케이크를 한손에 들고 손부채를 흔들거리며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늦여름을 대변하듯 아직은 얇은 옷차림으로 들고 있는 분홍색 종이 상자 안에는 조각케이크 한 조각과 플라스틱 포크 하나가 들어있었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케이크와 포크들의 사정이지만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느냐면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아마 7살 때쯤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일어난 일들에 또래 아이들을 자식으로 둔 부모님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을 외출시키기도 꺼려했지만 곧 그들이 포크로 명명되고 케이크라 이름 붙여지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고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과연 그들이 100명중 1명꼴이라는 일에 납득한 것인지 어쩔 수 없는 일에 저항하는 일이 의미 없다는 것에 납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하튼 오이카와는 포크와 케이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래로 그들의 존재가 99%중의 하나로써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굴과 이름을 아는 인물들 중에 그런 1%의 일이 일어나지 않아 무관계 했던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먹고 싶은 인간과 먹히는 인간이라는 것에 있었다. 포크라 이름 붙여진 자들이 겪게 되는 것은 일종의 지독한 식욕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단지 ‘식욕을 느낀다.’라는 것뿐으로 어느 정도의 선택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들이 먹고 싶은 인간이지 먹어야만 하는 인간이 아닌 이유였다. 그에 비해 케이크는 먹히는 인간이었다. 먹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닌 먹혀야하는 인간. 그 사실이 오이카와가 그들의 행위를 공정한 ‘식사’가 아닌 단순한 착취로 여기는 이유였고 그들을 혐오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이와쨩과 일주일도 더 전부터 먹자고 몇 번이고 같이 얘기했던 케이크를 사들고 가는 길이니까. 어차피 그들은 포크도 케이크도 아닌 99%였으니 이런 일 따위 고민해봤자 오이카와가 낼 수 있는 답 따윈 없었다. 역시 복잡한 일은 내 일이 아닐 때가 제일 편했다. 오른손으로만 들고 있던 케이크 상자를 양손으로 쥐어 어디 한 부분 찌그러지지 않도록 했다. 두 손에서 케이크 하나와 포크 하나 분의 무게가 느껴졌다. 두 명인데도 케이크가 하나인 이유는 유명 베이커리에 남은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붉은 색 딸기가 올라간 하얀 생크림 케이크는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가 몇 일간 힘든 과제에 치이면서 먹기를 고대하던 케이크였다. 머릿속으로 같이 케이크를 먹을 모습을 그려보면 지난 한주간의 평균 수면시간을 4시간 밑으로 떨어트린 다즈키 교수도 아주 조금이지만 용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설사 이와이즈미와 자신이 먹거나 먹히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지금 느끼는 이 사랑은 그깟 포크가 느끼는 케이크보다 달콤하다 생각했다. 동시에 호주머니에 넣어놓은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이와쨩? 아냐 거의 다 왔어. 5분정도면 도착할거야. 그런데 케이크가 딱 한 조각 밖에 안남아 있어서 그것밖에 못 샀어. 아냐, 대신에 어제 먹다가 남은 과자랑 같이 먹자. 응, 알겠어. 좀 있다 봐.”

전화를 끊은 오이카와는 곧 다시 조심히 양손으로 케이크를 들었다. 케이크 하나를 사면서 두 명이서 먹는다고 하니 포크 두 개를 챙겨주겠다던 직원을 말린 것은 오이카와였다. 포크 하나로 서로 먹여주는 일 따위 이와쨩은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집에 있는 게 젓가락이 다라면 어쩔 수 없이 해주겠지. 싫다고 하면 내가 먹여주면 그만이었다. 먹히는 케이크를 생각하다 나빠졌던 기분은 다시 같이 먹을 케이크 하나 때문에 좋아졌다. 꼭 케이크 위의 딸기를 먹기 직전 포크를 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상자 속에는 보냉팩도 같이 포장했다. 이와쨩과 만나기 전까지 녹을 일은 없었다. 달그닥 거리는 포크 소리에 맞춰 콧노래를 불렀다. 오른쪽으로 나있는 골목을 지나 커다란 아파트 단지를 옆구리에 끼고 다시 한 번 돌자 드디어 케이크를 먹게 될 작은 아파트가 보였다. 제멋대로 오이카와를 따라가던 콧노래가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에 맞춰 조금씩 소리가 커졌고 케이크의 단향도 강해졌다. 1104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문을 두드렸다. 몇 번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끝나고 문이 열렸다. 강한 단향. 시럽향인가?

“왔어?”

“나-왔어요, 이와쨩!”

“시끄러워. 옆집에 폐잖아. 더운데 어서 들어와.”

이와쨩이 문을 여는 동시에 집안에서 단 향기가 풍겨왔다. 들고 있던 딸기케이크보다 강한 향이었다. 파운드케이크라도 굽고 있나? 그것도 아니면 메이플 시럽을 잔뜩 끼얹은 핫케이크? 아무렴 좋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우리 둘 뿐이니까.

“실례합니다.”

“3년 동안 매번 들어올 때마다 그러냐.”

“그럼 다녀왔습니다, 라고 할까? 그거 같이 살자는 말이지?”

코웃음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닫혔다. 눈앞에 익숙한 방의 풍경이 보였다. 여전히 어지럽지만 편안한 방안을 훑어보면서 케이크를 조심스럽게 작게 삐걱 이는 조립식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이 식탁도 처음 자취를 시작하는 날 나와 이와쨩 둘이서 조립한 것이었다.

“그 정도면 착각이 아니라 착시(錯視) 수준인거 아니냐? 그런 건 일단 나한테 좀 잘하고 나서 이야기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쿠소카와.”

날아오는 말들을 콧소리와 가볍게 흘려버리고 케이크 상자를 열자 새하얀 생크림 위에 시럽으로 말끔히 코팅한 딸기가 올려진 케이크가 보였다. 그런데 세상에 그렇게 조심히 들고 온 것인데 포크가 그 새하얀 생크림의 한복판에 꽂혀있었다. 투명하던 포크는 케이크 안에 들어있던 액상 잼이 묻어 색이 붉어졌다. 상자의 밑바닥도 그곳에서 흘러나온 잼으로 젖어가고 있었다.

“오면서 찌르기라도 한 거야? 잼은 다 새어버린거 같은데.”

“미안. 조심한다고 했는데 들고 오다 흔들리면서 이렇게 됐나봐. 괜찮을까?”

“뭐 됐어. 케이크야 모양이 어떻던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 미리 식탁위에 접시랑 버터나이프 하나 나뒀으니까 더 새기 전에 어서 먹기나 하자. 네가 쓸 포크는 케이크상자 안에 들어있지?”

“버터나이프? 포크로 안 먹고?”

“포크는 하나밖에 없잖아. 어차피 뭐로 먹든 먹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이와쨩의 눈이 가늘어졌다. 모두 꿰뚫어 봤다는 태도였다. 결국 케이크에 꽂혀있던 포크는 내 손으로 빼내어 싱크대에서 잼을 털어냈다. 그래도 여전히 잼이 묻어 끈적였다.

“어서 앉기나 해. 바보야.”

“역시 이와쨩은 못 당하겠다니까.”

그래도 얼굴을 마주보니 입 꼬리를 막을 새도 없이 웃음이 났다. 그도 그럴게 오늘은 오랜만에 이와쨩과 만난 날이었다. 오랜만이라고 해도 일주일 하고도 삼일 만에 만나는 거지만. 대학교에 진학하자마자 OT다, 과제다, 모임이다, 할 일이 많아져서 정작 제일 중요한 사람은 만나지 못하다니 정말 진지하게 왜 그 힘든 수험을 꾸역꾸역 치러서 어렵사리 멀리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심지어 대학교도 멀어져버려서 바라던 동거는 꿈도 못 꿀 지경이었다. 그렇게 만나지 못하는 날이 늘어날 때마다 우리가 라인으로 주고받은 건 보고 싶다는 낯간지러운 말과 먹고 싶은 것들을 올리는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새 채팅 창에는 사랑한다는 말이나 귀여운 스티커 대신 잡지에서 보거나 TV화면 갓 나온 따끈따끈한 케이크 사진만 가득 올라오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가 신호를 보내서 단 것이 먹고 싶다던데 정말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올리던 게 바로 방금까지 길게 줄을 섰지만 결국에는 하나밖에 사지 못한 이 케이크였다.

이와쨩은 오른손으로 얇은 은빛 버터나이프를 들고 이미 잼이 다 새어버린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단 냄새는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어렴풋 느껴지던 그것은 어느새 눅진하게 들러붙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했다. 오물거리는 입 사이로 잼이 느껴졌다. 아직 케이크를 입에 넣지도 않았건만 입맛을 다셨다. 침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나도 그를 따라 포크를 들고 케이크 깊숙한 곳에 찔러 넣었다. 아직 케이크가 뱉어내지 못한 잼을 쿨럭이며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졌다. 나눠진 조각 중 작은 것에 포크를 박아 넣고는 흘러내린 잼을 가득 묻혀 입으로 넣었다.

입에서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혀와 이가 스폰지를 뭉개고 생크림이 녹아내린 곳에서도 느껴지는 건 아주 희미한 단맛이었다. 혀끝에 닿은 붉은색 끈적끈적한 딸기잼에서도 아니었다.

“확실히 맛있는 집이라 그런지 잼부터 맛이 다르네. 그치?”

고개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봤다. 그래, 달콤한 향기는 눈앞에서 나고 있었다.

“왜 그래? 맛없어?”

아냐 맛없기는. 맛없을 리 없을 거야. 먹기 전에 나는 향만 해도 이정도인걸?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입에 한가득 고인 군침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마치 맛있는 것을 보면 반사적으로 입가에 침이 고이는 것처럼 오이카와는 지금 눈앞에 앉은 연인을 보고 침을 흘리려 하고 있었다. 포크를 내려놓고 입을 막는다는 게 그만 케이크 정중앙을 찔러 버렸다. 필사적으로 눈을 내려서 본 케이크는 이미 망신창이였다. 다 망가져 버린 케이크를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찌르고 있는 것은 플라스틱 포크였다.

냄새라는 건 코가 아닌 피부로도, 눈으로도, 손으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노릇하게 구워진 버터 향기가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눈이 뒤로 넘어가버릴 것 같았다. 어떻게든 힘을 준 다리로 식탁을 걷어차자 커다란 소리와 함께 의자가 뒤로 넘어졌다. 충격을 받은 후두부보다 나를 부드럽게 감싸오는 케이크 향기가 더 괴로웠다. 필사적으로 코를 막고 뒤로 도망치는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맛있는 이와쨩, 사랑하는 이와쨩이었다. 오지 말아줘, 말은 소리가 되지 못했다. 입을 열면 그대로 그를 물어버릴 것 같았다. 분명 입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생크림 맛이 느껴지지 않을까.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점점 다가오는 초록색이 섞인 다갈색 눈동자에서 달콤한 모카향이 날 것 같았다.

이와이즈미는 그대로 무방비하게 뒤로 넘어졌다. 갑자기 케이크를 먹다말고 넘어져 벌벌 떨던 오이카와가 다짜고짜 이와이즈미의 어깨를 잡고 강하게 바닥으로 밀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강한 충격에 천장에 별이 떠다녔다. 천천히 머리에 코를 묻는 것은 오랫동안 사귀었던 오이카와였다. 귀 옆으로 길게 코로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숨을 쉰다기 보다는 냄새를 맡는 것 같았다. 몸이 굳어왔다. 육식동물의 굶주린 눈동자를 본 초식동물이 이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격으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필사적으로 생각하던 와중에 입술에 닿은 것은 입술이었다. 키스라기보다는 식사였다. 여전히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생각나는 것은 하나였다.


정신을 차린 건 입에서 느껴지던 황홀한 생크림의 맛이 새콤하게 혀를 마비시키는 딸기 맛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이와쨩의 집에서 짜증나는 과제들을 다 끝낸 기념으로 같이 케이크를 먹기로 했었다. 유명한 제과점에서 사온 케이크와 함께 오늘은 우리 둘만이 있는 그의 집에서 하루 종일 있는 대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었다. 침대와 소파에서 남들 눈치 따위 보지 않고 뒹굴 거리다가 그게 지겨워지면 찰싹 달라붙어 같이 영화라도 보다가 밤이 되면 그 무엇보다도 사랑한다고 그의 귀에 대고 부끄럽게 말해준 다음에 같이 잠이라도 자면서 완벽한 하루를 보낼 예정이었는데. 내일까지 아무 일 없으니까 늦게 자고 점심때쯤에 일어나도 되겠지? 무중력 상태인 머릿속을 더듬어 아직 케이크를 먹는 것 까지 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래 케이크. 그런데 이 케이크가 이렇게 달았던가? 혀로 핥아보자 담백한 버터에 새콤한 딸기가 어우러져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맛이 느껴졌다. 다시 한 번 맛을 보자 이번에는 스폰지, 생크림, 버터, 그리고 마지막에 느껴지는 잼의 맛. 딸기 쇼트케이크.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처음이었다. 어떻게 생긴 케이크 길래 이런 맛이 나는 거지? 처음 맛보는 이 맛있는 케이크를 보기위해 눈을 떴다. 이와이즈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바닥에 누워있었다. 모카맛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붙잡은 양 팔은 아마 쉬폰맛이지 않을까.

그래,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먹고 있던 케이크는 이와쨩이었다. 그렇습니다. 케이크에 꽂혔던 포크는 저였던 겁니다. 오늘 이와쨩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입으로 나는 너를 먹고 있었던 겁니다.

“안 먹어?”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로 이와이즈미는 물었다. 오이카와는 순간 이 모든 게 머리를 부딪치면서 보았던 환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면 방금 사온 케이크에 마약이 들었다던가. 그래,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던 거였고 이런 환미(幻味)를 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게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것보다 더 현실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눈앞에 누워있는 연인이 나직하게 말하는 말이 가능성 1%의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네가 포크여도 난 괜찮으니까.”

“뭐가, 괜찮다는, 건데?”

양손으로 코와 입을 짓누르듯 붙잡고 넘어져있던 마루에 앉았다. 말이 끊어졌다. 모든 감각이 선연했다. 최대한 숨을 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코라도 자를까? 아니면 입을 꿰매버리면 되나?”

“그럴 필요 없어. 나는 정말 괜찮아.”

이와이즈미도 오이카와가 일어났듯 조용히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앉았다. 식탁에 앉아 케이크를 먹던 두 명은 이제 바닥에서 포크와 케이크로 마주보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왜 그날 오이카와의 고백을 들었을 때처럼 웃는 얼굴인걸까?

“나를 먹어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이와이즈미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렇게 고민할 필요 없어.”

달콤한 말과 함께 내뱉은 숨은 더욱 달콤했다. 오이카와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였다. 그런 말을 해준 연인을 제 손으로, 아니 제 입으로 먹어치우던가 그것도 아니면 아직 포크이기 전에 인간인 오이카와로서 그 자리에서 도망치거나. 그가 선택한 것은 후자였다. 닫혀있던 현관문을 부술 듯이 밀치고 필사적으로 그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1mm의 틈새도 없이 막아버린 코와 입으로도 아직 그의 향을 쫓고 있었다. 뒤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그렇다고 뒤돌아 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분명 자신은 그를 먹어버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는 와중에 첫 번째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남은 한 구석으로는 어떻게 하면 그 누구도 이와쨩을 먹지 못하게 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떠오르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이런걸 생각하는 자신이 역겨웠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 일이 내 일이 되기까지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죽어가는 매미가 울고 사마귀가 양 손으로 잡은 먹잇감을 짓눌러 나온 액을 마시는 여름에 오이카와는 자신이 포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도 오이카와는 설사 이와이즈미와 자신이 먹거나 먹히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이 사랑은 케이크를 먹을때의 포만감보다 달콤하다 생각했다.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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